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품절


책은 인간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말레이시아의 호랑이>를 읽고 나서 먼 이방의 대학에서 문학강사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데미안>을 읽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힌두교에 몰두하게 되었다. 헤밍웨이는 또 많은 독자들을 스포츠광으로 만들었고 뒤마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여인들의 삶을 뒤집어 버렸다. -5쪽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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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구판절판


'ㄹ'은 삶의 소리다. 'ㄹ'은 'ㄱ'하고만이 아니라 'ㄷ'하고도 맞선다. 'ㄷ'이 닫힘의 소리라면, 'ㄹ'은 열림의 소리다. '닫다'와 '열다'에서 이미 그 두 소리는 표나게 대립한다. 살아 있다는 것, 열려 있다는 것은 흐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ㄹ'은 액체성의 자음이다. 그 액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동사 '흐르다'에 이미 이 'ㄹ'이 흐르고 있다. -43쪽

'ㅇ'과 'ㄹ'이 동거하면 그 말에선 탄력과 흐름이 동시에 느껴진다. 어슬렁어슬렁, 방실방실, 싱글싱글, 빙글빙글, 벙글벙글, 달캉달캉, 팔랑팔랑, 찰랑찰랑, 펄렁펄렁, 종알종알, 설렁설렁, 옹알옹알, 알쏭달쏭, 뱅그르르, 날쌍하다 같은 말들이 그렇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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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의 차 -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전통차의 참모습
지허 스님 지음 / 김영사 / 2003년 1월
절판


한국 전통차는 완전 야생으로 자생하는 차나무에서 난 잎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덖어 만든 것이다. 한국 전통차는 비전박토에서 잡초와 더불어 사는 차나무의 삶에서부터 자연공동체 정신에 충실하다. 조상들은 일찍이 차를 '덖고 볶는' 한국 특유의 차 법제를 터득하여 중국이나 일본 차와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차를 창안하였다. -15쪽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깨끗한 것이건 더러운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미운 것이건 존재한 만큼 소멸한다. -36쪽

자생 차나무의 사계는 아름답다. 초봄에는 참새 혀처럼 어린 순이 올라와 한없이 싱그럽고 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이파리마다 그 잎가에 톱니를 둘러 청정하며 가을에는 까실한 햇볕에 농익은 잎들을 반짝이며 드높은 하늘을 향하고 초겨울에는 암팡진 씨망울을 맺으며 심심산골의 수줍고 첯ㅇ순한 아가씨 같은 차꽃을 피운다. -51쪽

생선에 비유를 하자면 싱싱하면 굽고, 좀 덜하면 찌거나 끓여 먹고, 몇 년이고 오랫동안 두고 먹으려 할 때는 젓갈을 담근 것과 같이, 구운 생선은 덖음차요, 찌거나 끓인 생선은 찐 차이며, 젓갈은 보이차와 홍차라 할 것이다. -92쪽

좋은 차가 담긴 차관에서는 처음에는 하늘땅이 생기기 이전의 향이 나고, 조금 뒤에는 새털구름 어린 가을 하늘의 향이 나며, 좀더 뒤에는 온산의 초목이 움트는 오색의 봄날 향이 난다. 또한 이 덖음차의 냄새는 산골마을 담 밖에서 나는 된장 끓이는 은은한 냄새요, 타향에서 그리는 고향집 숭늉 냄새며, 초가지붕 위로 떠오른 한가위 달 같은 그런 맑은 냄새며, 한겨울 불지핀 온돌방의 아랫목 같은 정든 냄새이다. 그리고 이 따뜻한 차향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향이다. -134쪽

일본과 우리 불교 문화재 가운데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다. 지혜의 얼굴 표정은 경직되기 쉽고 인정의 얼굴 표정은 화사하여 완만해지기 쉽다. 여기에서 이 두 표정이 완전히 불이(不二)로 표현된 것이 미륵반가상의 미소이다. 또한 석가로부터 이심전심한 가섭의 미소이기도 하다. 서양의 대표적인 미소가 모나리자의 미소라면 동양의 대표적인 미소는 미륵반가상의 남성적 미소이다. 이 미소는 입만 웃는 것이 아니요, 얼굴만 웃은 것은 더더욱 아니며 온몸으로 웃는 것이요, 마음이 웃는 웃음이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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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AG건축기행 1, 옛절에서 만나는 건축과 역사 김봉렬 교수와 찾아가는 옛절 기행 2
김봉렬 글, 관조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002년 4월
구판절판


선운사 마당은 동서로 길쭉하다. 자칫하면 휑하고 멍청한 마당이 되기 쉬웠으나, 약간 돌아앉은 노전채가 긴 마당을 두 개로 쪼개어 한 부분은 대웅전에, 다른 한 부분은 영산전에 속하도록 시각적으로 구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언젠가 노전채를 철거하고 말아 선운사 마당은 염려대로 비례가 맞지 않는 멍청이가 되어 버렸다. -54쪽

판전을 산줄기로 삼아 인공적으로 만든 계곡 같은 마당. 계곡에서 부는 골바람은 판전 내부로 들어가 대장경판의 부식을 막아 준다. 네모난 공간이나 좁고 긴 공간에 익숙한 우리의 공간감을 해체하면서 감동적인 새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공간을 '역복도형 공간'이라 부른다.-해인사-83쪽

종파와 교리가 바뀌었지만 과거의 형식을 존중하여 보존하고, 그 위에 새로운 형식을 추가했던 옛 스님들의 겸손과 지혜야말로 한국 불교의 역사를 아직도 지속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힘이 아닐까? 화엄사 앞 마당에 설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건축적 장면이요, 역사의 증명이며, 교리적 화합이다.-93쪽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도 이곳 문수사에서는 지극히 민중적인 모습이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민중층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불교의 당시 형편을 가감없이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116쪽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공예품에 가까울 정도로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은 수덕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등 열 손가락이 남을 정도이지만 그 당당한 기품과 아름다움은 조선시대 건물을 압도한다. -135쪽

옛사람들은 직선을 곡직하다고 표현했다. 휘어진 듯 곧으며, 곧은 듯 휘어졌다는 의미다.-144쪽

폐허에 서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한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남은 것이 적다고 가치와 감동까지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부수어지면 부수어진 대로 감동의 깊이느 ㄴ더해간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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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 사이 절
윤제학 지음, 정정현 사진 / 명상 / 2006년 4월
절판


'봄산'은 먼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꽃에 취하면 새싹이 눈 밖으로 사라지고, 눈 뜨는 한 잎사귀에만 눈길을 주면, 산은 천만리 밖입니다. 아득한 눈길로 먼 산 바라보면, 산은, 커다란 꽃으로 우리 앞에 벙글어집니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록'이라는 말은 너무 진부하다고. 봄산은, 신록이라는 말로는 가둘 수 없는 생명의 경이를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그 선물은, 알면서도 속아 주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아니라, 깜빡 졸다 눈 뜨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축복이게 하는 선물입니다.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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