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이소선은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보다도 독특한 자신의 향기를 가진 사람, 그러나 향기를 내뿜는 순간 자신은 스멀스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기억을 말하든 이야기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높일 필요를 의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천성인지 살면서 체득한 것인지, 아무튼 이소선은 그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했던 실천과 선택은 늘 주변 사람들의 ㅈ러박한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한 것, 그뿐이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은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오도엽, 프롤로그-14쪽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 돼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 보려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 한 구멍이라도 캄캄한 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83쪽
"엄마, 엄마, 내가 부탁하는 거 똑 들어주겠다고 크게 한번 대답해 줘." 크게 한번 대답해 줘, 그렇게 말하는데 여기가 계속 막 끓더라고.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84쪽
"엄마 꼭 크게, 나 잊어버리고 부탁하고 가게.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 그라는 거라. 그리고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소리치면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그라면 또 피가 퍽 쏟아지고...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다시 이소선은 수건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인다. 한참을...)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85쪽
아들이 불탄 자리에서 이소선이 일어났다. -95쪽
이소선의 전화기는 쉴 새가 없다. 기자회견을 한다, 집회를 한다, 행사를 한다, 쉼 없이 연락이 온다. 이소선은 늙어쓸모없는 자신을 지금도 찾아 주는 게 정말 고맙다. 그리고 아파한다. 자신을 불러 주건만 자신이 갈 수 없음을 슬퍼한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유가협 사무실까지는 5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이곳을 가는 데도 이소선은 세 번 이상을 쉬어야 한다. 한 번 갔다 오면 30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가다듬는다. 어떤 때는 도저히 혼자 집으로 오지 못하겠으니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한다. -127쪽
"어머니 지팡이 사 드릴까? 지팡이 짚고 다니면 영 수월해." "썩을 놈. 니가 날 놀리냐. 내가 지팡이 짚고 다니려면 아예 밖에 나가지를 않는다." 이소선은 아직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다.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이름이 여든이 되어도 지팡이를 짚지 못하게 한다. -128쪽
이소선을 남겨 두고 청계노조를 떠난 사람이 더 많다. 민주화 운동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있다. 이소선은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금배지를 달기 바란다. 물론 욕도 한다. 야, 그거밖에 할 게 없더냐. 결국 가더니 그 정도밖에 못하냐. 독설을 퍼붓는 순간에도 연민의 끈은 놓지 않는다. "나야 태일이 죽은 뒤에 미쳐서 지금까지 이러고 살지만 남들이 어떻게 나처럼 평생 미쳐서 살겠냐. 하루든 몇 달이든 열심히 싸우고 살아온 게 어디냐. 내겐 정말 고맙고 고마운 사람이지. 난 누구도 원망하고 살지 않아야." 이런 말을 들으면 혼돈스럽다. 이소선의 마음을 대나무처럼 곧다고 해야 하는가, 갈대처럼 여리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너무 사람다워 미우면서 사랑스럽다. "밖에 나가 남들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이소선과 약속을 깬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소선과 있으면 취한다. 이소선에 취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새벽에 쓰고 말았다. 용서하시라. -179쪽
이소선과 만난 지 꼬박 두 해가 넘었다. 5백 일 동안 이소선과 나눈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2백 일이 지났다. 그 2백 일 동안은 이소선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사랑방 근처에 따로 작업실을 얻었다. 이소선이 해 준 밥도 일부러 먹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만든 반찬이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 그라냐? 그러며 과일을 챙겨 오면 작업에 방해된다며 타박을 했다. 참 못된 짓을 많이 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른다. 2008년 9월 말께였다. 술을 진탕 먹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를 펴고 누워 있던 이소선의 옆에 쓰러져 눈이 팅팅 붓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이소선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이소선과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 다음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소선이 차려 준 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270쪽
태일이는 참 사람을 좋아했어야. 이 말 하니까 생각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야.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야. 그라고 분신자살했다고 한다. 어디 자살이냐. 항거지.분신 항거라고 해야 해. 배운 사람들이, 기자들이 자살했다고 쓰는 것 보면 배우기나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태일이를 열사니 투사니 하지 말고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해. 전태일 동지. 그게 맞지 않냐.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 달라고 좀 써라.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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