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한창 이 책을 찾고 있던 시기에는,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쯤) 이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구판은 절판된 상황이었고, 문학동네에서 곧 이 책을 출판할 계획이란 건 나같은 평민으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아마존에서 영문판 페이퍼백을 주문해서 읽었다. 힘들여 남의 나라 말로 읽는 판에, 영문판 역시 원작이 아닌 번역판이란 생각을 하면 힘이 쫘악 빠졌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만큼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책이 '자아의 신화'에 관한 책이란 이야기를 어디선가 줏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아의 신화라... 이런 이야기엔 누구나 가슴 설레게 마련이다. 나의 꿈이 무언지 아직 모르는 이에게도, 이미 꿈을 찾아 길을 떠난 자에게도, 꿈이란 걸 기억 속 저편에 묻어둔지 오래된 이에게도...모두에게 꿈이란 분명 '흥분제'와도 같은 단어다.

책을 펴들고 한장 한장 넘기면서(분명 더딘 속도로 넘기면서), 이 소설이 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소설의 문학성이나 완성도를 떠난 문제였다. 이 소설은 온 인류가 마음 속에 품고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매는 심각하면서도 난감한 문제를, 너무도 쉽고도 편안한 우화 속에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길 떠나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라... 이런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누군들 읽고 싶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 책은 시작부터 희망적인 암시를 주고 있었다. '간절한 꿈을 찾아 나선 자는 우주가 힘을 합해 도와준다'는 믿음의 암시. 사실, 살다보면 이 말이 확고부동한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금새 이 말처럼 새빨간 거짓말도 없는 듯이 여겨진다. 삶은 끝없이 우리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양치기 소년는 흔들림없이 이 믿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소년을 따라 아프리카 대륙으로 함께 길을 떠나면서, 나는 작가가 이 거창한 주제의 결말을 어떻게 맺을지 몹시도 궁금해졌다. 소박한 우화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은 지혜롭고도 지혜로운 자도 쉽게 대답해줄 수 없는(혹은 대답해준다해도 나처럼 어리석은 자는 못 알아들을) 문제를 화두로 턱 하니 던져놓았으니...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과연 그처럼 지혜로운 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혹시 연금술사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도?!

앞으로 읽으실 분들을 위해 결말에 대한 언급은 피하겠다. 느낌만을 말하자면, 내가 기대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신비주의적인 결말이었다. 결국 해답을 구하는 임무는 또다시 내게로 떨어진 셈이다.

사실, 애초부터 이 소설 한권에서 어떤 해답을 얻겠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연금술사>는 지혜서가 아니라 소설이니까. 다만, 내가 때때로 잊고 지내지만 영원히 잊고 살지는 못할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은 가졌던 것 같다. 결국, 다다른 결론은 - '나는 참으로 먼 길로 빙빙 돌며 살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낯선 거리에서 잠시 짐을 풀고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아예 모르고 있던 결론도 아니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기와 나 1 - 애장판
라가와 마리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고령 출산이라고 남들 안하는 산전검사까지 받았던 주제에, 난 여전히 철없는 엄마다. '소중한 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끼지만,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은 때때로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신생아였을 때엔, 우는 아들을 달래다가 '울지마, 준연아! '누나'가 안아줄께'라고 말이 헛나온 적도 몇번 있었다. 아기가 이 말을 알아들었다면 정말 기가 막혀 울음을 뚝 그쳤을 일이다.

<아기와 나>를 읽게된 배경에는 이런 나의 철없음이 자리잡고 있다. '아기와 나!' 요즘 내 생활을 이 제목보다 더 집약적으로 표현해줄 문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 24시간 내내 뗄래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 '아기와 나!' 이 만화책은 진정 나를 위한 만화책이구나 싶었다. 한술 더 떠서 주인공 '진이'와 나를 무의식 중에 동일시하며 '그래, 진이는 도대체 아기를 어떻게 키우나 보자'하는 심정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만화책을 한권 한권 읽어가며, 나는 역시 '스스로 때때로 착각하듯' 더 이상 어리지도 젊지도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진이가 아기를 기르며 씨름하는 부분은 그런대로 재미있었지만, 진이의 친구 관계나 학교 생활 부분이 나오면 한없이 지루해지는 것이었다.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싸움, 화해와 우정... 이런 내용들이 예전처럼 짜릿 짜릿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그러다 겁이 덜컥 났다. 지금도 이러는데, 우리 아들이 초등학생이 될 무렵이면, 그 녀석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어느새 새로운 이들과의 새콤달콤한 만남보다는, 이미 자리잡힌 안정된 관계를 다지는데 더 신경을 쓰는 나이가 된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더 이상 대단한 자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물론 '아기'라는 엄청나게 강력한 자극제를 만난 직후의 일시적인 증세일 수도 있다.)

