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으로 걸어오고 있는 고반장과 정민의 모습이 정아의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을 보고 정아가 일어서자 은도 따라 일어서서는 그녀의 등 뒤로 숨어서 빠끔히 두 사람을 내다본다. 학교에 안 간 것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여러 가지로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고반장이 머리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말로 인사를 한다.

  “뭘요……. 은아? 아빠 오셨잖아.”

  정아가 은을 부르지만 은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학교에 안 간 것 때문에 그러나 봐요.”

  “허허, 녀석도 , 참.”

  고반장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딸에게 허리를 굽히고 손을 내민다. 은이 정아의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고반장 앞으로 한 발자국 정도 나온다. 고반장은 아무 말 없이 은을 안아 올린다. 아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아빠 목뒤로 팔을 돌린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어?”

  정민이 병원 복도 의자에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채희를 고개 짓으로 가리키며 정아에게 묻는다.

  “바리 보고 나서부터. 그 전까지 괜찮았어. 병원에 와서부터 좀 안 좋기는 했었지만 아무래도 여기 동물 병원이니까. 오기 전까지는 은이랑 장난도 치고 떡볶이도 잘 먹고 웃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았어. 근데……. 바리 보고 부터는 저 자세 그대로야. 움직이질 않아.”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그냥 기다릴 거라고 했어요. 혼잣말처럼 모르겠다는 말도 하고요. 정말 모르겠다고.”

  채희를 보는 정민의 마음이 좋지 않다. 정민은 마치 자신이 해야 될 일 중에서 가장 힘들고 더러운 일을 아이에게 떠넘긴 기분이다. 그가 채희 앞으로 허리를 숙인다.

  “야, 너는 아저씨가 왔으며 인사는 못해도 얼굴은 좀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

  정민이 채희가 쓴 모자를 슬쩍 위로 올리자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정민의 손을 밀어내고는 아까 보다도 더 깊게 모자를 눌러 쓴다.

  “자식, 멀쩡하네.”

  아이가 그나마 반응을 보이자 정민은 조금 안심이 된다. 그가 무릎을 굽혀 채희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 의자 옆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나온다.

  “혹시 전화하셨던…….”

  “네, 일산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연락만 드리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반장이 은을 내려놓고는 신분증을 꺼내 보인다.

  “아닙니다. 제가 바리 담당의사인데,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의사가 열었던 문 뒤로 다시 들어가자 두 사람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제법 넓은 방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중앙에 놓여있는 큰 스텐 탁자와 바로 그 위에 내려있는 조명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벽 쪽으로는 여러 자기 의료기계들이 둘러져 있는데 온통 은색으로 된 스텐 기구들이여서인지 방안은 조금 차갑고 춥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다시 의사가 열어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방에 들어서자마자 짙은 소독약냄새와 무언지 모를 비릿한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찌른다. 의사는 마치 개장 여러 개를 이어서 합쳐놓은 듯 한 철조구조물에서 한군데를 가리키며 두 사람을 안내한다.

  그곳에 바리가 있었다. 털은 무엇인가에 젖었는지 끈적끈적하게 엉켜있고 다 깎여서 맨 살을 드러낸 배에는 빨갛게 묻은 소독약 자국에 듬성듬성 간격을 유지하며 매여져 있는 실 자락 끝이 여러 개 보인다. 눈은 감지도 못하고 허공만 응시 한 채 몸 전체가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꺼질 듯 생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앞발에 꽂은 주사로 아주 천천히 들어가고 있는 링겔만 아니었어도 두 사람은 바리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좋지 않군요.”

  고반장이 의사를 본다.

  “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입니다. 사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존은 본능이죠. 그건 식물도 그렇고, 숨을 쉬는 생명체라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바리는 이미 그 본능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심장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기능을 유지하는 장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수술을 견뎌 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데다가 출혈이 심해서 마취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됐으니까요. 보호자가 있었다면……. 나머지 얘기는 나가서 하죠.”

