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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집>
2025-03-05
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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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쯤인가 2009년쯤인가 이십대 후반에 읽었던 <엄마의 집>에 대한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때는 육아와 일로 지쳐있을 때였는지 모른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읽었지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던 때.
2025년 <자기만의 집>을 읽자 이야기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엄마의 집>의 개정판이었다.

‘너희 엄마도 가출했어?’라는 범상치 않은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스무살 호은의 고군분투다. 정확히는 엄마와 아빠겠지만, 어쩌면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숙사에서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호은에게 갑자기 아빠가 찾아와 중학생인 승지를 엄마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승지는 아빠가 엄마와 이혼하고 재혼한 여자의 아이다. 승지의 엄마는 병으로 죽었다. 이 황당한 부탁을 수행하기 위해, 아니 호은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 엄마에게 간다. 승지를 데리고.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호은은 엄마를 떠나 기숙사를 택했지만, 승지의 등장으로 엄마와 얼마간 함께 살게 된다. 엄마와 함께 아빠를 찾아 추적하며, 유년시절의 과거를 떠올리고, 누구보다 담담한 승지의 반응에 애써 관심갖지 않으려던 아이에게 자신을 투영해 보기도 한다.

호은과 승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고,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있고, 포기하지 못해 그 주변을 맴돌며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른 나이에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다, 자신으로 살기 위해 이혼을 하고 뛰쳐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살아가기 위해 먼 시간을 견뎠다는 걸 안다.

할머니 손에 자란 호은의 결핍은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남아있지만, 성인이 된 호은도 어렴풋이 알아간다. 엄마 또한 애쓰며 살았다는 걸. 견디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서로가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지 못해 떠나고, 다른 집을 찾아 정착하는 과정에서 결국 어딘가에 정착하는 일은 수많은 것들을 조율함과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임을 아는 일. 진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내가 받은 상처조차도 묵묵히 감수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할퀴고 물어 뜯으며 포기하지 못해 서로를 망가뜨리기 보단, 서로를 떠나 자신을 재정비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처럼 보이는 엄마와 아빠. 그 사이에서 외로웠던 호은. 승지를 다시 아빠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엄마만 포기하면 모든 게 완벽하게 들어맞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엄마가 끊어낸 순간이 그렇게 쉽게 이어붙을리 없다.

호은이 엄마 아빠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 승지도 꽤 도움이 되었다. 호은의 엄마를 ‘친척 아줌마’라고 부르는 승지는 ’타락‘한 어른이라고도 칭한다. 타락은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승지에게는 호은의 엄마가 그렇게 보인다. 호은은 엄마가 입버릇처럼 생업은 삶에의 복무라는 말을 떠올린다.

너무 빨리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버린 엄마. 가치와 신념을 쫓으며 가족의 생계에는 무심했던 아빠. 지쳐서 떠나버린 엄마와 남겨졌던 호은.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도 남몰래 가졌던 미움과 아픔이 승지와 함께 살게 된 얼마간의 시간 동안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 과정들이 시간들이 아름다웠던 <자기만의 집>. 혈연이 아닌 형태의 사람들도 가족이 되어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는 것. 서로는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도 상처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마주할 때 또 다른 관계가 열린다는 것.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읽게 된 <자기만의 집>이 와닿는 나이가 되었다. 이십대에는 그냥 읽고 덮었을 이야기가 사십대가 되니 알알이 몸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더 깊게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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