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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담백한 소설이었다. 화려한 수사도 허황된 과장도 없었다.
기록에 근거해 그 당시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 상황 속에서의 이순신을 그렸다.
이덕일씨가 쓴 역사소설인 '조선왕독살사건'아니 '사도세자의고백'은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심정보다도 그 당시 정황이 어떠했는지 어떤 세력이 어떻게
그들을 궁지로 몰아갔는지를 쓴 글이라면, '칼의노래'는 이순신이라는 한 장수가
일본이라는 적과 왕이라는 적 사이에서 어떠한 심정으로 전쟁을 수행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크게 왜곡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어찌됐건 이순신은 일기 형식으로 세밀한 기록들을
남겼고 김훈은 대부분은 그에 따랐다. 그리고 그 너머는 동감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하게 느꼈으리라...
역사소설은 아픈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아니, 무딘 가슴으로 읽어도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늘 같은 모토다. 불쌍한 우리 민족이 있고,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헤쳐나가보려는 세력이 있고
그 속에도 우리나라를 쪼개먹으려는 수작들이 있고 그 위엔 무능력한 지도자들이 있고.
조선은 확실히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운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조선을 건국했듯이, 이순신이든 누구든 이 시점에서 조선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더라면,,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랬더라면 나중에 어쩌고 저쩌고는
접어두더라도 말이다. 수군들을 따라다니며 울부짖는 백성들. 그 백성들도 가엽고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면서 군량으로 묻어 두었던 된장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이순신과 그의 수졸들도
가엽고 울음으로 밖에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선조도 가엽고.
후,,그동안 내가 알았던 읽었던 이순신 위인전이랄까 그런 것들은 너무나도 화려했다.
수치도 화려했고 이순신의 기개도 화려했고,,이 책에는 인간 이순신이 있다.
영웅이나 위인 이순신을 앞선 인간 이순신. 그도 무섬증에 울음을 울었고, 그의 칼도 함께
울었고 그럼에도 죽을 자리를 찾아 다녀야 했던 이순신. 잘 죽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딘가를
고민했던.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이 죽어야 할 곳에서 죽었다.
마지막 전투. 그건 퇴각하는 일본군을 치는 것이었는데 명과 일본의협상에 의해
일본군을 곱게 돌려 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순신은 그 적들을 결코 곱게 보내줄 수가 없었다.
만약, 이 때 일본군을 곱게 돌려보내 준다면 아마도 경상도 일부를 나중에 일본에 떼어줘야
했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럴 지도 모르는 일. 명과 일본이 나누어 먹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이순신은 퇴각하는 일본을 곱게 보내주지 않았고 이로써 조선 수군은
온전한 승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 죽은 이순신. 이보다 더 잘 죽을 순 없었을
것이다.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죄어드는 선조. 아마도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더라면
선조의 칼을 받아야 했을 터, 그로써는 장군으로써 전쟁터에서 죽기를 바랬을 것이고
가장 영예로운 전투에서 죽었다. 완성된 죽음. 애도를 느끼기에 앞서 잘 짜여진 죽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
훗, 험난한 전투속에서 조선을 구해 낸 영웅을 위한 하늘의 마지막 배려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