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빠빠 - 어린 딸을 가슴에 묻은 한 아버지의 기록
저우궈핑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읽는 내내 너무 많이 울었다. 밤중에 곤히 자는 아이들 곁에서 흑흑거리며 울다가, 다음날 거울 속의 퉁퉁 부은 눈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픈 책을 읽으면서, 사서 고생인가....' 그런 생각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아기 뉴뉴, 그 뉴뉴의 운명 자체가 너무 가슴아팠다. 겨우 18개월의 짧은 삶, 태어나자마자 곧 죽을 운명이면서도 열심히 자라고, 걸음마를 익히고, 말을 배우고,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애쓰는.... 그 부질없으면서도 아름다운 생명력이 눈물겨웠다. 아기를 낳아 길러본 부모들은 알 것이다. 어제 오늘이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의 시간들인가를. 곧 다가올 죽음과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그 기적의 시간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그 의미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엄마들은 엄마들일뿐이다. 내 자식이 그런 불행한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확인하고야 만다) 뉴뉴가 던져준 해석불가능한 운명의 의미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힘들게 지냈다.

생판 남인 내가 이런데, 뉴뉴의 아빠는 어떠했을까. 철학자인 그는 끊임없이 뉴뉴가 던져준 가혹한 운명의 의미를 캐묻는다. 부모라는 것, 자식이라는 것,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해답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장 자식이 죽어가는 마당에 무슨 철학을 논하는가....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뉴뉴의 아빠에게는 그것만이 고통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고통 앞에 선 인간들에겐 의외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지 않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그에게 가장 익숙한 '사색하고 글쓰기' 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과정이  저자 자신에게는 부질없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값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뉴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졌던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언급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저자는 아기의 안구를 적출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은연 중에 '앞을 못보는 인생을 사느니 죽는게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기 뉴뉴의 죽음이 가까와올수록 그에게 깊은 회한을 안겨준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기가 기형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검사결과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병원이나 주위사람들이, 기형아일 경우 낙태하는 걸 너무도 당연시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더욱 가슴이 서늘했던 건 나 자신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갈등했었다는 사실이다. (이후에 소설가 공지영이 비슷한 경험을 한 내용을 글로 적은 걸 보고 공감하기도 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문제가 없는 완벽한 아이를 꿈꾼다. '손가락 발가락만 다 있으면 된다' 며 소박한 소망인양 말하지만, 그런 소망 뒤에는 '정상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위험한 생각이 숨겨있는지도 모른다. 또 이러한 '완벽한 아이'에 대한 환상은 정상적인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된다. 아이들이 갖추어야할 완벽한 조건들에 대한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요구들을 통해서.

그러나, 저자의 표현대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아기의 죽음 앞에서 부모는 결국 '불구든 어떻든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이 아이뿐이다'라고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지럽게 칠해진 마음의 덧칠들을 벗겨내고 나면,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 모든 부모들의 진심일텐데. 부모들도 어리석은 인간인지라 그것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뉴뉴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아기의 흔적, 몸짓, 사소하게 던진 말한마디도 잊지않고 기억하려는 저자의 모습은 눈물겹기만하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철학자의 글로 읽혀지던 이 책이 결국에 가서 약하디 약한 아비의 벌거벗은 글로 읽혀진다. 아기 뉴뉴가 남긴 예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맘때 우리 아이들이 옹알거리던 목소리들과 겹쳐지면서, 가슴에 하나하나 아프게 박혀왔다. 뉴뉴야, 부디 가장 좋은 곳에서 네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길....

소용없는 바램인 줄 알면서도 빌어본다. 세상 어느 자식도 아프지 않기를. 세상 어느 부모도 가슴미어지지 않기를. 정말 소용없고 부질없는 바램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빌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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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6-06-0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는 싶은데 너무 슬플까봐 망설여집니다.

비로그인 2006-06-0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마음을 참 잘 그렸네요. ..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