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 - 상
지영 지음 / 아름다운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너 또 로맨스 소설 읽지? 야, 좀 건설적인 걸 읽어라. "

  오빠가  방문을 열고는 저녁내내 방에서 나오지 않는 여동생에게 한소리합니다.

  "책에 상하가 어딨냐? 책으로 꼭 지식만 습득하라는 법 있어? 지식도 중요하지만 정서와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것도 문학의 일부네요. "

  사실 동생은 압니다. 오빠가 딱히 어떤 장르를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직장 다니는 동생이 이틀동안 저녁만 먹고는 밤새 책을 읽으니 걱정돼서 하는 소리라는걸요. 근데 오빠는 모릅니다.  오빠가 건설적이지 않다고 무심코 분류해버린 이 책 때문에 제가 일주일내내 얼마나 가슴을 설레고 즐겁게 일했는지.

 

  ...한국말로 써 있지만 다분히 외래어 같은 발음인 이 책의 제목은 일본어입니다.  연꽃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하지요. 연꽃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꽃이 아니듯이 도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그냥 물가에 핀 연꽃처럼 단아하고 은은합니다. 류타카도 "너도 내 마음에 썩 드는 얼굴은 아니다"라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지만 그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바로 그 연꽃에 이미 넋을 빼앗겼으니까요.

  류타카는 연못에 연꽃이 피고 마치 그 연꽃을 향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매화꽃들이 나뭇가지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봄에 만났습니다. 은 조선에서 끌려간 포로고 류타카는 일본의 이름 높은 무사가문의 당주입니다. 포로로 잡힌 사촌오라버니의 목숨을 담보로 은 간자(첩자)가 되서 류타카의 첩이 되고 그는 그것을 알고도 그녀를 받아들입니다.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집안을 지키는 책임만이 전부였던 류타카. 오라버니와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인 . 한사람은 아무것도 소망하는 것이 없고 다른 한사람은 그 소망이 너무 깊어 한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처음으로 무언가에 욕심이 나는 류타카는 자신의 감정이 두렵습니다. 게다가 의 시선은 언제나 금방이라도 가버릴 것처럼 먼 곳을 향해 있어서 자꾸 화가 납니다. 은 남자를 향한 여자의 마음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왜장의 첩이 된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점점 다정해지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릴 수 없는 것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류타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든지 들어줄 수 있었지만 그녀를 고국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은 이미 그의 삶이 돼어 버렸습니다. 그는 그녀의 원망도 감수하기라 마음먹습니다. 류카카를 위해서 그를 떠나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원수의 첩이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혹시 그 죄를 죽어서 받더라고 살아 있는 동안은 그냥 한 여인으로서 그와 있고 싶은 의 마음에 원망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서로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되기까지 두사람이 참 많이 힘들었지만 둘의 바람이 정말 깊었나봅니다. 참 다행입니다. 그 소망이 마지막엔 결실을 맺으니까요.

 

  제가 이 책을 밤새워 읽을 때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통과라는 황당한 일이 붉어져 나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읽고 있던 책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덮어졌습니다. 그들이 마치 일본인과의 사랑얘기에 정신이 빼앗긴 저의 뒤통수를 때리고 "거봐, 그건 그냥 소설이야."라며 비웃는 거 같았거든요. 그 순간에는 오빠의 구박 아닌 구박에도 굳건하던 제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일본인과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닌데 단지 허구인 소설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국노가 된 듯 한 기분을 들게 만들다니....... 일본은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틀림이 없나 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을 읽은 것이  더 마음 깊이 읽어진 이유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저조차도 생소하게 느낀 그 찰나의  순간에 저는 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는 류타카에게 속삭이는 한마디를 제가 들은 말인냥 위로로 삼습니다.

 

  류타카는 착 가라앉은 어조로 의 귀에 속삭인다. 

  "미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