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을 잘라 보니까, 그 안에 뱃속에 점지된 태아와도 같은 꽃잎이 숫자와 형태를 겨우, 그러나 모두 갖구고 쟁여져 있었다. 꽃이 피지 않아도, 꽃눈 속에서, 개화를 예비하는 꽃은 이미 피어 있었는데, 아직 햇빛에 닿지 않은 어린 꽃잎들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꽃으로 피어날 색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흐린 연두색의 먼 저쪽 끝에서 이름 부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색이 배어 나와서 내가 있는 쪽 세상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꽃눈 안에서 시화평고원 같은 광막한 공간이 열려 있었고, 색은 지금, 그 지평선 너머에서 풍문처럼 번져 오고 있었다.-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