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시작하려고 하면 통속적인 전제조건이 있을거다. 그 전제 조건이란 뭐가 있을까?
나이? 요즘 연예인 중에는 12살이나 차이나는 띠동갑 커플도 종종 있어서 나이를 조건에 붙이기는 살짝 어색해 진다.
국경? 사랑은 국경도 초월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국제결혼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돈? 학벌? 직업?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배우자가 없이 혼자라면, 친인척이라는 범주에 들어있지 않은 남남 이라면 별다른 조건은 필요 없을 거다.
사실 남과 여 당사자만 놓고 본다면 무.조.건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둘이 좋다는데 나이가 뭔 상관이고, 다른 조건이 뭐가 필요한가? 저 사람만 내 옆에 있어 주면 다른 건 다 필요없다고 느껴지는게 사랑이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힘든 사랑은 당사자 말고 그 주변사람들 때문이다. 나이차이가 많고, 집안이 어떻고, 부모가 있느니 없느니, 돈이 많네 적네, 학벌은 어떻고 저떻고, 직업까지도 마음에 안드는 조건으로 내놓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당사자 주변 사람들의 논리다. 정작 당사자들은 다 이겨내고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누경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랑, 어긋난 사랑, 옳지 못한 사랑을 한다.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서강주와 서로 큐피트 화살을 나눠 맞았을까. 본인도 어긋난 사랑임을 알기 때문에 더 괴롭다. 더 그립고 아픈 사랑이다. 사랑이란 게 머리로 지식으로 하는게 아니라서, 어쩌면 사랑하면 안되는 금지된 상황에서 더 애절해지고 독해지는 것 같다. ’사랑’이란 녀석의 짓궂은 너무나 고약한 장난이다. 장난 치고는 너무나 치명적인 장난이다.
"옛날 착하고 가난한 남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신이 그에게 선물을 주었대요. 눈물을 담으면, 그 눈물이 진주로 변하는 마술 유리잔이었어요. 남자는 진주를 얻기 위해 매일 눈물을 흘렸어요. 매일 눈물을 흘리기 위해 점점 더 슬픈 일들을 만들어야 했죠. (...)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자, 어느 날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칼로 찔러 죽게 했어요. (...)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물었다고 해요. 그 남자는 왜 양파를 쓰지 않았을까요?(...)"
몇 걸음 더 걷던 누경이 말했다.
"...... 난, 양파를 쓰지 못했어요. 양파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말이에요. 난 내 스스로 나쁜 인생을 만들어요."
나 자신이 잘못인걸 알고 있으면 어쩌면 노력하면 정상으로 되돌릴 수도 있었을 거다. 평범한 다른 사람처럼 평탄한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기엔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했고 순수했던 것 같다.
"유리는 과학적으로는 액체예요. 아무리 높은 열에 끓여도 끓지 않고 아무리 높은 열을 가해도 수증기로 변하지 않는 액체죠. 고무같이 신축성 있는 물질로 변했다가 식어서 단단한 덩어리로 굳는 거예요."
"액체면서 산산조각으로 깨어지다니 뜻밖이군."
"다시 열을 가해주면 산산이 깨어진 조각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어요."
처음엔 액체였다가 딱딱하게 굳은 다음엔 사람에게 상처를 내는 유리처럼... 처음 그들의 사랑은 부드럽게 시작됐으나 빠져들면 들수록 치명적인 독과 같이 딱딱하게 살을 찌르는 상처가 되는 그들의 사랑. 그들의 사랑도 열을 가해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처음의 마음으로는 아닐거다. 유리와는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