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유혹
이언 피어스 지음, 송신화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정말 우연히 구입한 책이다. 이언 피어스가 그렇게 이름있는 작가인지도 몰랐다. '미술계를 다룬 추리 소설? 그런대로 재미있겠네'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주문한 책이었다. 올 여름, 그렇게 날씨가 더웠는데 뭔들 깊이 생각하고 싶겠는가.

소설을 펴들고 읽어보니 운좋게도 내 입맛에 잘 맞아떨어지는 소설이었다. 명화 위조, 명화 경매....난 이런 얘기 무지 좋아한다. 고고하고 엄숙해보이는 박물관의 뒷방에서 펼쳐지는 추악한 욕망과 술수라! 만화 <갤러리 페이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분명 좋아하실만한 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한 몇가지 미술사적 팩트 위에서 스토리 자체는 007처럼 황당무게하게 펼쳐지는 <갤러리 페이크>와는 달리, 이 소설은 상당히 진지하고 날카롭다. 미술사를 전공했다는 작가는 픽션을 펼쳐가는 가운데서도 미술계의 이면을 깊이있고 현실감있게 파헤친다. (그래서 읽다보면 어느 정도는 공부하는 심정으로 읽게된다.^^) 

몇가지 서로 다른 진상들이 겹을 이루는 구성 역시 탄탄하다. 아주 예상 불가능한 결말은 아닐지라도, 현실의 허를 찌르는 결말도 인상적이다. 심미안마저 눈멀게하는 인간의 욕심이란!

하지만 아쉽게도 이 소설은 추리소설다운 서스펜스, 스릴과는 좀 거리가 있다. 무더운 여름날 추리소설을 집어들었을 때는 분명 오싹하는 스릴도 기대하기 마련이건만.... 여러구의 시체를 다루는 소설이 아니라 한장의 명화를 둘러싼 이야기라서 그런걸까? 소설을 읽으면서도 뭔가 배우는 것같아 기분이 흡족해지다가도, 아주 살짝살짝 지루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쨌든, 이언 피어스의 작품들은 계속해서 나의 위시리스트에 오르게 될 것같다. 다른 작품도 기대하게 되는 작가를 만난다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물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핑거포스트, 1663>는 이 소설보다도 한 수위인 것 같은데... 이제 <핑거포스트>를 집어들 차례인가보다. 엊그제부터 무더위가 한풀 꺾였으니 써스펜스가 덜하다 하더라도 한결 용서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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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8-22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하고 들어왔더니....서재질 재개하신게 확실하군요. 저도 뜸하게 들어와서요..흐흐. 전 요즘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에 있슴다. 동부여행 다녀왔는데...스밀라님도 그곳 어딘가에? ^^ 암튼, 이 작가를 눈여겨보도록 하겠슴다.

이리스 2005-08-2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관심갖고 있던 책인데..
보관함에 담아둬야징 ^^;

2005-08-22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2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에서 외식할까?
메뉴판닷컴 편집부 엮음 / 메뉴판닷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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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때면 버릇처럼 메뉴판닷컴에 들어가서 레서피를 확인하곤 한다. 메뉴판닷컴측에서 올린 레시피도 레시피지만, 일반 네티즌들이 올려놓은 <나만의 비법>를 체크하다보면 '바로 이거다!' 싶은 비법들을 꼭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여느때처럼 메뉴판닷컴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알게된 책이 바로 이 <집에서 외식할까?>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맛집 정보' 와 '요리책'을 한권에 묶은 책이다. 요즘 잘 나간다는 유명음식점들을 소개하면서 그 집의 대표적인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때문에 이 책에 실린 메뉴들은 좀 유행을 타는 메뉴들이다. 태국 음식이라든지 베트남 음식, 일식 중에서도 처음 들어보는 특이한 요리의 레시피들이 담겨져있다. 목차만 체크해보더라도 생판 들어보지 못한 요리 이름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요리 매니아라든지 미식가들은 혹할만한 책이지만, 실용적인 요리책을 원하는 대부분 독자들에게는 좀 황당한 요리책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집에서 외식할까?>지만 책속의 요리를 준비하다보면 특이한 식재료들을 구입하느라 외식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수도 있다. 피쉬소스나 코코넛밀크를 찬장에 항상 갖춰놓고 있는 요리매니아들이라면 몰라도,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외식 한번 하는게 속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경우는? 요리는 별로 잘 하지도 못하면서 (물론 피쉬소스나 코코넛밀크도 없다) 그저 관심만 많은 나같은 요리책 수집가에게 이 책은 그래도 꽤 괜찮아 보인다. 책 구성도 아주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고, 유명 주방장들이 알려주는 '비법'들은 의외로 다방면에서 응용가능해 보인다. 아직 몇개 시도해보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만들어봐야지 저것도 만들어봐야지 계획만 세워놓고도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보라, Œc양꿍이니 기로스같은 요리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 볼수 있다니! 실험정신을 마구마구 자극하는 요리책이다.

