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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펭귄 -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
임순례.조은미 지음, 이우일 그림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하고 <우.생.순>으로 유명한 임순례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그 영화를 기반으로 조은미작가가 각색해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총 4개의 펭귄이야기가 나온다. 날개는 있으나 날지 못하는 펭귄.
1. 채식주의자 이주훈
2. 학원가기 싫은 아홉살 펭귄
3. 외로운 기러기 아빠 권과장
4. 펭귄이 뿔났다.
책 중간중간에 영화에 쓰인 사진들이 들어있어,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재밌다.
4개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모두 내 인권도 존중해 달라고 푸념 하고, 혼자 씩씩대기도 하며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갓 입사한 초식남의 이주훈.
한국의 기업들 대부분이 술자리를 통해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데, 채식주의자 이주훈은 고기도 못 먹고 알콜분해 효소가 없는 몸을 갖고 있어 술도 먹지를 못한다. 그런 신입사원을 못마땅해 하는 선배들. 근무시간에 담배를 피면서 사내의 정보를 공유하고, 최신뉴스를 듣는데 이주훈은 담배도 안 피운다. 그런 그에게 선배는 대놓고 말한다. "아! 난 쟤만 보면 하루가 재수가 없어!" 초식남이라 해서 술을 못 먹는다 해서 왕따를 받아야 하는 건 참 억울하다. 회식분위기를 망친다고 면박주고 짜증난 얼굴을 숨기지 못한다. 고기를 못 먹는게, 술을 못 마시는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두번째 주인공인 아홉살 펭귄.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지겹고 지겨운 학원을 몇 군데를 다니는지 모른다. 학교갔다 학원을 몇 군데 거쳐 집에와서도 하루치 수학문제를 풀지 못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ㅠㅠ 그런 엄마에게 아빠는 야단을 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과는 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따다다~ 잔소리를 하려다 말문을 닫아버리는 엄마. 아홉살 아이도 인권을 보장해주삼. 승윤이가 금방이라도 소리칠 것 같다.
외롭고 힘든 기러기 아빠.
기러기 아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단다.
- 일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애를 보러가는 아빠가 기러기,
- 돈이 많아서 수시로 들락거리는 아빠는 독수리,
- 공항에서 빠이빠이 손 흔들고 한 번도 날아가지 못하는 아빠가 펭귄.
세번째 주인공인 권과장은 펭귄아빠였던 것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벌어 돈만 부쳐주고, 환율이 올라 대출까지 받아 수혈을 해주면, 아내와 아이들은 그 돈으로 열심히 공부한다. 그것까지는 좋으나, 방학에 한국에 다니러 온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어째 서먹하다. 예전 헤어질때의 그 아이들이 아니다. 한 가족이 모여 앉아있지만, 아내와아이들 vs 아빠 사이엔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혼자 겉도는 기분.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펭귄아빠다.
마지막 뿔 난 아내펭귄.
퇴직한 대쪽같은 성격의 할아버지와 평생을 고분고분 살아내신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이젠 본인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한다. 더 이상 할아버지의 하녀노릇을 노땡큐라고 선언을 한다. 평생 그런 투정없던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못마땅해 한다. "여편네를 하루 날잡아서 단도리를 해야지 이거야 원." 아직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눈치를 못채셨나보다. 황혼이혼이 늘어난다는 기사와 실제로 이혼을 당한 친구들을 보면서 대쪽같은 권병두 할아버지는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인권" 이라는 다소 무겁고 중후한 주제로 책을 써서 지루하거나 심각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재밌게 읽었다. 저자의 유쾌한 문체들이 그런 걱정은 싹~ 잊게 만든다. 가볍게 유쾌하게 읽으면서 다 읽고 나서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도 틀린 게 아니라는 점.
나와 다른 사람과도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