결국, 만화책을 읽는 내내 '신이' 등장 부분만 열심히 보고 다른 부분은 대충대충 훑어보았다. 아기도 잘 기르고, 여자아이들에게 인기도 많고, 친구들 사이에서 의리도 있는 완벽한 녀석 '진이'는, 한편으론 으젓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좀 징그럽다는 생각도 해가며...

문득, 이 책의 광팬들이 '왜 늙은 아줌마가 리뷰를 올리고 난리야'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제 나도 그토록 사랑하던 '만화계'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일까? 그러긴 싫은데.. 아들 준연이와 같이 만화책 보며 깔깔 웃는게 나의 소원인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이미 많은 분들이 독자 리뷰를 통해서 이 책을 칭찬하신 마당에, 비슷한 의견을 하나 더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싶던 말이 다른 분들의 리뷰에 거의 다 들어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리뷰라서 그런지 독자 리뷰들도 대부분이 '재미있고 유익했다'. 바로 이 책이 그렇듯이...)

그래서, 꼭 하고싶은 말 한마디만 하려한다. 많은 분들이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알고 읽을 경우, 열배는 더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스티븐 킹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더라도 여전히 훌륭한 책이겠지만, 그의 소설의 매력을 아는 이들이 읽는다면 문장 하나 하나의 의미가 정말 생생하게 와닿는다.

내 경우엔 이 책은 정말 샘물같은, 단비같은 책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대책없이 부풀어 오르던 수많은 '궁금증'들, 그에 대한 해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소설의 결말을 미리 정해놓을까? 이렇게 생생한 인물들은 어떻게 만들었지? 혹시 그의 어린시절도 악몽과 공포가 가득했던 건 아닐까? 이렇게 쉬지 않고 책을 내는 데, 소재 고갈로 괴롭던 적이 없을까? 그는 돈 때문에 책을 쓰는 걸까? 그는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 못해, 그는 재미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무서운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들...

스티븐 킹은 그에 대한 답변들을 정말 속시원하게 알려준다. 어떤 답변들은 허탈했지만 충분히 즐거웠고, (어릴적 베이비시터 엉덩이에 깔리던 기억이라니...하하) 어떤 답변들은 너무 심각해서 정색을 하고 책을 읽었다. (마약 중독이 심했을 땐, 구강청정제까지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답변 하나 솔직담백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 그는 이런 식으로 그의 멋진 소설들을 만들어냈구나.'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다시 한번 그 소설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한마디만 하려던 것이 너무 길어졌다. 그러나, 결국 내가 하고픈 말은 한마디다. '달랑 이 책만 읽지 말고, 그의 소설과 함께 읽으시라!' 소설들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나중에 읽는 편이 더 좋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어버리신 분들도 늦기 전에 그의 소설 한 두편은 꼭 읽어보시길. 그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진정 무얼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을테니까.

(최근 소설 중에는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가장 권한다. 다만, 이 소설도 <쇼생크 탈출>, <미저리> 처럼 영화보기로 대신 하진 마시길. 영화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소설에 비하면 정말 '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요즘 백일된 아기를 기르느라 책 한권 마음 편히 읽을 수가 없지만, 아기가 낮잠잘 때마다 짬짬이 읽어 이틀만에 책장을 덮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넉넉한 상황에서 읽었더라면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내었을,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난해한 이야기들을 지껄여댄다. 프랑스적이란 게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저 피상적인 이해 수준에서 말하자면 이 책은 상당히 프랑스적이다.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오락 프로보다 토론 프로가 인기가 좋다는 그네들, 프랑스인들 말이다.

그런 식의 (나름대로 철학적인) 대화라는 것이, 옆에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지나치게 지루하거나 역겹기 쉽상인데도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엄청나게 현학적인 '진드기'와 소심한 '삐딱이'가 만나 치고 받는 대화는, 단순히 '유머 감각'이라고 표현하기엔 아쉬운 무척이나 쫄깃쫄깃한 재미를 담고 있다. 더군다나 순전히 대화만으로도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짜임새있는 구성을 직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작가는 흔치않은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기대 밖의 반전'이 이 소설의 묘미라고는 하지만, 그 반전이라는 것이 아주 예상 못할 바는 아니다. 행여 초반부부터 반전을 짐작하고 읽는다 하더라도 재미가 완전히 반감되는 것도 아니고... 반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있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대화 한줄 한줄의 매력이 더 빛을 발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내면을 일그러뜨리는 아멜리 노통만의 방식도 신선하고. 어쨌든,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련다. 역시 '반전'이라는 건 모를수록 좋은 거니까.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바로 아래에 적힌 독자 서평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은 후에 읽어보세요. 결말이 그대로 드러난 스포일러 Spoiler입니다.)