새로운 레시피를 끊임없이 시도하시는 분들, 특이한 요리를 짠~ 준비해서 손님들 놀래키기를 즐기는 분들께 강추하고 싶은 요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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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5-08-1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간단한 거부터 쬐금 복잡한 것까지 다양해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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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알라딘 아이디 Smila 는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 스밀라(Smilla)에서 따왔다. (사실 알라딘 아이디만 Smila가 아니다. 국내 왠만한 ž攬瑛鉗의 smila라는 아이디는 내가 다 선점해놓았다. ) 내가 이 소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주는 단편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소설에 흠뻑 빠지게 된 까닭은 바로 주인공 스밀라때문이다. 그동안 읽었던 그 어떤 소설의 여주인공보다도 매혹적인 여인 스밀라. 소설가 김연수는 그녀에 대해 '존경심'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심정이다. 그녀의 섬세함, 강인함,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 내게 가장 결여된 것들을 갖고 있는 그녀. 내 캐릭터와는 가장 반대쪽에 서있는 그녀를 난 흠모한다, 사랑한다. (존경은 좀 심한 표현일지 몰라도, 흐흐)

여러해 전 절판되었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은 내 책장에 신주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처음 출판되었을 때 국내에선 그다지 관심을 못 끌어서 (유럽에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였지만) 서둘러 절판이 되었었다. 하지만 서서히 스밀라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뒤늦게 절판된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로 안다. 이 소설이 다시 발간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절판된 이 책의 초판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서 얼마나 뿌듯해 했었는지... 다시 출판되었으니 이젠 혼자서 뻐기기도 틀려먹었다. 스밀라의 매력을 더욱 많은 독자들이 나눌수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지만... 그래도 배가 살살 아파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 비밀 연인을 다른 이들에게 빼았기는 느낌이 이런 거려나.

( 알라딘 첫 페이지에 신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떴길래 벅찬 마음에 리뷰랄 것도 없는 글을 서둘러 올린다. 죄송... 언제 한번 맘먹고 스밀라에 대한 연서를 다시 올려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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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5-08-1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보면서 Smila님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 읽지 않아서.. 꼭 읽어봐야지 그러고 있답니다.. ^^
언제 오시나요??

▶◀소굼 2005-08-1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태 내용도 모르는데 알라딘 분들이 하도 좋다고 하시길래 계속 헌책방 사이트 돌아다녔었죠; 여튼 스밀라님 만세~;

이리스 2005-08-1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저도 스밀라님 만쉐이.. 입니다 ^^;

플라시보 2005-08-1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뻐기긴 걸렀어요. 으흑...^^ 그나저나 이 책이 다시 출판되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sooninara 2005-08-1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덕에 질러버렸습니다^^

진/우맘 2005-08-1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리고 있다가 반겼지요.^^ 그렇게 조기 단종될만한 책이 아니었건만,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스밀라님, 반가워요.^^

LAYLA 2005-08-1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밀라님이 책 내신줄 알았습니다 진짜로요. 이 책 몰랐거든요
그 동안 뜸하셨던게 책 준비하셨던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도 반가운마음에 책정보를클릭했던...

물만두 2005-08-1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님 생각나신다던 부리님 말씀이 맞았군요^^ 근데 저도 갖고 있어요^^;;; 더 잘 나왔다는데 그래도 전 예전판에 더 애착이 있어 좀 더 두고 볼랍니다^^

마냐 2005-08-22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일단 땡스투. ^^

nemuko 2005-08-2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수 54는 첨 봅니다^^

책읽는나무 2005-08-2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그래도 스밀라님 덕택에 언제 한 번 이책을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지만...현재 추천수가 65라니.....빨리 서둘러야겠군요....
품절되기전에..ㅡ.ㅡ;;

잘 지내시죠??
 
