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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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다.
아버지와 같이 시골에서 올라와 지하철을 갈아타러 가는 길이었는데,
거짓말처럼 농담처럼 하지만 진짜로 잃어버린다. 


늘 앞서 걷던 아버지를 ’좀 천천히 가먼 좋겄네’ 하며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는데, 그날은 왜 못 쫓아 오셨을까!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이 지난뒤에 돌아보니 아내가 없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나?
핸드폰도 있고 택시도 있고, 물어 물어 찾아올 수도 있을텐데...
소설속에 엄마는 그런것들도 없고 무엇보다 몸이 아프다. 머리가 아프고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글도 읽을 줄을 모른다. 

- 그날 니 엄만 서울 갈 형편이 못 되얐다. 서울엘 가지를 말았어야 했는디... 전날 머리가 아프다고 세숫대야에 얼음을 가득 넣고 그 속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누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밤에 보니 냉동실에 머리를 넣어둔 채로 서 있더라. 얼매나 아펐시믄 그랬겄냐. 아침밥 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있던 사람이 뭔 정신으로 서울은 가야 한다고 하질 않겄냐. 니덜이 기다린다고. 그리도 내가말렸어야는디. 그냥 마음 한켠으로는 이번 참엔 서울 가믄 억지로라도 병원에 입원시키야지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라믄 어쨌든 그런 사람을 데리고 갔시믄 잘 부축을 했어야 하는 것인디. 내가 니 에미를 환자 취급을 안하고는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내 혼자 내 걸음으로 앞질러 걸었다... 평생 그리 살다보니 기냥 그 버릇이 나온거여. 일이 이리된 것이여.

 

엄마의 잃어버림을 계기로 남편, 아들, 딸들은 엄마와의 추억들을 과거속에서 하나 둘씩 끄집어낸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무심했던 날들을 회상한다.  그런 것들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엄마 이야기를 남편이나 자식 어느누구도 단 한번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 마음속 얘기를, 맺힌 한을 엄마는 얼마나 얘기하고 싶었을까!  엉킨 매듭을 얼마나 풀고 싶었을까!
남편은 밖으로 떠도느라 아이들은 성장해서 서울로 나와 바쁜 삶을 사느라 그들은 들어 줄 여유가 없다.
그런 속앓이들을 토해내듯이 풀어냈더라면 아프지 않았을 수도 있을텐데...
건강한 몸으로 씩씩하게 집을 찾아와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텐데...

 

엄마 한테 전화가 오면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가 지겨워 대꾸도 건성으로 하고, 귀찮아서 바쁘다고 그냥 끊기도 한다.  
나중에 전화한다고 해놓고 잊어버리고. 매번 똑같은 밥은 먹었냐는 질문에 안 먹었어도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할 얘기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새로운 얘기거리도 없고... 
엄마는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말꼬리를 무는데 더 귀찮아 하는 자식들.
엄마와의 대화는 매번 이런식이다. 


엄마를 찾아달라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인터넷에 광고를 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여기저기 붙이러 다니고,
잃어버린 서울역 앞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린다.

- 우리 엄마에요. 이런 분 보시면 꼭 연락주세요.  버리지 마시고 한번만 들여다 봐주세요



엄마를 봤다는 전화를 받고 그 장소에 가보면  사흘전에, 일주일전에 봤다는 이야기들이다.
찾아가서 보면 큰 아들이 처음 일을 시작했던 동사무소요, 첫 집을 장만했던 옛날 집이다.
엄마의 발자취를 뒤늦게 따라가 보면서 옛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정작 자식들 머리속에선 희미한데 엄마 기억속에 아직도 이 장소가 남아있었나 싶은 곳들이다.
그 때의 추억들이 한 토막씩 여지없이 떠오르고... 함께 나눴던 대화며 함께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한 달, 두 달, 한 계절이 지나고...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식구들은 점점 지쳐간다. 한계절, 두계절을 보내고는 체념한 듯도 보인다.
엄마를 찾는 일에 덜 신경쓰는 가족들을 향한 분노.  몇 개월째 이어지는 피로감.  더 이상 엄마를 봤다는 전화도 오지 않는 막막함.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다른 형제에게 고함을 친다.  
- 나쁜놈. 엄마를 찾아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왜 엄마를 찾지 않아. 왜애! 왜! 
- 엄마를 잃어버린 뒤 날이 갈수록 그는 불쑥불쑥 아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 들어오면 화가 더 났다. 둘째가 전화를 걸어와 상황을 물으면 몇마디 대꾸해 주다가 니가 나한테 알려줄 건 없냐!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고 버럭 성을 냈다.
- 모두들 서서히 엄마를 잃어버린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없이도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어린시절이 있고 처녀시절이 있었고, 신혼시절이 있었던 것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듯이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그냥 당연히 엄마였다. 

시골집과 함께 언제나 그 자리에 넉넉한 품과 함께 있었던 엄마였다.
한번도 부재를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들은 무심했던 자신들을 후회하고 책망한다.

- 저녁밥 대신 역촌동의 대형마트 안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두잔 마신 여동생이 가방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어느 쪽을 펼쳐 그 앞에 내밀었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생각이다.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나는 남극에 가보고 싶다. (...) 밑으로 서른 칸은 넘게 나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줄지어 있다. "이게 뭐냐?" "지난 12월31일에 새해를 맞이하며 글 쓰는 거만 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본 거야.  근데 내 어떤 계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하겠다는 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렇더라구."


막내딸은 엄마를 찾아 나서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엄마 손길이 필요한  어린자식이 셋이나 되는 통에 집에서만 
마음을 졸이며, 다른 형제들이 물어다주는 쪽지만으로 한숨과 걱정을 한다.
- (...)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엄마를 잃어버리고도 이렇게 내 아이들 밥을 챙겨먹이고 머리 빗기고 학교 보내고 있느라 제대로 엄마를 찾아나서지도 못하는 내가 아주 낯설어. 언니,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없어.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내게 해준 것처럼 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같이 못해. 나는 내 아이들 밥 먹이면서도 자주자주 귀찮아. 아이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같이 느껴져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 나는 셋째가 조금만 더 자라면 놀이방에 보내거나 사람을 구해 아이를 맡기고 내 일을 할 거야. 내 인생도 있으니까.(...)

요즘  엄마들은 막내딸 같지 않을까. 내 마음이 딱 그런대. 
난 예전 엄마들처럼 내 엄마처럼 자식들에게 나를 버려가면서까지는 자신이 없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이 마를때를 기다려야 했다.
울컥 울컥 치미는 뜨거운것이 목구멍을 아프게 한다.

큰딸이 성모상 앞에서 울먹이며 내뱉는 말이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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