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매 맞는 엄마의 장면이 나오고, 이를 보고 집을 뛰쳐나간 딸은 친구에게 자기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딱 여기까지 보고 나는 '아, 내가 실수했구나.' 했다. 이 실수했구나..하는 감정은 점점 정말 내가 봐서는안 되는 영화를 보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남편에게 매 맞는 엄마는 가져봤지만, 그런 집안 상황을 비관도 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고 내새끼..라고 하며 아낌없이 딸을 사랑해주는 엄마는 가져보지 못했다. 이 엄마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히 하지 않겠다. 정말 딸을 아주 끔찍히 사랑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대충 맞을 것이다. 이런 어머니의 무한 사랑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이런 엄마를 가졌더라면 나는 좀 더 다른 사람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나도 내 가족을 위해, 내 부모를 위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좀 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우연찮게도 어제 본 무릎팍 재방에 타블로가 나왔는다 타블로가 그러더라. 외국인 교장 앞에 고개 숙이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런 가족들의 희생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생각해보니 나도 한 때는 누군가에게 내가 잘못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를 생각하며 오히려 더 바르게 살겠다고 삐뚫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가 가장 학업 성취도가 좋았던 것 같다.
또 다른 생각은, 정말 세상 엄마들이 다 이래??라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이러지 않았고 내 친구의 어머니도 저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저게 과연 지금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장면 장면 조각내어 놓는다면 그 중 어느 한 장면 쯤은 나도 가져봤을 것이고 다른 이들도 가져봤겠지만 정말 이 영화처럼 이렇게 자식을 끔찍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그리 흔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그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이혼하지 않았던 건 바로 자신의 빈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할 그 딸 때문이었다는 것은 많은 어머니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저 딸이 왜 갑자기 내려와서 어머니에게 저렇게 잘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영화는 지극히 진부했지만 진부함 속에서도 신선함을 찾고 싶었는지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의 또 다른 버전이 눈에 띄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부모가 있을 때 잘하라는 말도 되지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을 때 그 때 잘 하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나중에 좀 더 형편이 나아지면..이라고 하면서 미루지만 따지고 보면 나중은 없다. 사랑에 어찌 나중이 있을 수 있을쏘냐. 그 나중엔 이미 마음이 식었거나 마음이 있어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거나 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어버이날에는 엄마가 사달라고 하던 반지나 하나 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