쇼퍼홀릭 1권 1 - 레베카, 쇼핑의 유혹에 빠지다 쇼퍼홀릭 시리즈 1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앞부분 몇장을 채 읽기도 전에 내 입에서 터져나온 탄성 - '아우쒸, 이거뭐야! 이거 내가 썼어야하는 소설이잖아!' 아니 이게 대체 왠말인가. 내 평생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었단 말인가? 그래, 중요한건 쟝르가 아니다. 쇼핑에 관한 얘기라면 무엇이든. 그게 쇼핑에 관한 전기문이었건 쇼핑에 관한 시조였건 그건 내가 썼어야 했는데! 나라면 정말 할말이 많단 말이다!

포인트 채우느라 필요도 없는거 산거? 으악 이거 내 얘기야. 나중에 누구한테건 선물로 줘야지 하고 미리 사두는거? 으악 이것도 내 얘기. 고가브랜드 못 산거 분풀이하느라 저가브랜드 여러개 산거? 으악 으악! 찜해놓은 거 다른 사람이 사갈까봐 잠 못 잔거? 으아악, 이 소설은 정말 내가 썼어야 하는데!!!!

그런데, 억울해서 악악대다보니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다 싶다. 쇼핑을 사랑하는 수많은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 (쇼핑을 꼭 여자만 좋아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이거 정말 내얘기야 하며 무릎을 탁탁칠게 분명하다. <쇼퍼홀릭>은 수십,수백만 쇼퍼홀릭들의 절대공감을 딛고 일어선,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소설이다.

어차피, 생의 의미를 밝혀보기 위해 이 소설을 집어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맞아맞아' 하면서 읽는 동안만은 실컷 웃게만드는, <쇼퍼홀릭>은 그런 제 본분에 충실한 소설이다.

쇼퍼홀릭 베키가 엄청난 카드 빚에 시달리는 주인공이라고 해서 이 소설을 한심하다 매도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베키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닐 대부분의 독자들이 한결 여유로운 맘으로 베키의 고군분투를 즐길 수 있다. 모든 문제들이 막판에 너무 감쪽같이 해결된다고 궁시렁거릴 것도 없다. 어차피 <쇼퍼홀릭>류의 소설을 구입했을 땐, '통쾌한 대리만족'을 위해 책값을 지불한 거 였으니까. (아무리 쇼퍼홀릭이라도 가격대비 성능은 항상 체크한단 말이다!)

 모두가 한심하다 비웃을지라도 난 이 소설에 별 네개 주련다. 별 세개 주기엔 내가 너무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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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08-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스밀라님 우리나라에 돌아오신 건가요? 육아하시느라 책 못 읽으신다더니 성연이도 어지간히 컸겠네요. 대충 돌 무렵 되었을 것 같은데..... 리뷰 하나만 올리시고 총총히 사라지셨지만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 종종 모습 좀 보여 주셔요~~~~~^^

panda78 2005-08-0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스밀라님, 이게 얼마만인지요! ^ㅂ^ 정말 정말 반가워요!!
전 이거 원서로 사 봤는데, 뒷부분에 베키가 너무 잘나지는 것에 속이 뒤틀려서.. ^^;; ㅎㅎㅎ
앞으로 또 뵐 수 있는 거지요? 기다릴게요---

플라시보 2005-08-0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밀라님 무지하게 오랫만입니다. 비록 리뷰로 만나지만 이렇게 뵈니 좋네요.^^잘 지내고 계신거죠? 보관함에 댐시 담아야겠습니다. 저도 이런 얘기 겁나게 좋아하거든요. 흐흐.

Smila 2005-08-0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들 안녕하셨죠? 전 얼마전 서울로 돌아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알라디너로 다시 활동할 엄두는 안나지만^^ 리뷰라도 종종 올릴까하구요....그 사이에 Thanks to 라는 제도가 생겼더라구요? 것두 모르고 지냈어요^^;;;;

DJ뽀스 2005-08-0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오셨군요 ^^: 여기서 다시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귀염둥이 준연이 성연이 보고 싶네요~ ^^:

panda78 2005-08-0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미남 준연이 얼마나 컸는지 궁금해요. ^^

Laika 2005-08-06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오셨군요....으아~~ 너무 반가워요.... 님의 글보니, 읽고 싶어요..^^
잘 생긴 준연이 저도 보고 싶어요^^

ceylontea 2005-08-1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셨구나... 휴가때라 이 리뷰는 못봤어요...^^

쥬넬 2005-09-2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입한 책, 네이버 제 블로그에 '펌'하렵니다. (drugz)
 
웬디 수녀의 미국 미술관 기행 1
웬디 베케트 지음, 이영아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 리스트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이란 나라에 가면서 미술관 구경할 생각에 가슴 부풀어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보다 더 현대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구경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라스베가스에서 슬럿머신을 땡기고 뉴욕 거리에서 뉴요커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걷고 싶다는 것이 우리가 미국여행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기대이다.