'훌륭한' 작가라는 이름보다는, 아직은 '멋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한 젊은 작가 아멜리 노통. 이 책을 통해서 '멋진 작가' 한 명을 반가운 마음으로 만났다. <알라딘>에서 모두 Editor's Choice로 선정했다는 그녀의 나머지 소설들도 차근 차근 읽어볼 생각이다. (그런데, <사랑의 파괴>는 벌써 품절이라네요...쯧쯧)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면세구역
이영수(듀나) 지음 / 국민서관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국민학교 이후 처음 SF소설을 읽었다. 듀나 Djuna의 <면세 구역>. SF 소설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듀나의 소설을 읽고 싶어 펴든 책이지만, SF소설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인터넷 상의 듀나의 게시판을 수시로 찾아가며 느끼는 거지만, 듀나는 자신의 주종목인 SF소설, 영화 외에도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도.대.체. 모.르.는.게. 없.다. 네티즌들이 수없이 퍼부어대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 올라오기까지 15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드물고, 쓸데없이 깽판을 놓을 작정으로 달려드는 웹상의 무법자들에겐 얄밉도록 신사적으로, 근사하게 대처한다. (물론, 무법자들을 완전히 깨부숴 버린다.) 대단한 센스와 재능의 소유자, 도대체 이 인물은 누구인가? 그의 작품집을 읽으면, 좀 가닥이 잡힐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펴든 책이다.

책 속의 단편들을 한편 한편 읽어가면서, '기계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바로 나) SF소설에 적응하기 힘들거야'라는 선입견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적어도 듀나의 SF 세상은, 상상력의 장벽을 허물기에 효과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또 하나의 신나는 이야기 세상일뿐이었다. 주인공들이 존재의 한계(반드시 인간일 필요도 없고), 역사의 한계, 자연 법칙의 한계로부터 좀 더 자유롭다는 점이 다를 뿐.

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엔 항상 읽는 이의 뒷통수를 탁탁치는 반전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듀나다웠다. 대부분이 사건 전개 상의 반전이라기보다는, 존재의 정체와 관련된 반전이라 점도 듀나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 말미의 작가 해설마다 '이 단편은 누구누구의 어떤 작품의 패러디다.' 혹은 '어떤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적혀있는데, 그걸 보며 '너무 알아도 걱정, 너무 정직해도 걱정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듀나 스스로가 이미 너무 많은 작품들을 읽은 탓에, 자신의 소설 속에서 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그림자가 자꾸 발견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원작들을 하나도 안 읽어본 사람의 입장에선 듀나의 작품 하나 하나가 독창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한편으론, 그 '작가 해설'이라는 것 때문에 듀나가 여전히 '아마츄어리즘'을 즐기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일종의 취미로 쓰고 있을 뿐, 스스로를 본격 작가의 반열에 올릴 생각이 없다'는 메세지처럼 느껴진 것이다. 본격 작가들이라면 '나는 작품으로만 말한다'고 외치지, 이렇게 두어 줄 길이의 가벼운 코멘트를 덧붙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독자의 입장에선 이만큼 글을 잘 쓰면서 왜 작가 행세를 않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듀나의 입장에선 오히려 이러한 위치를 즐기는 듯하다. 그가 Djuna라는 이름 뒤에 숨어 익명성의 자유를 한껏 누리 듯이.

게을러서 장편은 못 쓸거라는 듀나 본인의 말처럼,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현재의 위치를 만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에서 벗어난 덕분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의 추종 독자들은 앞으로도 그에게서 '읽을 거리'를 얻기 위해 게걸스럽게 달려들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이만큼의 즐거움을 선사한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덮으며 그의 정체에 대해 떠오른 생각 한가지. '여보, 듀나는 여자야' 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자, 남편도 동의한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물증은 없다. 그저 육감일 뿐. 물론 우리 부부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면 또 어떠리? 듀나 스스로 밝히기를 원치 않는데, 우리도 더 이상 캐묻지 말아야 겠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