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해외로 입양된 자녀와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난 이 프로그램을 엄마랑 거의 매주 시청하는 편이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한다. 하지만 오늘은 ‘왜 우리나라는…….’이라는 화살을 돌리는 문구 말고 그냥 프로그램을 보고 바뀐 내 생각을 정리할까 한다.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 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난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왜 찾으려고 할까? 자신을 버렸는데…….’

  이렇게 묻는 이유는 만약 나라면 찾고 싶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다양한 인종이 살고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고 완벽하게 그 나라 말을 구사하는 사람일지라도 분명 이방인이었을거다. 우리는 단지 ‘외로웠겠구나, 힘들었겠구나!’ 라고 짐작할 뿐이겠지만 실제로는 상상 이상이다. 나도 조금은 겪어보았기에 만약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감정을 겪으면서 자라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움보다도 원망이 더 커서 찾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난 오늘 ‘뿌리를 찾고 싶어서’의 다른 표현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나라면 찾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나의 생각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왜 찾고 싶으신지?”

  사회자가 물었다.

  “항상 영화의 앞부분을 놓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영화의 시작 부분을 못 보면 당연히 보고 싶지 않겠어요?”

  

  다 아시겠지만 영화의 시작은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든 ‘주’가 소개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제작사, 감독, 그리고 주연. 개인의 인생을 영화로 본다면 제작사는 나라요 감독은 부모일 것인데 내가 주연이라면 이 둘을 모르는 게 말이 되겠는가? 이건 영화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정해진 거고 당연히 알고 시작되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모른다면 알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때서야 ‘왜 찾고 싶을까?’를 스스로 묻는 물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현실에 ‘만약에’라는 말을 빌려 넣은 것이 미안했다. 그건 그렇게 바꿔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랑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말을 못하고 스테이크랑 스파게티가 주식이면서도 김치를 먹고 싶어 하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라 밖으로 나갔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다시 우리나라를 밞는 우리의 동기(同氣)들. 다 다른 언어를 하면서도 모두가 하는 우리말은 하나였다.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그들이 보여준 흉내 낼 수 없는 용기와 따뜻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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