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시선 121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구판절판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8쪽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10쪽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18쪽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4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 2006-09-1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봐야겠어요..제목이 너무 아쉬워~~~~~~~

카페인중독 2006-09-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날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놀랐죠...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너두 실랄하게 날려줘서...
근데 이상한 것이...그래도 그 시가 이쁘다는 것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