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스무 살, 학교는 준비해주지 않는다
멜 레빈 지음, 이희건 옮김 / 소소 / 2005년 9월
절판


자식들에게 브레이크 없는 즐거움을 제공해 주는데 여념이 없는 부모들은 자식들을 과도한 방종과 탐닉으로 특권의식을 가진 아이로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은 궁극적으로 아무런 노력이나 자기 희생없이 언제라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편협한 독단으로 이어진다.-69쪽

우상의 추락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당초 아이에게 우상의 지위를 부여해 주지 않는 것이다. 아동기와 사춘기는 승리와 패배, 엄격한 규칙과 적절한 자율, 칭찬과 꾸중, 재미와 긴장의 건강한 혼합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키워야 할 존재이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며, 사랑할 존재이지 숭배할 대상이 아니다.-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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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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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아이 넷을 낳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던 적이 있었다. 아이낳고 기르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던 철없던 시절 얘기다. 직장생활까지 하면서 그러고 살겠다는 거였으니 뭘 몰라도 한참 몰랐지... 그러나, 나는 그 시절 내 꿈이 지나치거나 건방진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시골 촌부들도 쉽게 누리는 행복이니, 나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엇'도 나하고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아이를 줄줄이 넷을 낳았고, 그녀의 집에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헤리엇의 친구,친지들은 그녀의 가정에서 가장 순수한 행복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다섯째 아이가 태어난 전까지의 일이다. 다섯째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중편 정도 길이의 이 소설은 무섭게 읽힌다. 재미가 있어서 무섭게 읽힌다기 보다는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한 가정이 가파르게 망가져가는 속도감이 너무 아찔해서 무섭게 읽히는 거다. 작가가, 빙하기의 유전자가 현재의 인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글을 읽고 창조해냈다는 다섯째 아이 '벤'. 벤은 초현실적인 존재를 연상시키지만, 그 아이로 인해 망가져가는 한 가정의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가정의 모습 그대로이다. 마치 내 가정이 무너져가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그때문인 것이다.

'헤리엇'과 같은 절박함으로 나는 도리스 레싱에게 묻는다. 우리가 뭘 잘못한거지? 아이들 낳아 오손도손 잘 살아 보겠다는 것도 잘못인가? 세상을 다 갖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정도가 오만한 꿈인가?

그리고, 나는 도리스 레싱의 목소리를 듣는다. 네 꿈도 오만한 것일 수 있다고. 네가 꿈꾸는 행복이 네가 믿는 얄박한 가치들과 이해가능한 것들의 위태로운 집합이라면, 그건 무엇보다도 오만한 꿈이라고.

아마도 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상징물일 것이다. 의사들조차 벤을 어떻게 규정할 지 모른다. 차라리 이해할 수 있는 병명을 가진 장애아라면 헤리엇의 가정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헤리엇의 조카가 간간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도리스 레싱이 의식적으로 등장시킨 것 같다. 헤리엇네는 장애아를 내칠 정도로 윤리의식이 희박한 이들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인정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버텨내지 못하는 행복이란... 얼마나 부실하고 허약한 것일까.

사실, 이 책은 둘째 아이의 임신을 알기 직전에 읽은 소설이다. 이 소설이 비정상적인 아이의 탄생을 다루는 소설이란 점을 생각하면, '다섯째 아이'를 떠올리는 건 불경스럽고도 재수없는 상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건전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네 가족의 허약 체질부터 개선하라는 경고. 가족 구성원이 하나 더 늘어남과 동시에, 가족의 행복을 지켜내겠다는 나의 집념은 더욱 강해질지도 모른다. 그 집념만큼, 내 마음 한편에선 내 가족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적대감도 자라날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그 모두를 경계하는 마음들. 이 소설은 지금 내게 그 옹졸하고 허술한 행복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물론 단편적인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쓰여진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넘어 존재론적인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 엄마인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족'이라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었다. 그리고, 또다른 오만한 꿈을 꾸어본다. '다섯째 아이'의 등장 정도로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가정, 편협하지 않은 가치관으로 이루어진 한 가정의 이상적인 모습을.

(2004년에 적었던 글입니다. 도리스 레싱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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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7-10-1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mila님, 다섯째 아이로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가치관으로 지탱하나요. (반가운 마음에 딴지를 걸고 있습니다.)

2012-03-19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mila 2012-03-21 21:59   좋아요 0 | URL
댓글 달렸다는 메일 덕분에 백만년만에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봤어요.
플라시보님, 힘드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 북스넛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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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나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과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말 인용)-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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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빠빠 - 어린 딸을 가슴에 묻은 한 아버지의 기록
저우궈핑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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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너무 많이 울었다. 밤중에 곤히 자는 아이들 곁에서 흑흑거리며 울다가, 다음날 거울 속의 퉁퉁 부은 눈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픈 책을 읽으면서, 사서 고생인가....' 그런 생각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아기 뉴뉴, 그 뉴뉴의 운명 자체가 너무 가슴아팠다. 겨우 18개월의 짧은 삶, 태어나자마자 곧 죽을 운명이면서도 열심히 자라고, 걸음마를 익히고, 말을 배우고,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애쓰는.... 그 부질없으면서도 아름다운 생명력이 눈물겨웠다. 아기를 낳아 길러본 부모들은 알 것이다. 어제 오늘이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의 시간들인가를. 곧 다가올 죽음과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그 기적의 시간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그 의미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엄마들은 엄마들일뿐이다. 내 자식이 그런 불행한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확인하고야 만다) 뉴뉴가 던져준 해석불가능한 운명의 의미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힘들게 지냈다.

