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키튼 1 - 사막의 카리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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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스터다. 키튼도 마스터, 우라사와 나오키도 마스터, 스토리작가 카츠시카 호쿠세이 역시 마스터. 우리는 만화책 한 권에서 영광스럽게도 세 명의 마스터를 만난다.

먼저, 키튼을 만나보자. 그는 역사를 알고, 자연을 알고, 사람을 아는 지혜로운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여 놀라운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 탁월한 행동가이다. 어차피 유능한 인물을 좋아하는 가여운 우리들, 도무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어설픈 헤어스타일과 조는 듯한 눈의 소유자이고, 아내로부터 이혼까지 당한 인간적 결함마저 안고 있으니 더더욱. 그는 매 에피소드마다 우리들의 가장 큰 형님이 되어 시련에 봉착한 스스로를 구하고, 등장 인물들을 구해내고, 결국엔 우리들의 지친 삶을 위안한다.

그리고, 우라사와 나오키. 우리는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를 마스터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 작품과 더불어 그는 마스터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그의 훌륭한 데생 실력, 표정 묘사, 화면 연출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언젠가 방송용 “에니메이션 마스터 키튼”을 볼 기회가 있었다. 캐릭터의 그림체도 그대로 살아있고, 보기 좋은 때깔(컬러)까지 입혀져 있었건만 TV에서 보는 마스터 키튼은 만화책 속의 그 마스터 키튼이 아니었다. 동영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정적인 공간 종이 위에서만 가능했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화면 연출이 사라진 탓이었다. 단 한 컷에서 한 인물의 인생마저 담아낼 줄 아는 마스터의 손길이 거기 없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선 이 만화의 백미인 '매 에피소드의 마지막 컷'을 살리지 못했다. (나는 마스터 키튼을 바로 그 마지막 장, 마지막 컷 때문에 보는지도 모르겠다. ) 마지막 컷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와 그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를 품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컷을 보고 나면 어느새 느닷없는 한숨이 새어 나오고, 또 한동안 그렇게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마지막 장을 보고 곧바로 다음 에피소드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돌심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끝으로 카츠시카 호쿠세이. 그 역시 마스터이다. 우라사와의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어떤 품격을 '마스터 키튼'에게 얹어준 건 바로 그의 공이다. 역사적 배경 뿐만 아니라, 최근의 시대적 상황까지 꽤뚫는 유럽 세계에 대한 그의 폭넓은 이해와 방대한 정보 수집 능력.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유럽에 대해 공부해서 정리만 해도 칭찬을 들을텐데, 그걸 재료로 멋진 이야기까지 빚어내는 그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몇몇 에피소드 속에서 유럽인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복합적인 민족적 감정을 묘사하는 걸 보면서 이 호쿠세이란 작가가 정말 유러피안이 아닐까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우리 나라 만화계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미대 출신의 만화가가 아니라, 바로 호쿠세이 같은 철저한 스토리 작가가 아닐까….

이 책을 스스로가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대여용이 아니라 소장용이다. 마스터에게는 경의만을 표할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까지 지불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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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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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마냥 아름다운 책이라기 보다는 읽는 이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드는 책이다. 장 자끄 쌍떼는 순간의 의미를 포착하는데 남다른 재주를 지닌 작가인 것 같다. 글로 또한 그림으로... 이 책 속에서 그가 주로 포착하는 순간들은, 우리들이 타인 앞에서 재빠르게 '잔머리'를 굴리는 바로 그 순간들이다. 슬프게도 그 '잔머리 굴리기'의 대상이 되는 타인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가장 친한 친구, 혹은 제목처럼 속 깊은 이성친구)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 앞에서 잔머리를 굴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가 나를 보잘 것 없다고 여길까봐, 나에게 상처를 줄까봐, 혹은 나를 버릴까봐... 열심히 열심히 잔머리를 굴린다. 그렇다면, 잔머리를 굴린 결과물은? 그를 버리고 그를 상처입히는 것!! 사람들은 단 한명의 속 깊은 이성친구를 그토록 원하면서 그 스스로가 속 깊은 이성친구가 될 생각은 도통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슬픈 상황들을 다루건만 이 책은 아주 경쾌하고 위트있다. '타인에게 상처주며 나를 지키기'가 일상 속에서 아주 교묘하고 티 안나는게, 그러나 참으로 허다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프랑스적인 사고방식과 도시적인 스타일이 우리 정서에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피소드를 하나씩 읽다보면, 내 삶의 골목 귀퉁이에서 벌어지곤 했던 아주 흡사한 상황들을 떠울리며 마음 속이 뜨끔뜨끔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상처입혔고 내게 상처주었던, '속 깊은 이성친구가 될 뻔 했던' 그 친구들의 얼굴을 한없는 그리움 속에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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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머리카락 - 이토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1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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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토 준지의 만화 리뷰 중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읽으면서 무진장 웃긴 했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정신 건강에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책이다. 특히 어린 친구들이 보아서 도대체 좋을 게 없는 책이다. 몇몇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병적인 상상을 근거로 삼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토 준지의 만화는 마약같다. 보고나서 불쾌한 기분이 들어 다시는 안봐야지 하다가도...결국엔 또 보는. 내 경우에는 그저 '공포'를 즐기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그의 기발한 상상력에 이끌려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사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무섭기보다는 불쾌하고... 어떤 때는 웃기기까지 하다. 어떤 것에서 공포를 느끼냐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난 이토 준지의 만화보다는 강경옥씨의 <두사람이다>같은 만화가 더 무섭다.

