박경리 작가의 유작시 39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내 머리속에,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토지>로 유명한 작가가 박경리 작가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그 유명한 책을 포함해 단 한 작품도 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토지>는 언젠가 여유가 되면 꼭 완독하리라 진작부터 마음 먹었지만 지금까지 실천은 못하고 있다.

작가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조금 무섭고 고집스러운 느낌이다.  책도 읽어본 적 없고, 직접 만나 뵌 적은 더더군다나 없는데... 그런 이미지는 외모에서 풍기는 선입견(!)과 토지라는 역사소설 때문인가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생전엔 작가의 작품을 만나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후에 그것도 시집으로 처음 만났다.

전체적인 느낌은 아쉽게도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다.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 옛날 일을 회상하며 쓴 내용이 많았다. 작가를 잘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기도 하지만, 시골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여서, 나이드신 분의 연륜을 내가 미처 따라가지 못해서.. 이해도가 떨어지는 면도 있을터였다. 공감이 부족한 사연에 가져다 붙일 변명들은 많다. 

세상에 태어나 좋은 일, 궂은 일... 온갖 풍파를 겪고,

사그라드는 촛불처럼,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예감하며 쓴 글이라 회고와 후련함, 아쉬움, 홀가분함 등이  생에 대한 마무리로 느껴졌다.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지금이 아니면 두번 기회가 오지 않음을 알기에, 바로 펜을 들고 기록으로 남기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생각하며 봐서였을까?

책 제목이 계속 읊조릴 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 중에 마음에 들었던 한가지 시가 있어 인용해 본다.

한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이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

--- p.106

다음엔 <토지>를 읽어봐야지!  다시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