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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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암 촘스키. 이름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한데, 당최 뭐 하는 사람인지 관심 가져본

적도 알고자 한 적도 없었다. 이번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이란 책을 구매하는데

증정본으로 딸려온 이 책은 왠지 본래 구입하려던 책 보다 더 재밌어 보인 까닭에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촘스키, 라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 작은 책 한권으로 다 파악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촘스키의 답변을 토대로 추론 해 볼 수는 있을 게다.

이런 식의 촘스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책. 인터뷰인 까닭에 사안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 제한된 사안에 대한 촘스키의 답변에서 우리는 촘스키가 무엇을 따르는지, 그의 양심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촘스키도 엘리트이다. 스스로가 특권층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히려 특권층이기에

자기는 이렇게 말해도 된다고 한다. 힘 없는 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당장에 큰 일이 나겠지만

자기는 특권층이기에 미국을 이렇게 비난할 수도 있는 거라고. 내게 촘스키는 엘리트주의 같았다.

마르크스를 읽고서 마르크스가 비난하는 그 엘리트주의에의 갈등이 일었다. 어쩌면 내가 지향하는

바는 애초부터 촘스키였던 건 아닐까. 이미 자신은 특권층이고, 특권층이긴 하지만 그 특권으로

인해 불법을 자행하는 게 아니라, 그 특권층임을 방패삼아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고 싶은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깨어있는 지성이기는 하나, 행동하지 않고 대중을 여전히 자신의

아래에 두려는, 대중을 여전히 계몽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그 엘리트 주의.

 

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촘스키의 견해는, 일단 사람 이름이 붙은 건 다 의심해 봐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사람의 이름이 붙은 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격화되기 마련이고

신성시 여겨져 왜곡이 가해지게 된다고. 이런 대답,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아마, 촘스키는 마르크스 주의에 대해 어느 한 입장을 취하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는

내 멋대로의 추측을 해 본다. 이건 내가 이미 그 엘리트주의에 한번 당해 봤기 때문이다.

아직도 난, 그 엘리트 주의에 대한 결단을 못 내렸지만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무엇보다도

나의 그 엘리트 주의에 대한 다른 길을 보여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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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2006-08-2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kyceti님이 엘리트주의에 당해봤다는 건가요?촘스키와 마르크스는 잘 연결해 본 적이 없는지라.... 촘스키는 그냥 실천적 지식인이란 말밖에 모르겠네요//
 
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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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소설이었다. 화려한 수사도 허황된 과장도 없었다.

기록에 근거해 그 당시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 상황 속에서의 이순신을 그렸다.

이덕일씨가 쓴 역사소설인 '조선왕독살사건'아니 '사도세자의고백'은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심정보다도 그 당시 정황이 어떠했는지 어떤 세력이 어떻게

그들을 궁지로 몰아갔는지를 쓴 글이라면, '칼의노래'는 이순신이라는 한 장수가

일본이라는 적과 왕이라는 적 사이에서 어떠한 심정으로 전쟁을 수행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크게 왜곡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어찌됐건 이순신은 일기 형식으로 세밀한 기록들을

남겼고 김훈은 대부분은 그에 따랐다. 그리고 그 너머는 동감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하게 느꼈으리라...

 

역사소설은 아픈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아니, 무딘 가슴으로 읽어도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늘 같은 모토다. 불쌍한 우리 민족이 있고,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헤쳐나가보려는 세력이 있고

그 속에도 우리나라를 쪼개먹으려는 수작들이 있고 그 위엔 무능력한 지도자들이 있고.

조선은 확실히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운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조선을 건국했듯이, 이순신이든 누구든 이 시점에서 조선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더라면,,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랬더라면 나중에 어쩌고 저쩌고는

접어두더라도 말이다. 수군들을 따라다니며 울부짖는 백성들. 그 백성들도 가엽고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면서 군량으로 묻어 두었던 된장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이순신과 그의 수졸들도

가엽고 울음으로 밖에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선조도 가엽고.

 

후,,그동안 내가 알았던 읽었던 이순신 위인전이랄까 그런 것들은 너무나도 화려했다.

수치도 화려했고 이순신의 기개도 화려했고,,이 책에는 인간 이순신이 있다.

