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반장의 말을 들은 정아도 얘기를 마친 고반장도 한 동안 말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니...놀라운 일이군요.”
“뭐야, 그게 다야?”
정아의 반응이 정민이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자 오히려 그가 더 놀란다.
“그게 뭡니까?”
“말 그대로 동물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죠. 동물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이 사소한 것을 주인에게 전달해 주기도 하지만 아픈 곳이나 불편한 곳을 알려줘서 병을 호전시키거나 예방을 하기도 하고 나쁜 버릇이나 성격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 중 몇몇은 사진만 보고서도 실종 된 동물을 찾아줄 만큼 동물과의 교감이 뛰어나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찾은 동물도 있고요.”
“웃기지마. 그걸 다 믿는단 말이야? 그게 말이 되냐고? 동물이랑 어떻게 대화가 된단 말이야?”
정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정아가 어이가 없다.
“그건 저 애가 일어나면 애한테 물어 봐. 나한테 묻지 말고.”
흥분해서 말하는 정민과 다르게 정아의 목소리는 전 보다 더 덤덤해진다.
“언제쯤 일어날까요?”
“큰 문제만 없다면 곧 일어날 거예요.”
“혹시 제가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준 게 아이가 쓰러진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고반장은 자신이 너무 성급히 사진을 들이 밀며 아이를 다그친 게 못 내 신경이 쓰인다.
“글쎄요, 전혀 아니라고 할 수 는 없을 것 같아요. 아이가 정말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영향을 받았겠죠. 아시겠지만 사진 속에 강아지 상태가 정상은 아니니까요.”
“영향을 미쳤다면 그게 어디까지일까요? 그게... 저는 아직도 좀 믿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는 단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확히 청이가 어디 있는지를 은이에게 말해줬습니다. 대화가 된다는 건 적어도 말이 오고 가는 것 아닙니까?”
“정민이랑 같은 걸 물으시는군요.”
고반장의 물음에 정아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고반장님의 말씀이 맞아요. 대화라고는 해도 사실 일방적이긴 하죠. 저도 사람이 동물의 생각과 의사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반대가 가능하다는 사람은 아직 들은 적도 본적도 없으니까요.”
“그 반대가 뭐야? 다른 게 또 있어?”
“간단히 얘기하면 동물의 마음을 알 수는 있어도 자신의 생각을 동물에게 전달해서 상황을 이해시키거나 행동을 유발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야. 한마디로 그 누구도 타잔은 아니라는 거지. 이쪽은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어도 저쪽이 이쪽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어.”
가만히 정아의 얘기를 듣고만 있던 고방장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말만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이 상황을 완벽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자신은 보고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아이의 일까지도 완전히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거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하군요. 아무리 제가 하는 말이라지만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인데 의학공부까지 하시는 학자로서 이렇게 간단히 믿을 수 있다니……. 혹시 전에도 이런 케이스, 있으셨습니까?”
고반장의 의문에 정민도 묻고 싶은 걸 놓쳤다는 듯이 한마디를 더한다.
“내 말이... 어쩐지 너무 담담하더라니……. 뭐야?”
정민까지 가세하자 정아가 마지못한 듯 입을 연다.
“사실 한국에서는 처음이지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면 만난 적이 있어요. 재작년인가? 미국 학회 때, 현지 교수님댁에 초대를 받아 댁을 방문했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이웃에 사신다면 어떤 사람을 소개해주셨었어요. 근데 그 사람이 바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였었죠.”
그제서야 정민은 정아의 반응이 이해가 가는 듯 고개만 조금 끄덕이고는 그냥 지나갔지만 그가 놓친 걸 고반장은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황보박사는 이미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를 그 사람에게서 봤다는 말이군요.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 저나 정민이가 겪고 있는 혼란과 의심과 같은 감정을 단번에 무마시킬 만큼 확실한 그 무엇을! 그런 건가요?”
고반장의 물음에 정아가 정민을 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정아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지만 웬지 정민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황하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만 있던 정민의 눈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반짝인다. 바로 말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못 마땅한 것이 짐작된다는 듯 그의 눈살이 잔뜩 구겨진다. 두 사람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자 고반장은 뭔가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은 듯싶어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던진 말이니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말해.”
정민이 기대있던 소파에서 몸을 조금 뗀다.
“말하라고. 그게 뭐야. 뭐냐고? 그 자식한테 보여준 게 뭐냔 말이야?”
정민의 물음에 끝가지 정아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서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녀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 올린다.
“아”
“정민아.”
정아의 아픈 소리와 정민을 말리는 고반장의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어느 샌가 세 사람 모두 소파에서 일어나서는 어정쩡한 자세로 시선이 빗나간 체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다.
“배고파.”
그 순간 어디선가 이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온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아의 방 쪽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아이가 열린 방문에서 막 나오더니 세 사람 앞에 선다.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아 옆 빈자리에 털썩 앉고는 다리까지 소파위로 올린다. 정아 옆에 있는 줄 알았던 마루는 언제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갔었는지 아이와 같이 방문에서 나오더니 아이가 소파 위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위로 올라가서는 아이를 따라 앉는다. 아이를 보는 마루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순간 끊어질 듯 팽팽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느슨해진다. 아이는 세 사람을 차례로 쳐다보더니 다시 한 마디 던진다.
“배고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