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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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에 이슬을 매단 채 아침햇살을 받으면 패랭이꽃은 이파리 끝까지 긴장하면서, 쟁쟁쟁 소리가 날 듯한 기운을 뿜어내는데, 흐린 날 아침에 꽃은 긴장하지 않았다.-163쪽

-세밀화는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그리는 일이지. 그 안에 종족의 일반성이 들어 있거든. 그래서 수목원은 세밀화가 필요한 거야. 그게 원리나 개념으로는 파악이 안 되잖아. 힘든 일이지. 지난한 일이야.
(안요한 실장의 말)-203쪽

꽃눈을 잘라 보니까, 그 안에 뱃속에 점지된 태아와도 같은 꽃잎이 숫자와 형태를 겨우, 그러나 모두 갖구고 쟁여져 있었다. 꽃이 피지 않아도, 꽃눈 속에서, 개화를 예비하는 꽃은 이미 피어 있었는데, 아직 햇빛에 닿지 않은 어린 꽃잎들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꽃으로 피어날 색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흐린 연두색의 먼 저쪽 끝에서 이름 부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색이 배어 나와서 내가 있는 쪽 세상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꽃눈 안에서 시화평고원 같은 광막한 공간이 열려 있었고, 색은 지금, 그 지평선 너머에서 풍문처럼 번져 오고 있었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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