이 책에 실린 만화 중에 [공포의 기구]나 [조상님]같은 에피소드는 그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조상님]의 상상은 상당히 엉뚱하다. 조상들의 두개골이 대대손손 계속 붙어서 이어진다니...나 참,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두개골은 어떻게 생겨먹은 두개골인지!

[공포의 기구]의 탐미적인 상상력 앞에서는 정말 무릎을 꿇었다. 특히 사람을 대롱대롱 매단 기구들이 벌이는 키스신. 이런 상상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그걸 보면서 '이건 예술이다' 싶었다. 요즘은 CG기술도 발달했는데, 이 에피소드로 누군가 무시무시한 영화 한편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역시 정신 건강에 안 좋은 만화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학대와 관련된 내용... 정신 건강에 도움받으려고 이토 준지의 만화를 보는 분들은 없겠지만. 그 놈의 '정신 건강'때문에 별을 넉넉하게 주지는 못한다. 윤리성 별 빵, 예술성 별 넷 등... 평균 별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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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 만화교실
박무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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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 전, 이 책을 구입했을 무렵의 일이다. 직장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한밤중의 만화읽기로 해소하던 어느날, 문득 '내가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만화가가 되야 했는데, 어쩌다 이러구 있는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렵 읽고 있던 만화책 <마스터 키튼>의 감동이 좀 지나쳤던 모양이다.

사실, 학창시절 나의 거의 유일한 취미는 만화그리기였다. 틈만 나면 연습장을 온통 예쁜 여자애의 얼굴로 채우곤 했었다. 하지만, 만화가가 되기엔 스스로 공부를 너무 잘한다고(?) 오만을 떨며 만화가의 꿈을 손쉽게 내던져 버렸었다. 그런데, 어릴 적의 그 손쉬웠던 결정이, 막 30살을 넘긴 어느 날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만화가가 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감을 느끼며, 나는 몇 권의 만화 실기서적들을 구입했었다. <무일푼 만화교실>도 그 중의 한 권이었다. 실제로 이 책에서 권하는 펜촉과 잉크, 종이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한 순간의 바람'이었을까. 분주한 직장 생활에 밀려 나는 미처 한 페이지도 잉크로 채우지 못한 채 그냥 그 계절을 넘겼다. 그리고, 한살 두살을 넘기고 나니 이젠 정말 만화가의 길에 접어들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하여튼 <무일푼 만화교실>은 나에겐 이러한 사연을 안고 있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읽는 동안만은 재미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새롭고 얻게된 지식은, 비단 만화가 지망생이 아닌 만화의 열혈 독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왔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어이없게도 작가 박무직의 그림체다. 그의 그림체는 아무리 봐도 서툴다. 인체 표현이 특히 어색하기만 해서 아무리 정보를 얻으려고 보는 책이지만, 자꾸 눈에 거슬린다. 이 책을 통해 만화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애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데생연습을 좀더 충실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 책은 만화가 지망생들에게는 아마도 별 넷, 일반 만화 독자들에게는 별 셋짜리 책이 아닐까 싶다. 만화가의 길을 완전히 포기한 나는, 그래서 <무일푼 만화교실>에 별 셋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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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열매들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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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에서 독자들은 몇 번의 반전을 기대할까? 물론 소설에서 반전이란 게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반전 하나만으로도 어떤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혹시 매 '장(chapter)'마다 반전을 만나는 특이한 경험을 원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정열의 열매>를 꼭 읽어보시길. 이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그 어느 반전도 절대 부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반전'에 목숨을 건 소설이냐. 그건 아니다. (그런 소설들은 대개의 경우 '스토리'가 소설의 중심인 반면)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인물'이 중심이자 생명인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러니까 말로센 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같이 정말 '골 때린다.' 이들의 삶에선 생활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도 반전은 숙명이다. 이들은 절대로 평범한 우리들의 기대대로 살아주지 않기때문에.

그래서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기분좋다, 유쾌하다. (특히 '유쾌'라는 이 단어, <정열의 열매>를 읽은 사람들의 감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 같다.) 분명 급진적인 형태의 삶을 살고 있으며, 말할 것도 없이 소수자에 속하는 이들 말로센 부족. 그러나 이들은 이상스러울만큼 친근하고, 살붙이처럼 정이 가는 묘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스토리마저 재미있으니... 이런 즐거움을 안겨주는 작가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다니엘 페낙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어쩌고 하던 그 소문이 충분히 근거 있는 소문이었다. 특히 말로센의 수다스런 독백에서 종종 등장하는 탁월한 표현들! 정말 어떻게 이렇게 묘사할 수가 있을까하고 놀라고 또 놀랐다.

그러나, 소설에서 재미와 완성도 말고도 뭔가 '찐한 감동'을 원하시는 촌스런 독자분들께는 어쩐지 허전할 수도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사실은 나 역시 그런 촌스런 독자인 터. 이처럼 화끈하게 잘 쓰여진 소설에, 별 다섯을 화끈하게 주지 못하다니...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책장에 꽂혀있는 그 제목 글자에 눈길만 닿아도 가슴이 짜~하기까지한 (난 역시 촌스럽다) 그런 소설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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