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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세트 - 전12권 (반양장)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리뷰는 1997년에 가을에 읽고 일기장에 느낌을 적어놓은 글이다. 그 당시에는 2주에 책 1권을 읽을정도로 정말 더디게 읽었다. 책 읽을시간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워낙에 책을 정독하고 늦게 읽는 탓이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지막권을 막 완독하고 그 느낌과 충격을 주체할 수 없어 날아가는 필체로 써놓은 리뷰를 보면서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 다시 느껴진다. 글을 읽는 지금도 그 당시의 흥분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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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소설은 <태백산맥>에 이어서 두번째로 접하는 거다. <태백산맥>은 무척 오랜기간에 걸쳐 읽었는데, <아리랑>은 일주일에 한권을 독파할 정도로 속도가 붙어 가을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있다. 읽으면서 정말 말 그대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계속 받고 있다. 실제 있었던 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고, 또 그 사건들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상세하게까지는, 아니 어떤 의미에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 아는 걸 새삼스럽게 일깨워서 기분이 우울해지고, 착잡해지는게 싫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점에 놀라고, 소름끼칠만큼의 그 표현력에 또 놀랐다.
농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작가의 언변에 통쾌함을 느끼고 다시한번 기나긴 36년의 지옥생활을 상상해 본다.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그 장면장면이 영화를 보듯, 실제 현실인듯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런 말이 기억에 남는다.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 민족의 수가 400여만! 2백자 원고지 2만매를 쓴다해도 내가 쓸 수 있는 글자 수는 얼마인가!"
아리랑을 써가면서 자신에게 한 경고문이라 한다. 경고문으로 썩 잘 어울리는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아리랑을 쓰게 된 까닭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중략)"
주요관직자리에 친일세력들이 여전히 장악해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요즘. 그 세력들에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속아가며 살고 있는지...
생존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그때의 식민지와는 성격이 다른 또 하나의 식민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충격적이고, 긴장되고 떨리고 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과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어리석은 생각과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되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12권째를 손에 넣었을때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그랬다. 12권씩이나 읽었다는 뿌듯함이기도 하고 몇개월동안 한권씩 읽어가며 뒷 이야기를 상상하는 설레임과 긴장감이 있었는데, 이제 나를 기다리는,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책이 없어진 아쉬움이 학교를 졸업하는 느낌? 비슷한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게 했다.
마지막장 마지막줄을 읽으면서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맺음이 시원찮고, 여러 주인공들의 생사여부 등 궁금증이 마저 풀리지 않은 그런 끝이라서 여러 등장인물들이 번갈아가며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하지만, 끝은 아무도 모를 거란 생각도 든다.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아군의 숫자도, 명단도 제대로 모르고 또 대부분 추위와 굶주림, 더위와 온갖 병마와 고통에 외로운 싸움을 하며 바람처럼 쉽게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그 위대하신 분들께 감사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분들의 생명과 맞바꾸는 맞섬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값진 생명과 맞바꾼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책 읽은 시기 : 1997. 7/18 ~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