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신문에서 대한항공 알래스카 직항편이 운항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 알래스카! 어찌 된 셈인지, ‘알래스카’라는 글자를 입으로 소리내어 읽기만 하면 내 머리는 선홍빛의 오로라에 휩싸이고 만다. 하늘이 그린 그림, 저 멀리 태양에서부터 날아온 전기가 지구의 산소와 부딪쳐 만들어 낸다는 그 놀라운 빛의 향연 말이다. 눈으로 읽을 때는 괜찮은데, 입으로 되뇌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북극에 다녀온 누군가에게, “오로라 밑에 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모를 거야, 얼마나 장엄한지. ‘아름답다’는 말이 꼭 쓰여야 하는 곳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북극의 오로라 아래일 거야.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주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오로라일걸?” 하는 소리를 듣고 난 뒤부터 나는 내내 오로라를 꿈꿔 왔다. 장광설을 늘어놓던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맹렬한 질투심에 불탔던지...

알래스카의 짧은 여름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운행한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항공료를 봤다. 8월 24일까지 운행하는 비행기 값은 인터넷으로 예매했을 때 1,678,700원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해서 아침 9시 40분이면 앵커리지에 도착한다고 했다.

알래스카에 이렇게 쉽게 다녀올 수 있어도 되는 것일까? 좀더 힘겹게 짐을 꾸리고 먼 길을 돌아 돌아서야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괜히 부아가 났다,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내 마음이라니.

그 기사를 본 날 저녁, EBS를 보는데 난데없이 알래스카 풍경이 나타났다. 대한항공의 광고였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라는 제목이 보이고, 묵직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 왔다.


“열아홉, 첫눈에 반하고

스물여섯, 알래스카와 하나가 되고

그리고 평생 바람이 되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이야기였다. 알래스카 직항 노선을 광고하면서 알래스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끌어온 대한항공의 광고는 참으로 영민했다. 호시노 미치오, 그이의 삶보다 알래스카를 더 멋지게 알려줄 홍보물이 어디 있겠는가.

대한항공의 또다른 광고에서는 멘트가 달라진다.


“알래스카가 내게로 왔고 난 알래스카가 되었다.”


알래스카의 바람이 되어 버린 호시노 미치오를 텔레비전에서 만나고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밤 하늘에 소리도 없이 생물처럼 춤추는 차가운 불길……. 아름다운 오로라는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종종 멈추게 한다.

어느 겨울밤, 거대한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오로라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한평생을 마감하는 순간, 누구나 어떤 한 가지 강렬한 풍경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면, 나에게 그것은 아마도 알래스카에서 내내 보아온 오로라일 것이라고. -본문 222쪽


호시노 미치오에게도 오로라는 그렇게 특별했다. 사진 작가이면서도 자기 눈에 보이는 특별한 풍광을 글로 전하는 데도 모자람이 없었던 호시노 미치오 덕분에 나는 알래스카를 새롭게 사랑하게 되었다.

광고 문구대로, 호시노 미치오는 열여덟에 알래스카를 처음 만났다. 도쿄의 헌책방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알래스카의 마을을 찍은 사진을 보고는 마음을 빼앗겨버린 소년은 그 마을에 주소도 똑똑치 못한 편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든 하겠으니, 자신을 알래스카로 좀 불러 달라고. 반 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지난 뒤 알래스카에 사는 클리포드와 셰리 부부는 일본의 낯모르는 소년에게 늦은 답장을 보냈고, 결국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 땅을 밟게 되었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만남은 이런 진정성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소년이 보낸 편지를 그냥 무시하지 않았던 부부와 아주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 온 호시노 미치오의 마음이 그이를 더욱 빛나 보이게 한다. 눈 덮인 땅을 가로지르는 카리부 떼의 장엄한 순례 행렬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기 이전에, 호시노 미치오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더 깊은 애정을 쏟고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소 폭과 깊이를 띠게 된다.

-호시노 미치오가 살아서 남긴 마지막 원고 가운데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가 딱히 ‘사람’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이는 한 마리 무스를, 흑고래를, 북극땅다람쥐를 만날 때도 사람을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태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기 텐트에서 카메라를 낼름 집어 달아난 이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러했다. 카메라를 물고 달아난 이리나, 카메라 놓고 가라고 이리를 쫓아가는 호시노 미치오나 생각하면 얼마나 귀엽고도 우스운지. 광활한 알래스카에서 서로의 존재를 그렇게 각인시킨 이리와 한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언젠가 늙었을 때 아이들에게 사연 있는 카메라를 보여 주면서 “예전에 알래스카에서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소박한 소망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에스키모와 알래스카 인디언의 모습을 정감 있게 보여 주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이가 얻은 깨달음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15세에서 25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열 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는 것, 실제 자살률도 같은 연령대의 백인에 비해 10배나 많다는 것을 안타깝게 토로하면서 ‘못 본 척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문제’라고 쓰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유전이 발견된 뒤로 토착 권리를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는 ‘알래스카는 과연 누구의 땅인가’ 하고 비감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까닭에 백인들에 의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봄의 노래, 나는 자연의 질서를 느끼고, 그 철석 같은 당연함에 종종 압도된다’던 호시노 미치오이기에 원주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심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다.


한 에스키모 노파와 툰드라에서 보낸 가을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노파는 흙을 꼭꼭 디뎌 가면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쥐는 겨울에 대비하여 에스키모포테이토라 불리는 새끼손가락만한 뿌리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구멍 하나를 찾아내서 파보자 정말로 한 움큼의 에스키모포테이토가 나왔다. 노파는 그 중에 절반만 꺼내고는, 그 대신 가져온 말린 생선을 넣어 두고 구멍을 다시 흙으로 메웠다. “왜?” 하고 묻는 나를, 노파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노파의 행동은 많은 것들을 말해 준다. 얽히고설킨 생명의 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시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마저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244쪽


호시노 미치오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랬다. 나도 알래스카에 가서 흑고래가 청어 떼를 잡는 동안 일으킨다는 전설 같은 버블넷 피딩 장면을 보고 싶었고, 우두머리 흑고래가 부르는 특별한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눈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내 마음 속에 담겨 있는 풍경을 통해 오로라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길 잃은 이리 한 마리가 와서 내 텐트에서 카메라를 물고 달아나 주기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좀더 어려운 길로 알래스카에 다녀오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티벳으로 가는 열차를 놓아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그만 절망해 버린 내가 아니었던가.


1990년에 이 글을 ‘주간 아사히’에 연재했던 호시노 미치오는 6년 뒤, 러시아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취재를 하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말았다. 그이의 나이 마흔세 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분명히 죽는 순간에도 행복했을 거라고, 알래스카의 꿈을 꾸다가 편하게 갔으리라고, 자신을 공격한 불곰을 무작정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영혼을 떠나보내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장엄한 ‘포틀래치’처럼, 그렇게 평안하게 눈 감았을 거라고.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8-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를 보고 사진이 기대보다 적어 아쉬웠는데 이 책은 많을 것 같네요. 멋진 리뷰, 축하드립니다. ^^

들꽃푸른 2006-08-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호시노 미치오의 반짝이는 언어들만큼이나 황홀한 것들이지요...

거친아이 2006-09-1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속으로 꼭 읽어야지 하고 담아 놓은 책이었는데...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
정말 리뷰 잘 쓰시네요.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