영웅이나 위인 이순신을 앞선 인간 이순신. 그도 무섬증에 울음을 울었고, 그의 칼도 함께

울었고 그럼에도 죽을 자리를 찾아 다녀야 했던 이순신. 잘 죽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딘가를

고민했던.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이 죽어야 할 곳에서 죽었다.

 

마지막 전투. 그건 퇴각하는 일본군을 치는 것이었는데 명과 일본의협상에 의해

일본군을 곱게 돌려 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순신은 그 적들을 결코 곱게 보내줄 수가 없었다.

만약, 이 때 일본군을 곱게 돌려보내 준다면 아마도 경상도 일부를 나중에 일본에 떼어줘야

했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럴 지도 모르는 일. 명과 일본이 나누어 먹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이순신은 퇴각하는 일본을 곱게 보내주지 않았고 이로써 조선 수군은

온전한 승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 죽은 이순신. 이보다 더 잘 죽을 순 없었을

것이다.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죄어드는 선조. 아마도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더라면

선조의 칼을 받아야 했을 터, 그로써는 장군으로써 전쟁터에서 죽기를 바랬을 것이고

가장 영예로운 전투에서 죽었다. 완성된 죽음. 애도를 느끼기에 앞서 잘 짜여진 죽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

훗, 험난한 전투속에서 조선을 구해 낸 영웅을 위한 하늘의 마지막 배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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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바퀴! - 제1회 바람단편집 높새바람 11
최정금 외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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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단에 당첨 되고서도 한참 후에야 내 손에 쥘 수 있었던 책이다.

하지만 동화책이기에 읽어내린 시간은 기다린 시간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여운이 기다림의 시간보다 더 오래간다면..??

 

먼저, 나는 어른이다. 어른이기에 이 책을 볼 때에도 동화책으로 동화책의 눈높이로

보이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읽던 책처럼 보게 됐다. 그런 이유에 책을 읽으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고민들이 일었다. 가정을 해 보자. 나에게 어린 아이가 한 명 있고 이 책은

내가 그 아이가 읽었으면 하고 골라 준 책이라고.

 

먼저, 다소 어른들의 주제, 어른들의 글쓰기가 엿보였다. 쓰는 이가 어른이기 때문에?

아니면 너무 허무맹랑한 옛날 이야기 말고 지금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는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가 쓰고 싶었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 되었든 어른들의 책 속에서 종종 보여지는

그런 헛헛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글이 있었다. 이걸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아마도 그 글 속의 이야기들은 이미 오래전 부터 아이들도 알고 있고 이미 겪었던,

겪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혀서-애매모호하게 착한아이가 최고라는

그런 동화들 말고- 아이들이 그런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니, 어떻게, 라는 건 없어도 좋다. 그냥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씌어져

있고 그 아이들은 또 그 속에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것이므로.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겪지 못했던 아이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주위에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어떠한 심정일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이해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글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정말 동화같은 이야기들도 몇 편 있었는데 이건 그냥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면서

읽을 수 있는 글이라서 좋았다. 바퀴의 입장이 되어서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엔 어렴풋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이기적인 문명에 대한 폐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는 맨 마지막 이야기 였는데

이건 그야말로 정말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장 감정전이가 잘 일어난 이야기였다고

할까. 아니면 내가 어릴 적에 그런 동화들을 많이 봐서 그런 걸까?

 

참, 요새도 꼬마 흡혈귀의 이사소동이나 외동딸 엘리자베스 같은 책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때의 재미와 외동딸 엘리자베스의 아픔에 함께 분노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때의

아릿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줄 만한 좋은 책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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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라이브러리 25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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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역시 고등학생 때 '국화와칼'과 함께 읽었던 책으로 국화와칼은 읽었다는 기억만 있는 반면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쥘부채'라는 키워드와 함께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일본인의 축소지향적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쥘부채는 역시나 다른 문물과 마찬가지로

중국, 한국에서 전해졌으나 이 부채를 한 손에 쏙 들어오도록 축소시킨 건 일본인이었다.

이 책을 이제와 다시 읽으니 그동안 책이 개정된건지 아니면 정말 이런 내용과 이런 구성이었는데

또 나의 두뇌가 나를 배신한 건지, 아마도 나의 두뇌가 나를 배신한 것일 게다.

쥘부채라던가 트랜지스터라던가 구체적인 물건이 제시된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는데

일본의 정신적, 행동적 측면에 대한 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냥, 이 책보다 일본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책을 나는 아직까진 본 적이 없다.

