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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뮤직’, 리스트의 ‘사랑의 꿈’, 그리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콘라드와 헨릭 대령이 전 생애를 걸고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런 음악들이 떠돌아다녔다. 강렬하면서도 냉정한, 냉엄하면서도 참을 수 없이 열정적인 음악들 말이다. 조용히 흐르다가 한순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클라이맥스에서 듣는 이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힘을 지는 음악들.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또한 그랬다. 내 친구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이라면 자고로 이 정도는 돼야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하고 말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지게 해 주는 책이라고. 나에게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좋은 음악 교과서에 가까웠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열정과 닿아 있는 음악 속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었으니까. 아마도 그것은 콘라드가 연주했던 쇼팽의 ‘폴로네즈 환상곡’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도르 마라이의 다른 소설 〈유언〉에서는 라요스가 이십 년이 지나서 에스터에게로 돌아오는데, 이 소설 〈열정〉에서 콘라드는 사십일 년만에 헨릭에게 돌아왔다. 거기다 짧은 재회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만남이 끝나기까지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소설도 끝난다는 것이 닮아 있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유언〉의 경쾌함이 〈열정〉에서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열정〉의 분노가 〈유언〉에서는 놀랍도록 절제되어 있다. 작가의 힘이란 그런 것이겠지.

“고독과 시간이 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심장과 영혼을 무디게 하지 않도록 회상으로 훈련을 하네. 세상에는 칼을 사용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준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결투가 존재하기 때문일세.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결투지. 그러나 언제고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네.”

콘라드는 친구이자 연인의 남편이었던 헨릭에게 돌아와 젊은 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진실을 꺼내 보인다. 군복을 입지 말았어야 할 감성의 소유자였던 콘라드는 집안의 기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되었고, 타고난 군인이었던 헨릭은 자기 아내가 지닌 폭발적인 감성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배신당하고 말았다. 불행은, 그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데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는 누군가는 상처받게 마련인데, 콘라드도 헨릭도 자신들을 어쩌지 못하고 크리스티나에게 똑같은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래, 그렇다. 나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그 여자 크리스티나만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헨릭도 콘라드도 자기 사슬에 묶여 그 여인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으며, 산도르 마라이 또한 의도적으로 크리스티나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 헨릭을 동정하도록 만들어 놓고 있다. 어디에도 크리스티나의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또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힘이겠지. 하루 저녁, 단 몇 시간의 대화를 담은 소설인데도 몇십 년 세월을 고스란히 구겨 넣는 소설가의 힘이 크리스티나를 외면하고 헨릭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을 용서하게 만들고 있다.

한 가지,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콘라드가 열대로 떠나기 전에 크리스티나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면 그녀는 콘라드를 따라갔을까 하는 점이다. 죽는 날까지 남편을 보지 않고 살았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운면에 대한 분노였을 뿐, 그것이 콘라드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 때문이었다는 확신이 생겨나질 않거든.

“내 고향은 감정이었어. 이 감정이 상처입었고, 그렇게 되면 떠날 수밖에 없네. 열대 아니면 더 먼 곳으로.”

콘라드가 조금만 더 일찍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게 됐더라면, 이 세 사람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으리란 것 하나는 확실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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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지는 말이 있다. 우리 사랑은 영원할 거야, 난 죽을 때까지 너만 바라볼 거야, 내 눈엔 너밖에 안 보여…. 최소한 그런 말을 하는 순간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참으로 지키기 힘든 달콤한 거짓말이 바로 사랑의 약속 아니겠는가. 산도르 마라이는 평생 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 여자의 거짓말 같은 사랑을 놀랍게도, 우울하거나 절망적이지 않은 말들로 그려 놓았다. 차라리 유쾌하기까지 한 이야기로 말이다.

“그의 손길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그의 숨결은 페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에스터는 라요스를 사랑했다. 그것도 그가 떠나 버린 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왜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해 놓고, 언니와 결혼해 버린 것일까? 물어 보고 또 물어 보면서,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표를 가슴에 안고. 자기 거짓말에 도취해 울음까지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라요스의 매력에 끌려 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의아해하면서.

라요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는 갚지 않았고, 거짓말로 에스터의 어머니를 설득해 집을 저당잡히게 했으며, 모든 신뢰가 무너졌다고 생각한 마지막 순간에도 챙길 것은 다 챙겨 떠났다. 그러고는 이십 년이 지난 뒤 돌아와, 이제는 자신과 빌마 사이의 딸 에파를 위해 집을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에스터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이 이렇게 불행해졌으니 보상하라고 말하면서.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에스터의 태도였지. 그러나 어쩌겠는가. 에스터라는 여인은 사는 동안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용서하는 쪽이,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을.

이 세상이 연극이라면, 누구라도 그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드물게는 아예 처음부터 조용히 조연에 만족하면서 주인공의 그늘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자기가 맡은 역할, 그러니까 희생하고 농락당하면서도 끝까지 주인공을 위해 연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은 채 살다 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에스터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라요스는 이 세상이 연극이라고 소리치면서 주인공인 양 행세할 수 있었고, 결국은 모든 것을 챙겨서 떠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다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은 이 난봉꾼을 에스터는 완전히 용서해 버렸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 역시 결국은 어린아이처럼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라요스를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에게도 이런 면이 없지는 않지’하고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산도르 마라이의 필력 아니겠는가.

이십 년만에 찾아와 처음으로 한다는 말이 운전사에게 줄 잔돈이 없으니 어서 돈을 달라는 말이었을 때, 하루 낮 하룻밤을 온통 휘젓고 떠나면서 집 안의 잼이란 잼은 다 들고 가 버린 것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악인이 지니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인정하게 만들어 버리는 산도르 마라이의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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