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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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뭘 해 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50쪽

"근데 그동안 씩씩하게 정말 잘 견뎌 왔지? 지금도 포기 않고 이렇게 검사받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편도선 하나만 부어도 얼마나 지랄발광을 하는데, 매일매일, 십사 년.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101쪽

"니들 눈엔 우리가 다 늙은 사람으로 보이지?"
"...."
"우리 눈엔 너희가 다 늙을 사람으로 보인다! 하고."
"하아, 괜찮다! 진짜 그럴걸!"-210쪽

"대수야."
"응?"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새똥으로 위장하는 곤충이 있대."
"근데?"
"그게 꼭 너 같다."-20쪽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중 열일곱을 넘기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 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 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47쪽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꿍!' 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 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또 웃었다나 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 했던 걸까. 내가 잠든 새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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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절판


누군가 내게 이소선은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보다도 독특한 자신의 향기를 가진 사람, 그러나 향기를 내뿜는 순간 자신은 스멀스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기억을 말하든 이야기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높일 필요를 의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천성인지 살면서 체득한 것인지, 아무튼 이소선은 그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했던 실천과 선택은 늘 주변 사람들의 ㅈ러박한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한 것, 그뿐이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은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오도엽, 프롤로그-14쪽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 돼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 보려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 한 구멍이라도 캄캄한 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83쪽

"엄마, 엄마, 내가 부탁하는 거 똑 들어주겠다고 크게 한번 대답해 줘."
크게 한번 대답해 줘, 그렇게 말하는데 여기가 계속 막 끓더라고.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84쪽

"엄마 꼭 크게, 나 잊어버리고 부탁하고 가게.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
그라는 거라. 그리고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소리치면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그라면 또 피가 퍽 쏟아지고...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다시 이소선은 수건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인다. 한참을...)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85쪽

아들이 불탄 자리에서 이소선이 일어났다. -95쪽

이소선의 전화기는 쉴 새가 없다. 기자회견을 한다, 집회를 한다, 행사를 한다, 쉼 없이 연락이 온다. 이소선은 늙어쓸모없는 자신을 지금도 찾아 주는 게 정말 고맙다. 그리고 아파한다. 자신을 불러 주건만 자신이 갈 수 없음을 슬퍼한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유가협 사무실까지는 5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이곳을 가는 데도 이소선은 세 번 이상을 쉬어야 한다. 한 번 갔다 오면 30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가다듬는다. 어떤 때는 도저히 혼자 집으로 오지 못하겠으니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한다. -127쪽

"어머니 지팡이 사 드릴까? 지팡이 짚고 다니면 영 수월해."
"썩을 놈. 니가 날 놀리냐. 내가 지팡이 짚고 다니려면 아예 밖에 나가지를 않는다."
이소선은 아직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다.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이름이 여든이 되어도 지팡이를 짚지 못하게 한다. -128쪽

이소선을 남겨 두고 청계노조를 떠난 사람이 더 많다. 민주화 운동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있다. 이소선은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금배지를 달기 바란다. 물론 욕도 한다. 야, 그거밖에 할 게 없더냐. 결국 가더니 그 정도밖에 못하냐. 독설을 퍼붓는 순간에도 연민의 끈은 놓지 않는다.
"나야 태일이 죽은 뒤에 미쳐서 지금까지 이러고 살지만 남들이 어떻게 나처럼 평생 미쳐서 살겠냐. 하루든 몇 달이든 열심히 싸우고 살아온 게 어디냐. 내겐 정말 고맙고 고마운 사람이지. 난 누구도 원망하고 살지 않아야."
이런 말을 들으면 혼돈스럽다. 이소선의 마음을 대나무처럼 곧다고 해야 하는가, 갈대처럼 여리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너무 사람다워 미우면서 사랑스럽다.
"밖에 나가 남들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이소선과 약속을 깬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소선과 있으면 취한다. 이소선에 취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새벽에 쓰고 말았다. 용서하시라. -179쪽

