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
박파랑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고매하신 예술 관련 서적을 속풀이 해장국에 비유해는 건 무례한 일일까? 해장국처럼 후련하다고, 건더기도 많아 배까지 부르다고. 어쩐지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표현도 용서해줄 것 같다. 무장해제를 하고 나선건 그녀가 먼저이니까.

박파랑은 까놓고 말한다. '나는 미술을 모른다!'고. 독자인 나로선 그의 고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겸손을 가장한 채 잘난 척하는 거 아냐? 예술학을 전공한, 시립 미술관 큐레이터라면서?

하지만, 저자가 '미술을 알수 없어서, 그림을 사랑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녀의 솔직함과 진솔함에 놀라게 된다. 이미 미술계를 떠났으면 모를까, 여전히 그 바닥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이런 고백을 한다는 건 어느모로 보나 본인에게 득될 리가 없을 터인데! 하지만, 저자 스스로 솔직하기로 작정했기에, 그녀의 또다른 외침은 더욱 당당하게 들린다. '그래, 나는 그림을 모른다. 그럼 그림을 안다고 잘난 척 하는 당신들은(미술계 인사들) 과연 그림을 아는가????'

단도직입적이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저자의 문체 덕분에 안그래도 신랄한 비판들이 더욱 후련하게 다가온다. 아주 쭉쭉 읽힌다. (하긴 속풀이 해장국이 어디 걸리다가 내려가는 거 봤는가. 한방에 쑥 내려가지....) 그러나, '아우, 시원해 아우, 시원해' 하면서 읽다보면 어느덧 슬퍼진다. 지적 사기와 서로 봐주기가 판치는 미술계의 현실도 안타깝지만, 미술 바닥의 이해관계와는 전혀 무관한 나로서는, 도대체 미술이란게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 사회의 문화적 토양이 더욱 슬퍼진다. 그림을 모른다고 소리높이지만, 그림을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진심이 담긴 책을 낼수가 없다) 저자가 들려주는 다른 나라의 미술계의 현실은 꿈속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나의 꿈은 적극적인 미술 후원가가 되는 것이다. 나의 처지와 경제적 사정을 다 아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웃다가 쓰러질 일이다. 하지만, 미술은 사랑하되 충분한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으며, 인생 길도 미술계 쪽으로 풀리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다. 미술에게 내 짝사랑을 제대로 고백하는. 그런 나에게 박파랑의 책은 힘을 준다.

빠듯한 예산 가운데도 매년 미술품 구입비를 따로 준비하고, 온가족이 함께 아트페어에서 작은 그림을 고르는 유럽의 중산층 가족들. 사실 거리에 그 흔한 명품 가방들, 그 가방 하나 살 돈으로도 얼마든지 평범한 후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을. 그런 평범한 후원가들도 미술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저자는 다시 한번 되새겨준다. 이렇게 기분이 든든해질 수가. 맞다, 진정으로 훌륭한 해장국은 속만 후련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이런 포만감도 안겨주지 않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나도 '라요스'를 한두명 쯤 알고있다. 하긴 살다보면, 라요스같은 인간들과 어쩔수 없이 마주치곤 한다. 아름다운 거짓말로 주위 사람의 혼을 빼놓고, 능숙한 연기로 진실한 이들의 판단력을 흐리는 사기꾼들. 쉽게 말하자면 인간쓰레기들. 그리고 소설 속 에스더처럼 어떤 여인네들은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 뭐 그리 드문 일이겠는가. 사기꾼 제비와 사랑에 빠진 순진한 처녀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소설 속에서 반복되어온 레파토리인것을.

다른 이야기들의 결말은 어땠더라? 순진한 처녀가 뒤늦게 잘못된 사랑의 실체를 깨닫고 사기꾼 제비를 통쾌하게 엿먹이던가? 아니면, 순진한 처녀의 사랑에 감복한 사기꾼 제비가 개과천선을 하던가? 아마도, 대부분 그런 비슷한 결말이었지 싶다. 그러나, 나는 <유언>에서 인간쓰레기와 사랑에 빠진 여인의 가장 우울한 결말을 보았다. 아마도 산도르 마라이의 인물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결말인지도 모르겠다. 한때의 사랑과 배신으로 지워진 짐을, 평생토록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 하지만, 비슷한 설정이면서도 <열정>에 비하면 작은 소품같은 이 소설은, 내 마음을 한층 더 어지럽힌다. 이렇게 마음이 심란한 건, 아무래도 그놈의 '라요스'때문인 것 같다.

