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우정의 거미줄 ㅣ 창비아동문고 51
E.B.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경 옮김 / 창비 / 2001년 3월

  “Absolute nobody”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강조하는 이 말은 사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해석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비하의 의미와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의미. 전자든 후자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오히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의식하는 누구 혹은 무엇이 있다는 말이 더 분명하지 않을까?

  내가 조금 어렵게 얘기한 이 말을 아주 쉽게 말하는 친구가 있다.

  새하얀 피부와 선명한 핑크색 귀를 가진 윌버가 자신을 아무것보다 못한 것이라고 얘기한 양에게 응수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못한 게 어디 있니? ……. 제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해도 말이야.”

  정말 똑똑한 돼지다.

  윌버는 약하게 태어나서 태어나자마자 주인의 도끼에 죽을 뻔했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주인 집 딸  의해서 목숨을 건지고 새로 얻은 보금자리에서 아주 편안했다. 윌버는 이곳 주커만씨네 농장에서 말, 소, 양, 거위, 쥐 등등의 다른 친구들과 결코 잊을 수 없는 거미 샬롯트를 만났다. 헛간의 마른풀 냄새와 열린 문을 넘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윌버를 아주 행복하게 해준다. 시간 맞추어 나오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윌버가 돼지인 이상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주커만씨가 윌버를 기르는 이유이다. 그리고 윌버가 그 이유를 알았을 때 윌버는 울부짖는다. 죽고 싶지 않다고. 양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 이하로 취급하는 돼지의 목숨. 누가 윌버의 손을 잡아 줄까 싶지만은 여기 윌버의 손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친구가 있다. 몸통 아래로 검은 줄이 도드라져 보이고 따뜻한 황갈색이 도는 8개의 다리를 가진 샬로트! 샬로트는 거미다. 사실 처음 샬롯트가 윌버의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샬롯트가 윌버를 도끼가 아닌 자신의 독으로 편히 보내주겠다는 말이구나 싶었다. 윌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라고 말하는 샬롯트의 모습까지 상상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나를 샬롯트는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샬롯트가 나에게 남긴 것은 윌버에게 샬롯트가 보여준 우정만큼 값진 것이었다.

  이 책을 읽는 하루 동안 나는 내가 마치 그 곳에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젓 짜는 의자에 앉아서 윌버와 샬로트의 얘기를 듣고 마른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소곤대는 친구들의 대화가 따뜻한 햇볕에 꾸벅꾸벅 조는 내 선잠을 깨운다. 고개를 들면 윌버와 샬롯트의 아이들이 날 놀려댈 것 같기도 한 건 내 착각일까?

  삭막한 도시 생활만이 전부였던 내게 주커만씨의 농장은 이제 특별한 것이 되었다. 그건 단순한 시골생활이 주는 호기심이나 겪어보지 전원생활의 동경만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해버린 많은 것들이 나를 향해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를 묻는 회귀의 장소였다. 평상시에 별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지나쳤거나 무시해 버린 사람들과 나의 감정들. 어쩌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상처받고 싶지 않은 자기 방어에서 비롯된 내 주위의 버려진 수많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런 것들이 주위에 더 쌓여갈 수록 나는 더 많이 외롭고 더 많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그렇게 대할 때 나도 다른 것들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음식과 벌레로만 취급했던 이 두 친구가 내게 보여 준 우정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세상의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그 의미를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자만심과 선입견을 버리고 내 주위 모든 것들을 진실 된 마음과 열린 사고로 대한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특별한 것이 될 수 있으며 그런 관계 속에서 나도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설사 그게 꼭 인간관계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아침에 마시지는 물 한 잔,  출근 할 때 타는 버스, 회사로 뛰어 갈 때 나를 스치는 바람,  같이 점심 먹는 동료들, 퇴근할 때 버스정거정의 나무, 집 앞 나무 위의 새, 저녁상을 차린 엄마, 거실로 들어오는 달빛……. 그 사이사이의 모든 것들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내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