  의사가 먼저 방을 나간다. 두 사람이 따라 나오자 의사가 문을 닫고 방 중앙에 있는 진료대로 가며 못 한 말을 잇는다.

  “보호자가 있었다면 처음에는 안락사를 권했을 겁니다. 사실 바리는 중추신경도 끊어진 대다가 몸속에 장기들도 하나씩 정지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보시기에 바리가 고통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지금 바리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 할 겁니다.”

  정민은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그가 방밖으로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 앞에서 그 애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서요? 안락사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고통스럽게 죽어갈 경우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고반장이 묻는다.

  “보통은 그렇죠. 그렇지만 바리가 고통을 못 느낀다고 해서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씀 드리기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감각은 없어도 감정은 있으니까요. 오히려 동물은 죽음에 더 민감하죠. 이미 안에 있는 기관들이 멈춰가고 있는데다가 몸까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니 분명 표현 할 수 없이 무서울 겁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라고 말씀하신 건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예, 정말 필요했다면 주인의 허락 없이도 했을 겁니다.”

  “그럼, 어째서…….”

  “사실 의학적으로는 바리는 이미 죽었어야 합니다. 저 정도 상태면 아무리 생존이 본능이라도 본능조차 남아있기 힘드니까요. 그런데 바리는 이미 본능을 넘어서 뚜렷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오래 버티지는 못 할 겁니다. 곧 심장도……. 전 단지 존중해주는 겁니다. 마지막까지 바리가 잡고 있는 생명의 끈을 의사인 제가 먼저 놓아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의 왼쪽 문이 열리면서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들어온다.

  “선생님, CA에요.”

  의사는 말을 듣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왼쪽 방문으로 뛰어 간다. 열린 문틈으로 알 수 없는 용어들과 사람들의 바쁜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사람 같네.”

  바리를 본 뒤 한마디도 없던 정민이 입을 연다.

  “저 의사, 사람 같다고.”

  고반장이 그런 정민을 본다.

  “우리도 그 놈 잡자. 사람이 제 일 잘하면 사람 같은 거지 별거 있냐?”

  고방장이 정민의 어깨를 툭 한번 친다.

  “채희, 어쩌지? 절대로 안 움직일 기세던데. 억지로 안고 갈수도 없고. ……. 도대체 누굴 기다린다는 거야?”

  정민이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이 돼서 묻는다.

  “모르지 아직은 …….”

  고반장은 채희를 억지로 끌고 갈 마음이 없다. 채희가 있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먼저 성당에 좀 가보자. 그때 그 수년님도 좀 만나보고.”

  복도로 나온 고반장이 아까 자세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는 채희에게 가 허리를 숙인다.

  “채희, 분홍색 모자가 아주 잘 어울리네.”

  아이는 대답이 없다.

  “채희야, 이번 일만 끝나면 은이랑 정민이 아저씨랑 정아언니까지, 우리 다 같이 놀이동산에 가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사진도 찍고. 좋지?”

  고반장은 채희 손을 한번 꼭 잡고는 일어나 정아 옆에 은을 본다.

  “은이는 집에 가야지. 가자, 아빠가 데려다줄게.”

  고반장이 은에게 가자고 손을 내민다. 근데 은은 정아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채희에게로 돌린다. 은이 채희를 한 번 보고 고반장을 보더니 고개를 내젖는다. 있고 싶다는 말이다.

  “이거, 참.”

  고반장은 난감하다. 은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그냥 가세요. 채희랑 같이 있고 싶나 봐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까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정민은 채희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다.

  “야, 넌 날 기다리는 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나 올 때까지 여기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정민이 채희의 모자챙을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럽게 아래로 슬어 내리고는 일어난다.

  “정말 괜찮겠어?”

  그가 정아에게 묻는다.

  “응, 괜찮아.”

  정민이 정아 옆에 있는 은의 머리를 채희에게 했던 것처럼 쓸어 내리고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걸어 나간다. 고반장도 은을 향해 한 번 웃고는 정민을 따라 복도를 걸어 나간다. 채희의 고개가 살짝 둘을 향해 돌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제자리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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