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제비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레이첼 카슨이 경고한 '침묵의 봄'은 이미 우리에겐 현실인 셈이다.

 

  아직 내가 청송에 살았을 때는, 봄이 오는 것을 귀로 먼저 느꼈다.

  먼산에 언뜻언뜻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하고, 채 초록으로 물들기도 전인 봄산 여기저기에서 쭈삣, 찌짓, 쪼조조 새들이 울기 시작하면 봄이 곧 오고야 말았다.

청송 촌뜨기였던 내가 대구로 이사온 뒤, 늘 여기가 어딘가 싶어 발밑이 허방을 딛는 것처럼 어찔어찔했던 것 같다. 

봄이 와도 새소리가 먼저 알려주지 않는 날들이 영 이상했다.

 

그때 대부분의 이농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울 아부지도 자식들 교육 때문에 도시행을 택했다.

"그때 내가 결단 안 했으모 니는 대학 몬 갔다. 대학이 웬 말이고, 고등학교도 겨우 보냈을 낀데."

다섯 남매 중 막내였던 내가 제 밥벌이하고 사는 게 대견해 보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다.

대학 못 나왔어도, 아부지 딸로 살았으니 그럭저럭 잘 살아냈을 텐데, 꼭 그러신다.

 

암튼, 없는 살림에 딸린 자식은 주루룩이고 도시 생활이 낯설기는 부모님도 매한가지였을 터.

방이 딸린 작은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으나 이미 결딴난 가게를 사기당해 넘겨받은 줄도 모르고 6개월을 파리만 날리다 결국 가게를 접고, 다시 이사를 했다.

어찌저찌 구한 이층 셋집은 그래도 방이 두 개였다. 그러나 청송 우리 마을에서 첫 번째로 들여놓았었던 텔레비전은 이사를 오자마자 고장이 났고, 나는 매순간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방을 나서면 2층 마당이었지만, 주인집 빨랫줄과 장독대라도 건드릴까 봐 엄마는 질색을 했다.

"나가 놀아라이!"

뒷산이 좁다고 뛰어다니고, 온 들판을 헤매면서 놀던 나에게 도시는 불친절했고, 삭막했다.

 

유일한 위로는 새들이었다.

산새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봄이 되니 제비들이 집집 처마마다 고루고루 찾아들었다.

그리고 부잣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똥을 싸댔다.

참새들도 통통 잘도 뛰어다녔고, 까치도 여전히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주인집 마당에서 기르는 앵두나무며 석류나무에 영그는 열매들도 보기 좋았지만, 그 열매를 찾아 날아오는 새들이 더 반가웠다.

우리가 사는 2층 처마에도 제비 부부가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봄, 나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대구로 이사나와 버린 부모님에게 부아가 나 있던 내게 한껏 입을 벌리고 벌레를 받아 먹는 새끼 제비 보는 낙도 없었다면 그 시간을 어찌 견뎠을지 상상이 안 된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책가방을 멘 채로 고개를 뒤로 쭉 빼고 제비집을 쳐다보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미 제비가 집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빨랫줄 언저리를 뱅글뱅글 날다가 도로 앉고, 다시 날아올랐다가 앉고 하면서 엄청나게 시끄럽게 지저귀는 거다.

아래를 보니, 새끼 제비가 한쪽 날개를 제대로 펴질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참이었다.

이제 막 날기 연습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한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앗싸!"

불경스럽게도, 내 입에서는 그런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무료한 일상에 그 얼마나 선물 같은 사건이란 말인가!

 

엄마가 말리거나 말거나, 빈 상자를 주워다 양배추 겉잎을 바닥에 깔고 신문지를 꾸깃꾸깃 접어 넣어 새끼 제비의 집을 만들어 줬다. 혹시라도 나오고 싶을지 모른다며 상자 한쪽 면은 완전히 터서 시원하게 해 주는 배려까지!

떨어진 새끼를 어쩌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어미는 내가 그러는 동안 가까이 오지도 못한 채 울고만 있었지.

"가스나! 가마 놔두면 어미가 알아서 살살 델꼬 갈 끼고만."

엄마의 호통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새끼를 신문지 뭉치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물러서자 그제야 어미는 다시 벌레를 물어와 새끼를 먹이기 시작했다.

둥지에 남아 있는 새끼들도 먹이고, 떨어진 새끼도 먹이느라 무진장 애썼다.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겠다 버티던 나는 엄마한테 등짝을 얻어맞고서야 겨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내 올 때까지 단디 지키래이!"

"가스나, 마 시끄럽다. 학교나 가라카이!"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고갔던 것 같다.

학교 끝나자마자 번개처럼 튀어온 나는 제비부터 찾았다.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제비는? 어데로 치았나?"

"제비가 밥 믹이 준다 카드나. 퍼뜩 씻고 밥이나 무라."

 

엄마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주인집 아줌마가 빨래 널러 올라왔다가 상자 밖에 나온 제비를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아 죽이고 말았단다.

"그 아지메는 와 가마 있는 제비를 밟았는데? 와? 앙앙!"

대성통곡을 하며 일층으로 내려가려는 나를, 엄마는 있는 힘껏 막았다.

그 아줌마도 알고야 그랬겠냐마는, 어린 나는 그 아줌마에게 맘껏 뭐라고 해대기라도 하면 시원하겠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엄마가 너무도 야속했다.

주인집과 셋방살이하는 처지가 다름을 알기에는, 나는 많이 어렸다.

 

"제비는 우옜는데?"

실컷 울고 나니 새끼 제비를 어쨌는지 궁금했다.

어미 제비가 어쩌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어미가 보기 전에 얼른 치았다. 저 아래 묻어 줬으끼네, 걱정 말그라."

어미는 남은 새끼들을 무사히 길러 추워지기 전에 남쪽으로 떠났다.

다음해 봄에는 우리집 처마에 아무도 살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집 마당에 영글던 앵두며 석류며, 손 닿는 열매마다 익기도 전에 똑똑 모가지가 부러져 바닥에 떨어진 까닭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조혜란 작가의 <참새>를 읽고,

그봄의 내가 떠올랐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하는 힘을 지닌 그림책이 어디 그렇게 흔하겠는가.

죽은 새끼 참새를 묻어 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순결하고 순정했던 시절의 한자락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 아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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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ter97 2015-06-2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기억이 이렇게 자세하다니ㅋ부러워요^^

들꽃푸른 2015-06-25 12:33   좋아요 0 | URL
살면서 조금 윤색됐을지도 모를 일이긴 해.. ^^ 그래도 쓰다 보니 더 또렷이 떠올라서 나도 놀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