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3 - 완결
이원호 지음 / 은행나무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래전 내가 다니던 도서관에서 1,2권을 빌려 봤더랬다. 그땐 3권이 없어서

완결을 못봤었는데 이번에 도서관에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3권이 있더라고.

그래서 완결을 보게됐다. 내가 완결을 안 봐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이 책은 나에게

그리 큰 의미가 있진 않았다. 지난 1,2 편은 내가 기억하기에 완벽한 주인공! 그야말로 완벽한.

혼자서도 모든 일처리가 가능하고 그렇다고 외골수는 아니며 눈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고 냉혹하고 잔인하지만 그만큼 인정도 많은 여하튼 이런 책에 나오는 그런 전형적인 인물.

그래도 구성은 꽤나 치밀해서 이런 저런 사건들을 얼기설기 잘 얽어 놨었다. 하지만 3편에선

작가 뒷심이 딸린걸까? 이 소설은 스포츠 서울에 연재한 걸 묶어서 낸 건데 호흡이 길어지면서

작가 집중력이 떨어진건지 3편은 대충대충 넘어가기 일쑤였고 이야기도 그리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아서 1,2편 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이원호씨는 이런 쪽으로 글을 많이 쓰시던데,

나중에 김성종씨가 추리문학관을 만든 것처럼 그런 거라도 하나 만들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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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라자, 어제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있었던 일이 있었지 뭐."

"그건 가혹하다. 그건 너무나도 잔혹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에서

 

 

 

라디오의 뉴스 : 미군도 수많은 전사자를 냈지만, 베트콩측도 115명이 전사했습니다.

 

여자: "무명이란 참 무섭지요."

남자: "뭐라고?"

여자: "게릴라가 115명 전사했다는 것만 갖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일은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는 상태지. 아내나 아이들이 있었는지? 연극보다 영화를 더

좋아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저 115명의 전사라는 것 말고는-."

 

-장 뤽 고달, <미치광이 피에로>에서

 

 

 

 

 

 

 

 

'모닥불이 꺼지면 추워지니까 싫어도 눈은 떠진다.'

 

-다리미가 있는 풍경 中

 

 

뭔가,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와 다른 의미인 것처럼 들리지만

나에게는 같은 의미로 와 닿는다.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리라는...

 

 

 

'말은 돌이 된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 中

 

 

자신의 한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여자에게 말은 돌이 되어버리니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저 꿈을 기다리라고. 글쎄,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쌓아두고 묻어둬서

돌이 된 것일텐데, 훗날 그에 대해 말하려 하니 그게 또 돌이 되다고 한다.

자신의 한에 대해선 누군가에게 설명한다거나, 이해받으려 하기 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가슴 속에서만 풀어버려야 하는 걸까?

 

..그래, 먼저 자기 가슴속에서 풀어버려야 후에 남에게 말을 하더라도

그게 다시 돌이 되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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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신문에 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 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업어주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언제나 나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그는 모르겠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소설은 매우 잘 읽힌다. 문체도 그러하고 이야기도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이고.

어찌됐던 읽는 내내 뒷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이 책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실컷 재밌게 읽어 놓구선 뭐, 그냥 재밌기만 한 책, 그저그런 시간죽이기 용 책이라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글을 쓰면서도 자꾸만 머뭇거려 지는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종종 책을 덮어 버린 이유와 동일한지도 모른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을 보고 우리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개념 없는 그들도 개념이 있게 되면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의 아픔 앞에 우리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사람들의 연민에 호소하는 책이다. 아마도 연민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보면서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도 아파하지도 않지 싶다.(아,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정말 이 책을 읽고 아무런 감정도 못 느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읽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면 지금 내 글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도 같고, 아, 물론 그래도 익숙한 반복이라 할지라도 전혀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조금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다는 말을 그대로 전하기로 한다.)

 

윤수. 남자 주인공 이름이다. 주인공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편인데 이 이름은 좀 오래 기억하지 싶다.

윤수, 라는 남자는 착한 사람이다. 착하기만 하고 지혜는 없는 사람이다. 그랬기에 이 착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몰랐고 마냥 착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가게 된다. 차라리, 이 주인공이 악독한 놈이었다면 그렇게 살진 않았을 것이다. 악독한 것들은 어떻게든 자기 앞가림 하면서 꽤 잘 살기 마련이다. 윤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그런 놈들처럼 어떻게든 자기 살 길은 찾아간다. 착하려면, 그만큼의 자신의 심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어야 했는데 윤수라는 남자의 불행은 여기에 기인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 지혜의 부재에 관해서 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 지고 있고 그 주인공이 강동원과 이나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서 종종 그 주인공들과 매치가 되곤 했다. 내 생각에 캐스팅은 꽤 괜찮은 것 같다. 형사도 봤었는데 강동원이 이 역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일단 그런 분위기나 스타일은 나올 것 같다는 것. 다만 대사가 좀 분량이 있을 것 같은데 이를 얼마나 잘 전달할런지는 본인의 연기력에 달렸지만. 그리고 이나영은, 책을 읽으면서 종종 이 책의 대사들이 이나영이 직접 읽어주는 것처럼 실제로 이나영이 연기하는 대사처럼 들렸다. 자연스레 오버랩 되는 걸 보면 이나영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울지 않으려 했는데, 윤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인 것만 같아서, 유정의 아픔이 나의 아픔인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났다. 이를 두고 연민이라고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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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러시 라이프. 풍요로운 인생 이란다.

 

이 작품을 두고서 '퍼즐'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가 이내 '레고'로 바꾸어 버렸다.

