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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마녀와 옷장 ㅣ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아. 증거가 없어.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최상의 종교도 아니야.”라고 철저한 무신론 관점에서 친구에게 기독교를 비판하던 17세의 소년은 15년 후 같은 친구에게 전혀 다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 즉, 실제로 있었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 존재를 보여주신 하나님이 곧 기독교다.”라고.
그가 바로 북아일랜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으며 아직도 전 세계 어린이들을 나니아 나라로 인도하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저자인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인물, 바로 C. S. 루이스이다.
그는 소설, 평론 등 여러 장르를 집필했는데 그중에서도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그의 친구이자 ‘반지의 제왕’을 집필 한 톨킨마저도 질투심에 빠져들게 만든 책이며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동화이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중, 특히 이 책 <사자와 마녀와 옥장>은 제일 먼저 쓰여졌고 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도 유명한데 사실 이 책은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전체 구조가 성경책과 거의 같다고 볼 때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를 모두 갖고 있기도 하다. 물론 꼭 기독교의 가치관에서만 이 책을 보지 않더라도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진진하며 교훈적이다. 하지만 저자인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이고 또 그가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기독교적 세계관을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전달하고자 했는지를 안다면 책은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찾을 수 있는 기독교의 핵심은 크게 다음과 같다. ‘계약과 범죄’, ‘희생과 구원’ 그리고 ‘부활과 재림’이다. 자, 그럼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성경 속에서 다시 찾아보자.
책의 처음에서 네 아이들 중 에드먼드는 나니아에 들어 와서 처음으로 하얀 마녀를 만나고 그녀가 준 마법의 터키 젤리 맛에 빠져들어 자신의 형제자매를 그녀에게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다. 그녀는 에드먼드에게 나머지 동기들을 데려오기만 하면 더 많은 터키 젤리를 주고 아주 큰 성에서 나니아를 다스리며 살 수 있는 왕좌도 준다고 하는데 그녀가 에드먼드를 유혹하는 장면이 뱀이 여자를 유혹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성경에서 여자가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하다고 하는 것은 에드먼드가 터키젤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 것과 같고 또한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에 여자가 신에 자리를 탐하였으니 이는 에드먼드가 왕이 되기를 욕심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에드먼드는 결국 터키 젤리를 먹음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나니아와 동기들에게 반하여 죄를 범하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에 하얀 마녀가 아슬란에게 돌탁자에 기록된 태초에 황제께서 나니아에 내리신 마법에 계약을 근거로 모든 반역자는 그녀에게 속하며 죽일 권리도 자신에게 있으니 반역자인 에드먼드의 피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게 만드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마녀가 피를 요구하는 건 생명을 달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그건 성경책에서 하나님이 그분과 인간 사이에 관계에서 선악과를 먹지 말 것을 전제로 맺어진 언약을 져버린 인간에게 요구하신 대가와 같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이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바로 죽었는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깨졌고 이는 곧 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인간의 역사에 죽음이 들어왔으며 결국 그 값은 생명 즉, 피가 되는 셈이다.
그럼 둘째로 에드먼드는 그대로 죽어야 하는가? 에드먼드가 죽지 않으려면 무엇이 또는 누군가가 죄의 대가인 사망의 값으로 그를 대신해서 피를 내놓아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놓겠는가?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아슬란이 에드먼드를 대신해서 하얀 마녀에게 갔으며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받힘으로써 그 값을 치루셨다. 아슬란이 하얀 마녀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받히는 장면과 거의 흡사하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하얀 마녀의 무리들은 사자 아슬란을 꽁꽁 묶어 털을 보기 흉하게 밀고 입에 재갈을 물렸으며 그를 겹겹이 에워싼 채 발로 차고, 때리고, 침을 뱉고, 비웃는다. 성경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그의 옷을 벗기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희롱하여... 그에게 침 뱉고 그의 머리를 치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앞뒤로 연결되는 내용이 없더라도 C. S. 루이스가 아슬란이 죽는 장면에서 누구를 연상시키고자 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아슬란이 에드먼드를 대신해서 그의 피를 흘림으로써 에드먼드는 생명을 건지고 또 결백한 자가 반역자의 죄를 대신하여 목숨을 바쳤으므로 반역자의 대가로 죽음을 기록한 돌탁자가 깨어지며 죽음이 원상태로 회복되는데 이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죽으면서 당시 제사를 지냈던 성소의 휘장이 갈라진 것과 비슷하다. 마태복음 27장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라고 기록되었는데 휘장은 하나님이 계신 곳과 인간이 있는 곳을 나누어 놓았던 성소의 막이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누구라도 하나님이 계신 곳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태초 때 하나님과 맺었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으로? 바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아슬란이 에드먼드의 생명을 죽음에서 다시 생명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언약을 파기한 값으로 어둠속으로 떨어진 생명의 값을 예수님이 그 분의 피로 값을 주고 다시 건지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C. S. 루이스는 아슬란을 다시 살리고 하얀 마녀의 무리를 무찌름으로써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아슬란은 부활하고 하얀 마녀무리와 싸워 승리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진다. 하지만 나니아 사람 모두는 언젠가 아슬란이 다시 올 것을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다. 누가복음 24장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몸을 보이시며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영은 상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의 영만이 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슬란이 그의 몸 그대로 다시 살아나 아이들과 나니아 사람들과 같이 마녀와 싸웠듯이 예수님도 그분의 육신 그대로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슬란이 다시 나디아로 온다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분명 다시 오신다고 했다. 그 분의 몸 그대로! C. S. 루이스는 아슬란의 부활과 재림을 이야기함으로서 기독교에서 자장 중요하며 또 기독교에만 존재하는 두 가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바로 부활과 재림이다.
이로써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는 독자들은 그가 어린이건 어른이건 기독교인이건 기독교인이 아니건 또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상관없이 성경 내용의 중요한 일부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며 이는 앞에서 언급한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 즉, 실제로 있었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 존재를 보여주신 하나님이 곧 기독교다.”라고 말하는 저자 C. S. 루이스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뿐만 아니라 <나니아 나라 이야기> 전체를 통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전체 구조가 한 세계의 탄생, 번영과 멸망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카네기상을 수상한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마지막 이야기인 <마지막 전투>를 보면 네 아이들 중에서도 자신이 겪은 나니아라는 세계와 아슬란을 끝까지 믿는 아이와 그 모든 것을 환상과 꿈으로 부인해버리는 아이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에 거두어지는 자와 버려지는 자를 비유하는 것과 유사하다. <마지막 전투>는 실제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만큼의 두렵고 무서운 느낌을 갖고 있는데 C. S. 루이스는 “아이들은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낼 수 있었던 동화책에게서조차 상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놓음으로써 성경의 마지막 메시지까지도 그대로 책에 옮겨 놓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성경의 판타지적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자와 마녀와 옷장> 그리고 <나니아 나라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는 기독교적 가치는 성경의 일분부이지 결코 전체는 아이다. 또한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이야기하는 모험과 꿈,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정의와 희생은 종교와 상관없이 생각하더라도 인간이 추구해야할 덕목이기도하다. 그럼에도 난 C. S. 루이스가 이 책을 통해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진리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무신론자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그가 어떠한 방법으로도 도망칠 수 없었던 바로 그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