생판 남인 내가 이런데, 뉴뉴의 아빠는 어떠했을까. 철학자인 그는 끊임없이 뉴뉴가 던져준 가혹한 운명의 의미를 캐묻는다. 부모라는 것, 자식이라는 것,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해답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장 자식이 죽어가는 마당에 무슨 철학을 논하는가....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뉴뉴의 아빠에게는 그것만이 고통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고통 앞에 선 인간들에겐 의외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지 않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그에게 가장 익숙한 '사색하고 글쓰기' 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과정이  저자 자신에게는 부질없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값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뉴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졌던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언급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저자는 아기의 안구를 적출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은연 중에 '앞을 못보는 인생을 사느니 죽는게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기 뉴뉴의 죽음이 가까와올수록 그에게 깊은 회한을 안겨준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기가 기형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검사결과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병원이나 주위사람들이, 기형아일 경우 낙태하는 걸 너무도 당연시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더욱 가슴이 서늘했던 건 나 자신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갈등했었다는 사실이다. (이후에 소설가 공지영이 비슷한 경험을 한 내용을 글로 적은 걸 보고 공감하기도 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문제가 없는 완벽한 아이를 꿈꾼다. '손가락 발가락만 다 있으면 된다' 며 소박한 소망인양 말하지만, 그런 소망 뒤에는 '정상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위험한 생각이 숨겨있는지도 모른다. 또 이러한 '완벽한 아이'에 대한 환상은 정상적인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된다. 아이들이 갖추어야할 완벽한 조건들에 대한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요구들을 통해서.

그러나, 저자의 표현대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아기의 죽음 앞에서 부모는 결국 '불구든 어떻든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이 아이뿐이다'라고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지럽게 칠해진 마음의 덧칠들을 벗겨내고 나면,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 모든 부모들의 진심일텐데. 부모들도 어리석은 인간인지라 그것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뉴뉴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아기의 흔적, 몸짓, 사소하게 던진 말한마디도 잊지않고 기억하려는 저자의 모습은 눈물겹기만하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철학자의 글로 읽혀지던 이 책이 결국에 가서 약하디 약한 아비의 벌거벗은 글로 읽혀진다. 아기 뉴뉴가 남긴 예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맘때 우리 아이들이 옹알거리던 목소리들과 겹쳐지면서, 가슴에 하나하나 아프게 박혀왔다. 뉴뉴야, 부디 가장 좋은 곳에서 네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길....

소용없는 바램인 줄 알면서도 빌어본다. 세상 어느 자식도 아프지 않기를. 세상 어느 부모도 가슴미어지지 않기를. 정말 소용없고 부질없는 바램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빌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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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6-06-0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는 싶은데 너무 슬플까봐 망설여집니다.

비로그인 2006-06-0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마음을 참 잘 그렸네요. ..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
 
신의 물방울 5
아기 타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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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에 굴러들어온 와인들, 아무 생각 없이  홀짝홀짝 마셔없애버리곤 했는데.... (라벨같은 거 복잡해서 절대 안 들여다보고)

신의 물방울을 읽고나니 이미 마셔버린 와인들 몽땅 다시 소집시키고 싶습니다. 무심코 흩날려버린 와인향기들 다 그러모아 정말 꽃다발 향기같은게 나는지 맡아 보고싶고, 빈병들 줄 세워놓고 이름표부터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와인에 눈꼽만치의 관심이라도 있어 이 만화책을 펼쳐보실 분이라면, 빌려보지 마시고 꼭 사서 보세요. 빌려봤다가는 결국 다시 사서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문적인 분야를 다룬 일본만화들은 그림체가 별루인 경우가 많은데, <신의 물방울>은 그림체마저 아주 훌륭합니다. 절대 소장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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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6-03-18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목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억력이 ㅠ.ㅠ)

반딧불,, 2006-03-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지름이 심하군요ㅠㅠ
우쨌든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플라시보 2006-03-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지 사고싶군요. 예전에 제가 다 마신 와인병을 깨끗하게 씻어서 책장 위에다 한병 한병 보관한적이 있었는데 이사하면서 이게 다 뭔 소용이람 하면서 나무궤짝에 담아 휙 다 버린게 뼈저리게 후회됩니다. 이거 댐시 보관함에 담아둡니다. ^^

ceylontea 2006-03-18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맞아요.. 소장해놓고... 읽고 또 읽어야 해요.. 와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구요... 와인 맛에 대한 표현도 너무 재미있고, 아름다워요.. ^^

메르헨 2006-03-2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소장용...^^기억해 놓고 조만간에...^^

메르헨 2006-03-2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님 저 아주 오랫만에 와서 글 남기는데요.
저 요즘 스밀라에 빠져있어요.^^호홍...생각나서 한 줄 더 적어봅니다.^^
즐거운 수욜 오후 되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