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하는 방식으로 말하면 그는 호수에 평온하게 떠 있는 보트처럼 양 날개에 가벼운 바람만을 맞는 유유자적한 순간보다 어떻게든 바람을 견제하며 맞서며 떠오르고 내려서는 이륙과 착륙의 순간을 즐긴다. 어쨌든 그는 왜소한 몸뚱어리에 30킬로그램의 책을 끌고 돌아오는 성실한 독서가다. -35쪽
숭례문에 불이 난 다음 날 만난 우리는 최고의 책은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헤어졌다. -정이현과...-57쪽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로맹가리, 새벽의 약속 중-81쪽
내 뼈의 잔가지들을 훑어서 척추의 둥근 고리뼈를 중심으로 누가 피리 구멍을 내 주세요. -김승희, 태양의 면죄부 중-96쪽
짐멜에게 인간은 '경계 없는 경계적 존재'였다. 하지만 이런 문의 역할은 이제 변했다. 문이 더 이상 타인에게 넘어오라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드럽게 손짓하는 세계가 아니라 구획 짓고 밀어내는 세계로 변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고독의 발견이 아니라 고독의 발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39쪽
리허설 없는 이 세상에선 어느 경우엔 머릿속에서 연습된 고통도 도움이 된다. -146쪽
그녀는 아직도 책을 쓰는 일을 책을 사는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비밀과 거짓말>을 쓸 때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샀다. 단편을 쓸 때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인새ㅐㅇ이 바뀌지 않을 거'란 절박한 느낌으로 소설을 쓰러 집을 나설 때 그녀가 갖고 갔던 책은 세 권이었다. 쿤데라의 <느림>과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의 <백 년보다 긴 하루>,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은희경-149쪽
"한 권의 책은 내면의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163쪽
"유목민은 떠나는 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창안하고 창조하는 자입니다." -이진경-177쪽
하나의 세계가 우리들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첫 문장-192쪽
입술을 핥게 만드는 그 달짝지근한 아쉬움. -229쪽
나는 확신이 없는 사람이니까 이미 예술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중-238쪽
저는 이 색깔을 물들인 옷을 입고 공중제비 재주를 바치며 태평을 즐기면 부족함이 없는 어릿광대입니다. 제발 제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제발 쌀 한 톨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발 곰발바닥 요리마저 싫어질 정도로 부유해지게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뽕잎을 따는 시골 여자조차도 싫어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제발 후궁의 미인마저 사랑하게 하지도 말아 주십시오. 제발 콩과 보리도 구별 못 할 정도로 어리석게 하지도 말아 주십시오. 제발 하늘을 떠도는 기운을 살필 정도로 총명하게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중에서도 제발 용감한 영웅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 제발 영웅이 되지 않게-영웅의 뜻을 세우지 않도록 힘없는 저를 지켜 주십시오. 저는 이 봄날 술에 취해 이 청춘의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좋은 날을 기뻐하면 부족함이 없는 난쟁이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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