<열정>의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배신과 상처를 남겼을지언정, 적어도 자기 삶의 진실에 대해선 거짓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라요스는 도대체 진실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간쓰레기이다. 그렇다. 나도 기억하고 있는 그 몇명의 '라요스'들은 사랑이란 걸 도무지 정체를 알수 없는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기억되던 그 얼굴이,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져 가장 천박하고 염치없는 얼굴로 변하고 마는 괴물.

만일 젊은 날의 에스더가 내 친구나 여동생쯤 되었다면, 내 입에서 나올 결론은 간결하고도 단호하다. 넌 도대체 사람을 볼줄 몰라! 잘못된 사랑이니까 당장 때려치워! 하지만, 라요스와 사랑에 빠진 불쌍한 여자애가 바로 나였다면, 모든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기만 할까? 에스더의 고백처럼 '그와 가까이 있을 때 느꼈던 위험이 내 삶의 단 하나 진실한 의미'라면 도대체 어쩔건가?... 나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이란게 그렇게 낚시 의자처럼 간단히 접혀지는 건 아닐게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라도. 내가 젊은 시절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인간쓰레기'를 향한 그 사랑에도 나름대로 충실하리라. 물론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하면서.

어찌보면, 인간쓰레기와 사랑에 빠지는 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충실해도 아프고, 사랑을 배반해도 아프다. 하지만, 어느 누가 안락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사랑에 빠지던가. 순간의 희열과 감동 뿐 아니라, 더한 고통과 위험까지 감당하면서도 기꺼이 기뻐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젊은 날의 사랑인 것 같다.

사랑으로 모든 걸 용서하자는 낭만적인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산도르 마라이도 지적하듯 사랑에는 '세상과 오성의 법칙보다 강한 명령'이 존재한다는 것, 그걸 믿는다는 얘기다. 세상 눈치보기에 바쁘고 손익계산에 칼같은 여편네로 변해버린 지금도, 나는 '가슴의 명령을 따르라'는 말을 믿는다. 왜냐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심하게 다칠 거란 걸 아니까. 인생의 유일한 진실마저 협박 수단으로 이용하는 라요스 앞에서, 말년의 에스더가 그토록 무기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 앞에서 도피나 타협을 선택했던 사람이라면 결국 그 댓가를 치뤄야 할지도 모를 혼자만의 깊은 상처.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젊은 날의 에스더에게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되 평생을 위험 속에서 허우적대는 삶, 아니면 사랑을 배신한 후 남은 생을 무덤처럼 사는 삶. 어느 편이 나은 선택인지 내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인생은, 사랑은 그래서 기기묘묘한 괴물들인지 모른다. 몇살 더 먹었다고 해서, 이미 다 겪어보았다고 해서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정체 모를 괴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갤러리이야기
이명옥 지음 / 명진출판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화랑이라는 공간에 관심이 있어 이리 저리 찾아헤매다 구해 읽은 책이다. 부제에 적혀있던 '갤러리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에 아무래도 솔깃했던 것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것들은 이 책에서 알아내지 못했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화랑과 작가의 관계, 화랑과 미술품 구매자들과의 관계 등이 그다지 깊이있게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 '애호가'라는 챕터 속에서 따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미술계와 전혀 무관한 나로서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들만 설명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좀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은 화랑 나름의 노하우에 속하기때문에 속속들이 드러내지는 않은 듯 싶다.

내가 기대하던 방향과 책의 내용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가 운영하는 사비나 갤러리에서 주관한 전시회들의 기획부터 전시까지의 기록들을 자세하게 남겼는데, 전시회들의 아이디어가 상당히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화랑 경영을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저자의 진솔한 고백도 인상적이었다.

