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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 - 고립되고 은둔한 이들과 나눈 10년의 대화
김혜원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평점 :
자신을 고립시키고 은둔하는 한 친구를 알고 있다. 온라인 너머로 얼굴을 보았고, 가끔 메시지를 주고 받았을 뿐 만나보진 못했다. 연락을 할 때마다 늘 예의 바르다. 유년기에는 활기찬 인싸였다고 들었는데, 스스로를 가둬버린 그녀석의 마음은 어디쯤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알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 짙은 안개가 있어,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만,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읽고 나니 은톨이들이 문을 열고 나와 세상을 마주하는 일은 큰 용기를 내는 일임을,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관계가 있어야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힘들고 지칠 때 우리가 돌아가 쉬고 싶은 곳은 결국 온기가 흐르는 사람 곁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나니, 힘들고 지쳐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시간은 상처의 깊음, 무력함, 지쳐버린 마음이 더 거대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과 단절을 택한 아이에게 “왜 그러냐, 이유를 모르겠다.”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말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내모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는 가족들의 심정도 이해하게 된다.
은톨이들에게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줄 ’믿음’이 가장 필요한 것을 알지만, 수많은 상황 속에서 무조건 희망을 품는 믿음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도 현실적이며 공감되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알아가기 전에, 세상이 원하는 시계에 맞춰 살아가거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버티다가 세상과의 단절, 관계와의 단절을 택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나를 알아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된 청년들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 가족도, 친구도,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될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 안을 껍데기 삼아 숨어버리는 것. 내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외로움을 택하는 게 얼마나 두렵고 힘겨운 일일지.
김혜원 교수를 찾아온 이들은 그래도 세상 안에 다시 들어가보고 싶다고 작은 용기를 내어본 친구들이겠지. 가족들에게 등떠밀려 나왔다고 해도, 그 발걸음이 용기겠지.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고 믿는 상담자의 역할이 꽤 경이로웠다. 나를 토해내는 경험, 기다려지는 경험,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들이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주었을 테니. “나”라는 존재에 대하 함께 고민해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놀라운 경험일 테니.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잘 모르는 시대인 듯하다. 나를 알기 보다 타인의 시선과 잣대에 적응하고 맞추느라 지치는 시간이 많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아이들이 많은 건, 당황하게 괴는 건,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사회의 조급함 때문이 아닐까.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읽으며, 여전히 우리는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라고 말하기보다 ’해야 한다’를 더 빠르게 선택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기다려주겠다’보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과 기대의 마음을 얹는 말들이 더 빠르고 쉽게 오간다는 걸 깨닫는다.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함께 걷는 방법을 배운다면, 다그치는 말보다 믿어주는 말을 더 나눈다면. 나조차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본다면을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어서, 상처받고 상처주고 외면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응원하는 말들이 누군가를 살리기도 란더. 저마다 다른 마음의 표정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몰라서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쌓여온 은톨이들의 시간들을 풀어낼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랬다. 나이가 먹었다고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쉽게 평가하고 수근거리기보다는 잘 모르는 것들은 배워가면 좋겠다. 고립되고 은둔한 이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게 좀 더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공부하듯 읽었다.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오해하고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