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어진 의상’을 입고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주어진 의상과 분장에 맞는 역할을 하고,
그것이 곧 자신의 삶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의상은 날이 갈수록 무겁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관객이 아무리 박수갈채를 보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아파갑니다.
자신을 환자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말 몸이 아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의상을 벗고 분장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달라집니다.
오랫동안 꼭꼭 포장해온 자신의 껍질만 벗어도 세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 이기웅의 <어설픔> 중에서 -
예전에 어떤 분의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 난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렇다.
(김미경 강사의 강의였던 것 같다. 아마 맞을 것 같은데... 아닌가? 죄송. 기억이 가물가물)
사람은 모두 태어날때부터 최소한 5개의 항아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5개가 될 수 도 있고, 열개, 스무개를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여러개의 항아리중에는 죽을때까지 뚜껑을 못 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 항아리는 자신의 재주나 재능이 들어있는 항아리이고, 그 뚜껑을 열어야 재능의 날개를 펼 수 있고 빛을 발하게 되는 그런 구조이다. 그 뚜껑을 부모, 선생님 등 주위 사람이 열어주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열 수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항아리를 제때에, 잘 열어 충분히 활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내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필요한 것을 얻고, 취하고, 먹고 해야하는데, 남의 항아리를 열심히 뒤져서 뭔가를 얻으려 하는 사람이 위에서 말하는 ’내게 맞지 않는 의상’ 이 아닐까 싶다. 내 항아리는 저 뒤에 많이 쌓아두고서 엉뚱한 곳에서 헛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남이 해서 성공하니까 나도 따라하고, 대부분이 가는 길이라는 말에 의심없이 따라간다. 누군가 입혀 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광대 노릇을 하려니 불편하고 불행하다. 무엇보다 신나지가 않는다. 점점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무거워진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신이나 조물주는 짖궂게도 내가 가진 항아리에 대한 어떤 힌트도 주질 않는다. 열심히 고생하고 고민해서 찾아봐라 그 얘기인지... 시행착오를 하게끔 만들어 놓으셨다. 힌트를 주는데도 못 찾는 걸까?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좀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라고 약간의 트릭을 써놓은 걸까?
내가 가는 길은 이 방향이라는 확신만 선다면...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누군가 알려주기라도 한다면...
조금은 수월할텐데,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텐데, 씩씩하게 고난을 받아들이고 위험도 기꺼이 감수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