'갤러리의 모든것'이라고 표현하기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별셋 반쯤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된 저자의 이름을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저자가 집필한 대중적인 미술책이 이미 여러권이다. 전시회의 컨셉들이 그랬듯이, 집필을 통해서도 미술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진다. 우선은 <팜므 파탈>이 눈에 들어온다. 그 책도 주문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5
장 마리니 지음 / 시공사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를 보면 어렸을 적 문방구에서 (서점이 아니라 문방구) 사서 읽곤 하던 「UFO대백과사전」이니 「공룡백과사전」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 흥미를 자극하는 신기한 정보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가뿐한 크기... 물론 이 시리즈는 어릴 적 그 백과사전들의 근거를 확인할 길 없는, 때로는 정말 터무니 없던 정보들에 비하면 훨씬 고품질, 고품격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몇 권의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가운데, 특히 이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은 더더욱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한다. 분명 그 소재의 기괴함때문에 더욱 그런 거겠지... 이 책은 유럽인들의 상상 속에서 발전해온 흡혈귀의 변천사를 더듬고 있다. 처음에는 극히 단순했던 '산 송장'의 개념이 종교적인 영향을 받고 (파문 당하거나 죄를 씻지 못한 시체들이 송장의 모습으로 떠돌아 다닌다는 식으로), 페스트 등의 재앙과 몇몇 엽기적인 실제 사건(살인광이었던 블라드 테페스와 바토리 여백작 사건)에 의해 살이 붙으면서, 유럽인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 흡혈귀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사실, 이 무렵까지는 흡혈귀는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일부 성직자들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서, 흡혈귀에 대한 믿음은 터무니없는 미신으로 여겨지게 되고 그 인기도 시들해진다. 그러나, 흡혈귀는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낭만주의 문학 속에서 부활하게 된다. 현실 속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흡혈귀에 대한 이미지는 그 유명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종합 정리되면서 전에 없던 '관능미'까지 획득하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헐리우드 영화의 인기 소재가 되면서 또 한번 대대적 탈바꿈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하게 여기는 흡혈귀의 이미지는, 그 오랜 역사의 맨 끝에 위치한 극히 최신식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비록 짧지만, 다분히 적절하게 인용되는 역사적 문헌들이 인상적이다. (이 문헌들은 인류가 미개함을 벗은 것이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누군가가 맘먹고 한참이나 수집했을 다양한 그림 및 사진 자료들도 흥미를 끌고. 물론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의 특성상, 이 책 속에는 깊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다채로움에 무게를 실은 폭넓은 정보들이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전후 관계가 차근 차근 설명된 나름의 맥락을 갖추고 있어, 읽는 이들이 충분히 수긍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 이렇게 짧은 분량의 글에서는 분명히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흡혈귀라는 존재를 좀 더 깊이있게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좋은 시작이 될만한, 잘 정리된 가이드북이라고나 할까? 물론, 흡혈귀에 대해 딱 요 정도까지만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만한 책이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4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써 20여년 전,(그러니까 11살 때) 나는 운좋게도 바티칸의 시스티나 천장화를 직접 구경할 기회를 가졌었다. 쳐다보는 것만도 목이 아파서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여러 번,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그 엄청난 천장화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엽서 속의 시스티나 천장화를 스케치북에 얼마나 열심히 베껴 그렸는지... 그때 가장 열심히 그렸던 남자의 모습은 [천지창조]속의 아담이었고, 여자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미켈란젤로의 복수] 표지의 바로 그 얼굴, 델포이의 여예언자였다. (그때는 누군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어린 나의 눈엔 그들이 가장 이상적인 미남미녀로 비춰졌었던 모양이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이 소설 <미켈란젤로의 복수>를 내가 얼마나 큰 관심를 갖고 읽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되었으리라 믿는다. 델포이 여예언자의 전혀 예언자답지 않은,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인간적 아름다움에 또다시 매혹되면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이 소설은 교황 암살, 바티칸의 나치 협조, 예수 부활의 부정 등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하기 그지없는 설정 속에서 전개된다. 나 역시 카톨릭 신자인지라 이 책이 너무 재미있게 읽혀진다는 사실에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구는 허구. 작가의 이 정도 소설적 자유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옹졸해서야 되겠는가. 작가 역시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이 모든 설정들이 한편으로는 어느 개인의 상상속 사건일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은폐된 사실일수도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어쨌건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 재미있다. 무수한 해석과 설명이 가능한 시스티나 천장화를 다시 뜯어보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고, 교황청 비밀도서관이라는 호기심을 지독히 자극하는 공간으로 안내되는 기쁨도 짜릿하다. 과연 현실 상황이었다면 아불라피아라는 한 인물의 주장이 담긴 문서가 교황청을 그렇게 들었나 놓았다 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사실 그보다 더한 수많은 반기독교적 주장들이 바로 이 순간에도 아우성을 치고 있는 걸 뭐.)

반덴베르크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그의 다른 소설도 챙겨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남는' 책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재미를 안겨준다는 점에선 추천할만한 소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