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은 건 분명 네 사람이다. 근데 오르락내리락하는 밥숟가락은 하나뿐이다.

  “뭐야? 다들……. 밥은 먹으라고 있는 거야. 보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이는 자신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다는 듯 먹는데 열심이다.

  “이름이 뭐니?”

  정아가 묻는다.

  “아줌마는 뭔데?”

  “아, 난 정아, 황보정아. 근데 나 아줌마 아닌데.”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아이가 정아와 정민을 번갈아보며 말한다. 

  “뭐야, 넌……. 넌 왜 네 이름 얘기 안 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걸 놓아 줄 정민이 아니다.

  “이 아저씨가, 정말. 나 밥 다 안 먹었어. 밥 먹을 때는 애도 안 건드린다는 말 몰라?”

  아이가 옆에 앉아 있는 마루를 가리키며 밥풀까지 튀기면서 정민을 향해 소리치고는 다시 밥숟가락을 뜬다. 고반장은 아이한테 연신 당하기만 하는 정민이 우습다.

  “아!”

  고반장은 그제야 은이가 생각나서 휴대폰 버튼을 누른다.

  “예 어머니, 접니다. 은이… 아직도 웁니까? 아, 예 좀 바꿔주세요. ……. 은아? 응, 그래, 괜찮아. 그래, 기다려 봐. 은이 미안하다는구나. 그리고 청이 찾아준 거 고맙다고도 전해 달라는구나. 나도 인사가 늦었지만, 고맙다.”

  그는 진심을 다해 얘기했다. 아이도 그 걸 느꼈는지 대답은 없지만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은이가 바꿔 달라는데 받을래?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했다는 구나. 내가 말해도 원 듣지도 않으니…….”

  고반장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주춤거리면서 내민 고반장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 듯 갖고 간다.

  “밥 먹어.”

  달랑 한마디 하고는 휴대폰을 고반장에게 다시 내민다.

  “그래, 은아 ……. 응, 그래 알았다. 늦었지만 밥 먹고 자라. 아빠 늦으니까, 할머니한테 그렇게 말씀 드리고. 그래, 알았다. 잘 자라.”

  잘 자라고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이를 향한 정이 느껴진다.

  그새 아이는 밥을 다 먹고 물 한잔을 달게 마시고는 트림까지 하고 있다. 고반장은 아이가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안정돼 보여 안심이 된다.

  아이가 입가를 손으로 쓱쓱 닦고는 고반장에게 손을 내보인다.

  고반장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진. 그것 때문이잖아. 나 가야 된다고. 지금도 너무 늦었단 말이야.”

  아이가 시계를 보며 재촉한다. 예상치 못한 아이의 행동에 세 사람 모두 어리둥절할 뿐이다.

  “사진 안 보여줄 거면 나 그냥가고.”

  아이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옆에 있던 정민이 황급히 아이를 잡는다.

  “가긴 어딜……. 너… 너……. 여기가 어딘지나 알어? 쪼그만 게 이 저녁에, 혼자 어딜 간다고.”

  그가 말까지 더듬으며 아이를 말린다.

  “그럼 빨리 끝내자고.”

  아이가 다시 고반장에게 손을 내민다. 아이가 내민 손바닥을 가만히 보던 그는 주머니에서 뺀 자신의 손을 살며시 위로 올려놓는다.

  “이름… 아직 얘기 안 했는데……. 이름을 못 부르니까 너무 불편하구나.”

  고반장이 아이의 손을 잡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악수를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손이 수줍게 허공에 매달려 있다. 당연히 자신의 손에 사진이 올라 올 거라고 예상했던 아이는 좀 놀란 눈으로 고반장을 본다. 그를 보는 아이의 표정에 이상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망설이 듯 달싹거리던 아이의 입이 마침내 열린다. 

  “채희.”

  “그래, 채희야.”

  고반장이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너무 늦었다고 했지? 그래, 집에서 걱정하겠구나. 가자. 데려다줄게.”

  그는 그대로 채희의 손을 잡고는 부엌을 나간다. 두 사람이 나가자 부엌에 남겨진 정민과 정아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돈다.

  “오늘, 고마웠어. 갈게.”

  정민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들리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그가 일어나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정아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내뱉어진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쉬고 계셨던 것 같은데 폐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문 앞에서 고반장이 정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정민은 인사도 없이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듯 차에 시동까지 켜놓고 출발 대기상태이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정민이 때문에 고생 많으실 텐데. 정말 너무 감사해요.”

  “이이구… 무슨 그런 말씀을 ……. 이제 그 녀석도 제법 형사 티가 납니다. 좀 컸다고 잔소리는 어찌나 심한지……. 어쩔 때는 녀석이 반장 같고 제가 꼭 신참 같다니까요, 허허”

  사람 좋은 고반장의 소리에 정아가 처음으로 밝게 웃는다. 그런 고반장 옆에 좀 불편하다는 듯이 손을 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마주 잡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채희가 그의 옆구리에 붙어있다.

  “밥, 맛이 없었지?”

  “응. 반찬도 없었고.”

  대답이 너무 솔직하다.

  “피. 혼자 다 먹었으면서.”

  “그거야 배고프니까 먹은 거지, 뭐 맛있어서 먹은 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끝이 흐려진다.

  “다음엔 정말 맛있는 거 해줄게. 나 요리 잘해. 여기 이 번호 갖고 있다가 언제든지 뭐든지 뭐 먹고 싶은 거 생각나면 전화해줄래? 다 해줄게. 약속이야.”

  정아는 채희에게 준비해 둔 자신의 명함을 내민다. 채희가 선뜻 받지 않자 그녀가 명함을 채희 앞으로 더 바짝 내민다. 채희가 명함 쪽을 슬쩍 보고는 마지못해 받는다는 듯이 휙 가져가서 주머니에 그냥 마구 쑤셔서 넣어버린다. 정아는 그런 채희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아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장난을 친다. 채희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서 싫다는 표현을 해보이지만 되레 정아 눈에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더 귀여워 보여서 손이 쉽게 물려지지가 않는다. 고반장이 채희를 차에 올려놓고 옆에 앉자 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아만 남긴 채 왔던 길로 다시 사라져 버린다.

  세 사람이 떠나고 집으로 들어온 정아의 눈에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모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고반장이 갖고 온 모자를 아이가 잊어버리고 두고 간 모양이다. 정아는 소파에 털썩 앉아 한참 동안 모자만 이리저리 만져본다. 아까 채희에게 다 하지 못한 장난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여자 아이 모자치곤 너무 색깔이 어둡다. 그치? 마루야?”

  정말 대답을 듣자고 물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대답도 없이 텅 빈 공간 구석 구속에서 메아리치는 자신의 물음을 견디기가 유난히 힘이 든다. 그녀는 모자를 움켜쥐고는 옆에서 내내 그녀 옆을 지키고 있던 마루를 힘주어 앉는다.

  “괜찮을꺼야. 그래, 괜찮을꺼야.”

  그녀의 고개가 꽉 안고 있는 마루의 목덜미에 묻혀서는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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