뉴욕이나 시카고에 갔을 때, 나는 그래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들러보기는 했었다. 이제사 생각해 보면 두 곳 모두 대단한 미술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한참이나 어렸던 나는 미술관 관람에 최소한의 시간만을 할당했고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 관람을 마쳤었다. 미술관말고도 가고싶은 곳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웬디 수녀의 책에서 두 미술관을 다시 만난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내가 그 미술관들에 과연 가보기는 했던 걸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아주 소중한 경험을 망쳐놓은 건 아닐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선입견을 갖기는 웬디 수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웬디 수녀는 이 책 속에서 상당히 흥분하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 곳곳에 그렇게 훌륭한 미술관이 많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미술관들마다 훌륭한 소장품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내내 감탄하고 있다.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놀라움이 더욱 컸을지도 모른다. 지면 상의 한계 때문에 다루지 못한 미술관들과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이 책 전체에 가득하다.

덕분에 이 책은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관 기행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수적으로는 많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만큼 한 작품에 대해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의 길이는 짧아졌다. 이 부분이 내가 이 책에 대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그녀의 푸근한 이야기들은 좀 더 길게 들어야 맛인데... 내 바램을 만족시키기에는 모든 글들이 너무 짧기만 하다.

그러나, 역시 글자 수의 제약도 그녀의 삶에 대한, 그림에 대한 통찰력을 빛바래게 하지는 못한다. (단지, 구성진 맛이 덜해졌다고나 할까.) 내가 가장 사랑해마지않는 그녀의 '보통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여전하다. 그녀는 옹졸하지 않다.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사람들의 들끓는 욕망을 경멸의 대상으로 손쉽게 분류하지 않는다. 좀더 높은 곳에서 인간들을 가여운 대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기로 만든 도박용 게임 세트'를 보면서 '하느님, 불쌍한 도박꾼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드리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그것들을 보며 '삶의 감각적인 품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게 그녀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참, 잊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는 12세기의 고려청자 물병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애국하면 망한다'는 백남준의 말에 몰표를 던지는 사람이지만, 이런 순간엔 정말 순수한 즐거움에 몸서리치게 된다. 더우기 오리 모양의 이 고려청자 술병이 책속의 다른 어떤 작품들 못지않게 훌륭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때에는. (이 청자가 시카고의 미술관에서 수많은 세계인들을 기쁘게 만들 걸 생각하면, '어,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왜 거기 가있지? 언제 약탈당한거야?' 하고 마냥 흥분해 할 일만도 아니다.) 웬디 수녀가 이 청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볼까? '나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언짢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 한국인(고려인)이 이 물병의 아름다움에 미소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웬디 수녀님, 알고 계신가요? 힘겨운 하루를 보낸 후,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짢은 기분을 달래는 한국의 여인네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아, 미국을 다시 방문하게 되면 미술관 바닥에 죽치고 않아 하염없이 작품들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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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3-03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친구중에 지금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는 아이가 있는데.....걔의 홈피에 메트로폴리탄 뮤점이라며 어느 조각상앞에서 찍은 사진을 하나 올렸더군요....전 미술품을 보는 식견이 많이 부족합니다.....하지만.....그냥 눈요기삼아 무언가를 보는건 좋아합니다....처음엔 그냥 그렇게....두번째는 좀더 자세히....세번째는 처음에 보지못한것들을 보면서 내생각을 넣어보기도 하면서요...그래서 무언가를 머리속에 박아놓기 위해서는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봐야하는 습성이 있는데....그러면서도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은 아주 많습니다....새로운곳에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텐데 말이죠!!....암튼....친구의 사진을 보고서 미국이란 나라....정말 가보고 싶더군요.....젊은 시절에 중년이 되면 꼭 유럽을 다녀와야겠단 다짐을 했었는데....요즘은 그것을 미국으로 바꾸고 싶단 생각을 많이해요...그러려면 돈을 많이 모아야겠지만....님의 리뷰를 보니 일단 이책부터 먼저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