퍼즐, 이라는 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인생들이 흩뿌려지고 그 이야기 조각들을

이 작가가 퍼즐로 맞추었다는 것. 하지만, 내가 이내 '레고'로 바꾸어 버린 건, 아직도, 지금까지도,

신이라는 작자가 우리 인생을 쥐고서 레고 만들듯이 A의 인생과 B의 인생이 어느 한 부분 연결되도록 B의 인생과 C의 인생이 어느 한 부분 연결되도록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정해진 시간, 짜여진 틀 속에 그 사람들이 역 앞을 지나가야만 했던 게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이 역 앞에 지나가 어떠한 행위를 했을 뿐인데 그 뒤를 이어 그 사건이 뒷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되고 또 그 사람으로 인해 어떠한 사건들이 엮이게 되고...이건, 레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자유의지로서 어떠한 장소를 지나게 된다면 신의 개입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이 작은 교집합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그 장소라는 것은 역 앞이라는 것이고 이들의 공통점은 떠돌이 개를 보았다는 것과

전망대, 그리고 에셔의 그림. 이 교집합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5개의 이야기. 5편의 삶.

이들의 레고는 아주 교모하게 만들어져 있다. 다섯편의 이야기를 하면서 각각 시간의 차이가 생긴다. 서로 같은 시각에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은 마치 추리소설이라도 되는 양 얼기설기 얽혀진 이야기들을 추리하게 되고 읽으면서 점점 앞 뒤 이야기를 맞춰 보게 되고 후반부로 갈수록 앞에 그 떠돌이 개가 왜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지 노부부 강도단을 만난 토막난 시체를 떨어뜨린 사람이 누구인지,차 트렁크 속에서 시체가 왜 바뀌었는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정신과 상담의인 여자에게 정신과 상담의가 되고 싶다며 전화한 남자가 누구였는지.

 

이런 이야기들의 엮임 속에 대충 어떻게 흘러가겠다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이게 일본 소설의 분위기, 흐름이라고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조금 해 봤었다. 우리나라 여류소설가들의 소설이 비슷한 분위기를 뿜어내듯이, 일본의 일부 소설가 집단도 비슷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뭔가 서로 연결된 이야기가 아닌 체 하면서 불친절하게 흩뜨려놓는 이야기들을 점점 하나의 큰 틀 속에서 이해하게끔 만드는 그런 소설. 미안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생각이 났다.

 

어찌됐건 이 책의 제목은 러시 라이프 란다. '풍요로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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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2006.5.8

 

가스오븐에 머리를 처 박고 죽은 한 천재작가의 소설 <벨자>

천재작가라 불리는 실비아 플라스.

근데, 하필이면 가스오븐이라니-

죽을 때 조차도 자신을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싶었나

이 천재작가가 신경증에 빠져드는 과정을 독특하고 날카롭게 묘사한 자전적 소설이자

실비라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인 <벨자>

전혜린을 떠올렸다는 소설 <벨자>

이 책에 붙은 수식어는 모두 내게 '위험'이라는 단어와 대치된다.

위험한 책 <벨자>

읽기도 전에 난,

이 책 속에 침잠하고 싶다, 느낀다.

 

 

 

 

2006.5.11

 

그녀의 자살기행을 보고 있자니 남 일 같지가 않다.

자살을 하려고 하면서도 어머니가 오실지 모른다며 실패,

면도날은 있지만 따뜻한 목욕물이 없다며 실패,

바다에 몸을 맡기려다 시린 발목이 아린다며 실패.

어떤 방법을 썼던지간에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실패했을거야.

넌, 아직 죽고 싶지 않은 거거든.

 

 

하지만, 그녀는 결국 제대로된 자살을 감행하게 되고

처음엔 실종인 줄 알았으나 결국엔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병원(일반)으로 옮겨지고 나중엔 정신병원으로 옮겨진다.

 

 

난 이 책에 어떤 기대를 했던 걸까.

아마, 이 책은 결국엔 이런 책이었기 때문에 읽기도 전에 위험한 책이라

단정지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이 책은 대학을 장학금 받으며 우등생 코스로 다니고 있는 한 여대생이

뉴욕의 잡지사 공모전에 입상해 그 잡지사에서 한달 간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고

뉴욕, 그 속에서 만난 인물과 사건 속에서 그녀가 점점 정신 분열증으로 몰려 가고

결국엔 자살을 시도 하고 정신병원에 가게 되고 그리고...

 

난, 그 다음이 있을 거란 기대를 했었나..

결국 그 정신병을 어찌어찌 극복을 했다던지,

그리고 결국엔 이리저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아니면,

그 정싱병동 내에서의 이런 저런 흥미로운 사건이라던지.

 

그런 거? 없다.

책의 마지막은 실비아가 의사들과의 면담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 면담으로 실비아가 퇴원을 허락받는지, 허락받지 못하는지도 없다.

다만, 그 면담으로 인해 퇴원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은 있지만.

그렇게 본다면 결국 이 책은 실비아의 퇴원에 대한 기대감으로

해피엔딩인 것처럼 마무리 짓고 있다.

 

근데 난, 이 책이 해피엔딩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작가가 이 책을 더 썼더라면 실비아는 그 의사들과의 면담에서

순간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그 병원에 게속 남을 법한 짓을 하게끔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작가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질질 끌고 싶지 않아서 작가로서는 최대한 양보해서

이쯤에서 매듭지은 것이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거다.

애초에, 이 책은 해피엔딩일 수 없는 책이었다는 생각.

 

그건 아마도, 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벨자>의 작가 실비아 플라스가

결국에는 가스오븐에 머리를 처 박고 죽어버렸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엔 그런식으로 귀결되고 말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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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2006-05-2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적으로 뭐라고 하던데, 그 실비아 플라스가 걸렸던 신경증이...?
히스테리였던가? 정확히 모르겠네요...
여하튼 끔찍했어요... 어린 자식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죽다니...버지니아 울프도 신경증으로 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