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사막
박경진 글 그림 / 도깨비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되찾고 싶은 색, 초록

 

  처음에 땅은 아주 푸르고 아름다운 초록으로 시작한다. 그 색깔은 너무 싱그럽고 그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서로를 보듬어 안은 동물들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땅은 조용히 웃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산 아래 자리를 잡고 동물들을 내쫓고는 집을 짓는다. 그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마침내 산꼭대기까지 사람들의 집으로 가득 찼을 때는 동물도 없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 노랗게 변해버린 땅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도 메마른 땅을 떠난다. 하지만 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빛을 식혀주는 비 한 방울 없이 밤이면 몰아치는 모래폭풍을 막아줄 나무 한 그루 없이. 혼자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땅의 얼굴은 슬프다. 땅은 기다린다. 다시 힘차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서늘한 그늘을 만드는 울창한 숲과 푸른 들판을 뛰는 동물들을.

  

  땅은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림만으로도 땅의 처음이 가운데가 마지막이 어떤지를 다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땅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친구들의 모습을 별들 사이에서 찾아낼 때는 보이지 않게 흐르는 땅의 눈물이 내 마음을 적셨다. 슬프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땅의 푸르른 옷을 빼앗아 버리고 알몸으로 버려놓은 것 같아 죄인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내가 마치 벌거벗긴 채로 버려진 듯해서 수치스럽기도 하다. 아무런 가림도 없이 다 드러난 땅의 모습에서 난 내 모습을,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책 속에 사람들도 처음에 땅을 찾았을 때는 푸른색을 띄었다. 하지만 땅이 점차 초록색을 잃고 노란 모래 색깔로 변함에 따라 사람들도 황토색으로 바뀌더니 땅을 떠날 때는 그 색마저 없어서 검은 빛을 띠는 회색으로 바뀌고 말았다. 초록색의 생기를 잃어버린 건 땅 뿐만이 아니었다.    

  

  저자는 생명이 가지는 색깔의 변화만으로도 그 소중한 가치를 충분히 표현했다. 또한 동물들과 사람들의 움직이는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어서 항상 다른 각도로 그려진 모습이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땅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아름다운 초록색과 동물들의 생기로 가득 찬 책의 첫 장이 거친 황토색으로 변한 마지막 장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가지면서도 마지막 장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오직 이 마지막 장에서만 동물과 사람들의 흐름이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마치 시간을 거슬러서 다시 푸른 땅을 찾아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땅은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이 생명의 색깔인 초록색을 되찾는 것은 결코 땅에 국한된 얘기거나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숲과 물이 없이는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으며 그건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이 잃어버린 것은 지금 내가 잃어버린 것이며 내 아이가 잃어버린 것이다.

  

  비록 땅이 올려다보며 그리워했던 동무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은 없었지만 우리는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다시 그 소중한 생명의 푸른색을 자연에게 되찾아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그건 바로 우리의 생명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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