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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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에 앞서 우선 '로맹가리' 라는 작가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최고의 소설 1편을 뽑아 <공쿠르> 상을 주는데, 작가에게 주는 공쿠르 상은 프랑스에서는 최고로 쳐주는 상이라고 한다. 로맹가리는 1956년에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받았다.  그 상을 받고 유명한 작가의 대열에 오른 로맹가리는 이후 작품과 자신에 대한 기대로 큰 부담을 느껴 도망가고 싶어졌는지, 이후에 에밀 아자르 라는 가명으로 <그로칼랭>이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에밀 아자르는 1975년에 <그로칼랭>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1980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쓴 유서에 에밀 아자르와 로맹가리는 동일한 인물임을 사실로 알리면서 문화계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다. 공쿠르 상은 한 사람에게 한번만 수여하는 상인데, 로맹가리는 두번을 받게 되는 셈으로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에밀 아자르(=로맹가리) 는 신인작가로 <그로칼랭>을 출판사에 보여줬는데, 출판사에서 뒷 부분의 일부를 삭제하자고 요구한다. 유명작가인 로맹가리 였으면 그런 요구조차 없었겠지만 신인인 에밀 아자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1974년 출판 당시에는 뒷부분이 삭제된 채로 출판이 되고, 후에 아자르와 로맹가리가 동일인물임이 밝혀지면서 삭제된 뒷 부분도 함께 복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삭제된 부분이 별도로 포함되어 있다. 
 
 

이제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서른 다섯살의 노총각인 주인공 쿠쟁은 통계쪽 업무를 하며 도시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어렸을때 부모를 모두 교통사고로 여의고 형제도 친척도 없이 외롭고 고독한 성장과정을 보냈다.  성인이 되고서도 딱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는 여전히 외로운 사람이다.  짝사랑하는 그녀가 있긴 하지만 소심한 성격으로 제대로 말도 못 걸어 본다. 

쿠쟁에게는 아프리카 여행 후에 한 집에 같이 살게 된 비단뱀이 있다. 길이가 2미터20센티미터로 상상만으로도 징그럽고 오싹한 진짜 뱀이다. 외로운 그들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봤다고 한다. 첫 눈에 우정을 나누고 이심전심을 느꼈다고 한다. 쿠쟁 혼자만의 착각인지 모를 이 감정으로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제 쿠쟁에게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자신을 기다리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생긴 것이다. 비록 사람의 말은 못하지만 쿠쟁이 외롭고 혼자라고 느낄 때 온몸을 껴안아 열렬한 포옹을 해주는 친구이자 애인같은 이가 생긴 것이다.  그로칼랭은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으로, 비단뱀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그로칼랭을 어깨에 두르고 산책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그 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회사동료, 동네 주민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조롱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기피하는 파충류를 좋아하고 어여삐 여기는 쿠쟁을 자신의 주변에 두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쿠쟁 씨는 잉여분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초과분이라 해도 좋아요. 나는 쿠쟁 씨가 그것을 우리 동포에게 주지 않고 비단뱀에게 준다는 게 조금 슬픕니다."
 
"쿠쟁 씨는 사랑이 넘치는데 그 사랑을 남들처럼 처리하지 않고 비단뱀과 생쥐에게 쏟고 있다는 말이에요."
 
머리가 터져버릴 듯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찾아간 신부가 해준 말이다.
그로칼랭에게 생쥐를 먹이로 주려고 사왔지만, 생쥐를 보는 순간 그로칼랭처럼 친근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버린 쿠쟁.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이치라 해도 저 귀여운 생쥐를 죽게 내버려 둘 순 없고, 그로칼랭은 배가 고프고... 
 
비단뱀과 함께 사는 일은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장점 말고는, 불편하고 신경써야 할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다.
우선은 그로칼랭을 배고프지 않게 해야 한다.  배가 고프면 그가 위로받고 있는 열렬한 포옹이 1회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쿠쟁은 짝사랑의 그녀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로칼랭과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꿈꾸지만, 여자친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쿠쟁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읽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쉽게 읽힌다.  다만, 고독한 샐러리맨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작가의 속마음이 아리까리하다. 내가 이해하고, 생각하는바가 맞는지 갸우뚱 하다.  정신이 약간 왔다갔다하는 사람을 지켜본 것 같은 느낌이다. 
 
책속에 쓰인 이 말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왜? 왜냐고 물으면 말로써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저 자꾸 생각이 날 뿐이다.

계략이 꾸며지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다시 유통시킬 목적으로 되살리려는 것 같다. (p314)

 
패션쇼를 본 적이 있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그해에 유행할만한 옷을 디자인해서 선 보이는 쇼다. 쇼킹하고 특이한 개성을 가진 옷들이 대부분이다.  평범한 것들보다 튀는 옷들이 많고, "저런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녀?" 싶은 옷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핏 평범한 얘기는 소설로 크게 와닿지 않고 큰 감흥을 못 일으키니 이런 쇼킹한 그로칼랭을 등장시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쇼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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