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아름답다. 그래서 서글프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오랜 기억상실증에서 회복된 느낌이다. 이렇게 마음이 일렁거린 수필은 그 얼마만이던가. (사실 오랫동안 나는 그 일렁거림을 내 스스로 싫어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 가끔 예전에 모아놓은 책들을 읽으며 사실 조금 청증맞기도 한 그 유치함이 참을 수 없이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에 가뭄이 든 것마냥 단비처럼 느껴지니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무미건조했던 걸까? 아님 단지 가을 탓인지도...

참 섬세하다. 맨드라미 꽃의 생김새 하나 하나 떠오르게 만드는, 그 손에 닿던 촉감을 선명하게 되살려 주는 그의 수필은 마치 세밀한 정물화가 이어진 아주 커다란 풍경화 같다. 라일락향기가 품어져 나올 것만 같고, 건초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놀랍고 아름다운 묘사다. 지난날을 그렇게 생생히 추억하고 사진처럼 선명하게 우리 앞에 내어 놓다니......

그러나 그의 추억엔 반드시 자연이 함께 한다. 개구장이 짓거리에도 꽃황새냉이며 수영의 줄기, 개암나무, 물버들......이건 우리의 어린시절과도 비슷하다. 우리의 어린 시절도 자연으로 가득 차 있지 않던가? 사루비아 꽃을 따먹고, 분꽃 씨를 빻아 흰가루를 내어 소꿉장난을 하고,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고......자연을 벗어난 추억이 있던가? 사실 이 수필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결국 자연과 함께 했던 우리의 추억 탓일지도 모르겠다. 글로 되새겨 다시 그 희미한 기쁨과 평화의 자락을 잡고 흐믓해 할 수 있기에 이렇게나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진정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정원 한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아니라 그런 슬픔따윈 알지도 못할 빠듯이 지어진 건물들 틈에 있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이라 그런가? 청승맞다고 싫어했던 이 기분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던 건? 가을 햇빛이 유리알처럼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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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0-30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기쁨과 평화의 자락을 잡고 흐뭇할 수 있기에 이렇게 좋은지도..
맘에 와 닿아요..아무리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던 마음도 다시 숨을 쉬며 웃을 수 있기에..자연과 함께 한다는것은 참 좋은거지요??

카페인중독 2006-10-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풀도 벌레도 다 너무 이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