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세상에는 저마다 상대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빛과 그림자, 깨끗함과 더러움,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사람, 집이 있는 사람과 월세 조차도 구하기 힘든사람 등 상대적인 것들은 참 많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집도 돈도 없는 최빈곤층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이 가진 거라곤 가족 중에 한 명 쯤은 속 썩이는 구성원과 먹여 살려야 할 부양가족이 있다는 거다. ’꽃섬’ 이라 불리우는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 매일같이 몇 대의 트럭이 쏟아내고 가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사람을 거쳐간 모든 것들이 그 수명을 다하고, 여러 쓰레기통을 돌고 돌아 한 곳으로 모인다. 그 모든 쓰레기의 집합장소가 꽃섬이다. 꽃섬이 쓰레기들의 종점이다.
우리는 가끔 걸인을 볼 때가 있다. 우연히 지나는 거리에서 마주칠 때도 있고, 도로 한쪽에서 동냥 하는 거지를 볼 때가 있다. 근처에 가면 거지가 풍기는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있다. 그런 냄새의 수백배쯤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수백배의 독가스와 사람의 몸 여기저기에 붙어서 윙윙 거리는 파리떼. 파리떼라고 하기엔 표현이 부족해 보이는 시꺼먼 덩어리들이 늘 산재해 있는 곳이 꽃섬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 꽃섬에 사는 사람은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이다. 쫓겨났다기 보다는 돈이 없어 그 속에 못 들어간 사람이다. 한끼 끼니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물건으로 먹고, 입고, 눈비를 피하며 잘 곳을 해결한다. 매립지에서 내다 팔 고철이나 플라스틱, 종이 등을 모아서 돈과 바꾸며 돈 벌이를 한다. 이 매립지도 레벨이 있다. 그 레벨은 돈이 되는 물건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나뉜다. 물론 돈이 되는 물건이 많은 ’개인차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든 남보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선 대가를 치뤄야 하는 법이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편리해지고, 뭐든 빨라지고 있다. 편리함과 삶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물건들을 계속 만들어 낸다.
신기하고 편리한 물건이 많아질 수록 버려지는 쓰레기도 많아졌다. 더 나아가 인간의 편리와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를 하는게 아니다. 체면을 위해서도 소비를 한다. 욕망과 끝없는 욕심이 사치와 또다른 소비를 부추긴다. 이웃사람과 비교해 더 행복하기 위해, 체면을 차리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듯 물건을 사들인다.
사람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물건들 때문에 환경은 상대적으로 희생 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지는 묵묵히 받아준다. 몇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1회용품들. 플라스틱, 비닐봉지, 깡통 등등. 멀쩡한 것들도 싫증나서, 필요없어져서, 넘쳐서 버리는 물건들로 산을 이루고 섬을 이룬다. 꽃섬이 계속 늘어가는 한 지구촌 곳곳에서 사람이 설 곳은 점점 더 줄어든다.
옛날을 떠올려 보면 하늘과 땅 차이라는게 느껴진다. 옛날엔 사람이 먹고 버린 음식은 짐승을 먹였다. 사람이 배출해낸 오물은 거름으로 사용했다. 썩지 않는 물건은 만들지도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만 만들고 사용했다. 버린 것들도 고쳐서 다시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고 또 많이 버린다.
(중략) 내가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 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지옥 또는 천국처럼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일상적으로 낯익게 되어버린 것이다.(중략)
쓰레기 매립지라는 장소는 낯선 풍경이지만, 그 의미가 내포하는 세상은 낯익은 세상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도 그곳이니까.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이리만치 낯익은 세상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