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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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작가와 만나는 네번째 작품으로 <꽃피는 고래>를 읽었다.  이 책은 10대 소녀 ’주니은’ 이 겪은 상처를 스스로 다독이며 더디긴 하지만 상처가 아물어 가는 과정을 깊이있게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사람의 심리를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기역 니은 디귿 할때의 그 니은을 이름으로 가진 소녀는 열일곱살이다.  열일곱살이 되던해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엄마와 아빠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여서 울음도 채 나오지 않는 상실감이었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부엌에서 밥 짓는 엄마가 보일 것 같고, 산책을 하러가면 커다란 나무 뒤에서 ’니은아~!’ 하고 부르며 숨어있던 아빠가 튀어나올 것 같은데 세상은, 주위 어른들은 엄마와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라 한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니은이는 이유없이 모든 것에 분노하고 화나고 삶의 의욕도 없다.  왜 그렇지 않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대화하고 장난치던 가족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위로를 해줄 수 있겠고, 따뜻한 말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니은이에게는 모두 잘난척 하는 소리 같다.  부모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질투가 나고 화가 난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도 모든 말이 하나같이 거슬리고 분노를 느끼게 한다.  니은이도 머리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뾰족한 말을 되돌려주곤 한다.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게된다.

이모네집으로, 다시 고모네집으로 왔다갔다 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의 고향인 처용포에 오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처용포에는 대왕고래라고 불리우는 장포수 할아버지가 있고, 왕고래집 할머니가 계신다.  가족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니은이를 친손녀처럼 대해주신다.  그 두 어르신을 통해 니은이의 깊은 상실감은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어느 일정한 시간을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상실감을 경험하고, 패배도 맛보고, 힘든 시기와 고난의 시기도 겪게 되는가 보다.  장포수 할아버지도, 왕고래집 할머니도 나름대로의 슬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슬픔을 애써 없애려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점들을 알게 되면서 니은이도 자신만의 슬퍼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내가 아직도 슬퍼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게 문제 같았다.  왕고래집 할머니가 개와 고양이를 돌보듯, 장포수 할아버지가 뒷산에 나무를 가꾸듯이. 내게도 그런 일거리가 있다면 이 시간들을 잘 넘길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는 말처럼 큰 일을 겪은 니은이는 이제 어른이 되기로 한다.  처음엔 아무말도 없이 나 혼자 버려두고 떠나버린 부모님을 원망하고 분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거듭할 수록 자식을 홀로 두고 떠나는 부모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하나씩 오해를 풀어갈 수록 니은이의 마음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일년전인 작년 2월첫째날에 아빠를 보내드렸다.  병상에 오래 계셨던 터라 가족들 모두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온 상태였다.  한 해 두해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준비가 흐려지긴 했지만 언제든 떠나실 분이라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터였다.  한해씩 연장했던 삶은 15년째가 되던해에 현실로 나타났다.  오래된 마음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실로 맞닥뜨리게 됐을때의 상실감과 허전함, 끓어오르는 슬픔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런 내 경우가 아닌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마주해야하는 상실감은 얼마나 클지 도저히 상상을 못하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견주지 못할만큼 큰 몇 배의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 니은이에게 힘내라는 말 밖에는 그저 손 잡아주는 것 밖에는 해줄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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