이소선과 만난 지 꼬박 두 해가 넘었다. 5백 일 동안 이소선과 나눈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2백 일이 지났다. 그 2백 일 동안은 이소선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사랑방 근처에 따로 작업실을 얻었다. 이소선이 해 준 밥도 일부러 먹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만든 반찬이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 그라냐? 그러며 과일을 챙겨 오면 작업에 방해된다며 타박을 했다. 참 못된 짓을 많이 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른다.
2008년 9월 말께였다. 술을 진탕 먹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를 펴고 누워 있던 이소선의 옆에 쓰러져 눈이 팅팅 붓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이소선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이소선과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
다음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소선이 차려 준 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270쪽

태일이는 참 사람을 좋아했어야. 이 말 하니까 생각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야.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야.
그라고 분신자살했다고 한다. 어디 자살이냐. 항거지.분신 항거라고 해야 해. 배운 사람들이, 기자들이 자살했다고 쓰는 것 보면 배우기나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태일이를 열사니 투사니 하지 말고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해. 전태일 동지. 그게 맞지 않냐.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 달라고 좀 써라.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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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품절


2권 "독서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절약하는 지적인 방법이다."-94쪽

2권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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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12월
구판절판


내 자투리 책꽂이의 가장 귀중한 부분을 가려내야 한다면, 아마 나는 이 지질학적 표본들을 묘사한 몇 페이지를 고를 것 같다. 극지방 탐험의 연대기에는 수많은 승리의 순간이 있고, 우스꽝스러운 시간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이 연대기에는 죽음도 가득하다. 이 책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순교자가 되려거든 목적을 잘 택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민족주의, 종교, 인종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16킬로그램의 돌이 든 가방과 그것이 상징하는 사라진 세계도 목숨을 걸기에 과히 나쁜 명분은 아닌 것 같다. -스콧의 남극 원정 다이어리 관련해...-50쪽

시카고 대학 출판부의 페이퍼백 편집자 매기 히브너는 절판본 목록에 새 책을 추가할 때마다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영인본을 만들 수 있는 깨끗한 책을 부탁한다고 한다. "남자 저자는 보통 몇 주 뒤에 아주 깨끗하게 보관했던 책을 보내는데, 약간 먼지가 묻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데는 완벽해. 그런데 속표지를 펼쳐 보면 늘 똑같은 말이 적혀 있지. '어머니께'."
그것이 진짜 헌사다. 이 헌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편집자가 전화를 하기까지 그 헌사로 빛이 났던 책이 응당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서가의 명예의 전당에. 그리고 그 책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이와 비교할 때 헌사를 달고도 헌책방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은 얼마나 우울한가.
-90쪽

나 자신이 받아 본 최고의 헌사...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93쪽

311페이지짜리 소설을 쓰면서 e라는 철자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실험적 작가 조르주 페레-106쪽

"새로 책을 찾아 나서는 길은 언제나 인도 제도로 항해하는 것이며, 묻힌 보물을 찾아나서는 것이며, 무지개의 끝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그 끝에 금이 든 단지가 있든 그저 즐거운 책 한 권이 있든,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늘 경이가 넘친다."-빈센트 스타렛-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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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품절


동무여 (조명희)

동무여 / 우리가 만일 개인거든 / 개인 체하자 / 속이지 말고 개인 체하자! / 그리고 땅에 엎드려 땅을 핥자 / 혀의 피가 땅속으로 흐르도록, / 땅의 말이 나올 때까지.. //
동무여 불쌍한 동무여 / 그러고도 마음이 만일 우리를 속이거든 / 해를 향하여 외쳐 물어라 / '이 마음의 씨를 영영히 태울 수 있느냐'고 / 발을 옮기지 말자 석상이 될 때까지.-27쪽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88만원 만 벌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 공무원이나 학자 들은 왜 자꾸 우리를 취직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빈둥거릴 텐데, 그 꼴만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09쪽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쓰게 될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201쪽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국제주의자를 자처했다. 민족주의는 국내용 사상이므로 국경을 넘어가면 누구나 국제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국제주의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216쪽

나는 최후의 이십 전을 던져 타임스판 상용영어 사천자라는 서적을 샀다. 사천자-사천자면 참 많은 수효다. 이 해양만한 외국어를 겨드랑이에 낀 나는 섣불리 배고파할 수도 없다. 아, 나는 배부르다. -이상의 소설, '실화' 중-246쪽

이십세기를 생활하는 데 십구세기의 도덕성밖에 없으니 나는 영원한 절름발이로다. 슬퍼야지.-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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