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날 옛적 어르신들의 생각에 "여자" 라는 성별은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그저 착실하고 조신하게 키워서 출가시키면 그만이다. 결혼해서 남편한테 이쁨 받고 소박 안 당하면 그만이었다. "여자가 배워서 어디에 써먹게?" 하는 버럭 할아버지의 외침을 한번쯤 들어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이신 아흔다섯살의 홍영녀 할머니도 한글을 배운적이 없다. 큰 아들이 장가가고 큰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손자의 어깨너머로 도둑공부한게 전부다. 그런 할머니가 몰래 써오던 일기장 8권이 우연하게 발견되면서 이 책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처음 "무남이" 얘기부터 시작이 되는데, 하마터면 책 읽는 버스 안에서 울 뻔 했다. 할머니 자신이 무식했던 자기자신을 나무라고 한탄하며 후회하는 대목에서 가슴이 많이 아렸다.

 

일찍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여섯 형제를 꿋꿋하게 키워낸 이야기, 농사 지으며 자연과 대화나눈 이야기, 병마와 시달리며 외로움과 고독에 시달린 이야기, 보고싶은 자식들을 기다리며 사는 이야기, 귀여운 손자, 손녀들 이야기... 할머니의 후반부 인생이 눈에 그려지듯 담겨져 있다.  짧게 짧게 산문시도 들어있었는데, 나는 시 보다는 사는 이야기와 할머니의 감정을 담아놓은 부분이 더 좋았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꾸미거나 잘 보이려는 글이 아니어서 좋았다. 솔직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할머니가 직접 내 눈 앞에서 얘기하는 것 같다.  조곤조곤 옛 이야기 들려주듯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10개월된 어린아들 무남이를 먼저 보낸이야기, 막 시집와서 매운 시집살이를 한 이야기는 도저히 무덤덤하게 읽어갈 수가 없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콕 콕 짚어내며 읽어야 할 부분이다.  옛날에는 왜 그리도 추웠는지, 왜 그리도 한결같이 가난했는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말이 아닌 글로 읽어서 일까. 흔히 하는 어른들의 레퍼토리 "왕년에 말야~!  내 어릴적엔 말야~! 옛날엔 말야~!" 하는 서두로 시작하는 한참의 잔소리로 이어질 그런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려오지 않는다. 

 

이 책은 글을 잘 써서 별 다섯개를 준게 아니다. 잘 쓴 글로 따지면 다른 책들에 비해 순위가 높진 않을거다. 하지만, 진실하고 솔직한 글이 마음을 울렸다. 콧날을 시큰하게 하고 시야를 흐리게 하는 글들이어서 내 할머니가 생각나고 내 엄마가 생각나 동감이 되었다. 그래서 별 다섯개를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