'국화와칼'은 고전이다. 그야말로 고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에 와서까지 실용성이 있다.

지금에 와서도 일본인의 성향에 대해서 이해하고 짐작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지금 당장 내가 일본에 가서 어떠한 문제에 직면한다면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한번 떠올려

볼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인의 정서에 맞게 행동하는 게 어떤건지 생각해 볼 것이고.

시대가 변하고 있고 일본인들도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만 생각하느냐고?

우리나라도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했다. 그래서 요즘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기도 하고 그런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노인공경, 연장자 우대가 남아 있다. 설사,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노인 공경, 연장자 우대 했다고 욕 먹을 일은 없다. 그냥 이런식의 해결책이라는거지.

그리고 또 하나. 역시나 뭐든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받아들인다.

지난 학기에 '일본문화의 이해'라는 강의 들으면서 탐탁지 않아 했는데 그래도 한학기 동안 강의

들은 게 도움은 된 것 같다. 와비니, 리큐니 하는 것들, 아예 뭔지도 모르고 책을 봤다면 또 기억

못하고 넘겼을 법 한데 대충이라도 뭔지 알고는 있으니 그것들을 예로 들면서 일본인의

축소지향적 측면에 대해 설명을 하니 무슨말 하는지는 알겠다는 거지.

이 책은 출판할 때 일본에서 일본어판으로 출간한 책이라 나중에 한국어 번역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일본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보면 잘 이해도 안 되고 번역하려 해도 마땅히 번역이

안 될 것 같다며 차일피일 미루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일본 문화에 대해 알고 싶고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일본 문화에는 뭐가 있는지를 다룬 책부터 먼저 읽어보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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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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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씨가 쓴 책 중에 '사도세자의 고백' 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이 장편이라면 이 책은 단편집이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효종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때의 왕실 상황과 당쟁 상황등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며 사도세자가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고립되며 죽어갔는가를 써 놓았다. '조선 왕 독살사건'은 소현세자와 7명의 왕.

8명의 독살설에 대해 그 시대 정황과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다투는 것은 신하가 하는 것이고 그 판결은 왕이 내린다.' 하지만 조선 후기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왕은 한 나라의 모든 신하의 왕이 아니었다. 당수였을 뿐이다. 왕도 당이 선택하고

그 왕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당은 왕을 독살시켜 버리고 자신들이 정한 왕을 옹립한다.

그리고 나면 또다시 반대파가 그 왕을 제거하려 하고 또다시 자신들의 왕을 세우고..

이런 반복으로 조선시대엔 독살설이 끊이질 않았다. 왕이든 정승이든 뜻 있는 사람, 혹은

사심없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하지 싶다. 그렇게 강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평생 살아가며 순간순간 흔들릴 수도 있겠는데 처음부터 작심하고 자신의 안위, 자기 가문의

영광을 위해 조정에 뛰어든 자들이 나라를 운영하니 잡음이 많을 수 밖에 없겠고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만 바빴다. 아니다. 한사람 한사람 그 자체는 덕망있고

학식있는 선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이 당으로 뭉쳤을 때, 그리고 당쟁으로 상대 당을

대할 때, 그들에겐 선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빌어먹고 사는 이들보다 못한 짓거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글세다, 그게, 사대부라는 자만심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사대부, 라는 자만심에 왕도 자신들이 정할 수 있고 이 나라도 왕의 나라, 백성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들의 나라이며 왕은 그 사대부 중 으뜸가는 사람일 뿐이라는 그들의 생각.

신분에 대한 지나친 자만심. 후,,하긴 그 시대엔 그게 당연했으니 이제와 그걸 탓할 수만도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평등 사상이 만연하니 어쩌구 저쩌구 하지, 그 시대엔 천민들도

자신들이 알아서 천민임을 알고 알아서 천민으로서의 처신을 했으니..

그냥 역사인 뿐인걸까. 모든 왕조, 모든 역사엔 '창업기-성장기-발전기-쇠퇴기-소멸기'라는 게

있으니. 그냥 그 시대 사대부들의 현실안주와 외세의 개입으로 자체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지 못한 게 안타깝기도 하다. 일찌감치 조선 후기의 독살로 얼룩진 역사를 갈아 엎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창업해 일본을 맞았다면 그땐 어떠했을까? 뭐, 저자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만약에..라고 했을 경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많은 게 우리 역사임엔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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