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신나는 책읽기 4
임정자 지음, 이형진 그림 / 창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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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들여다 보면 쉬이 발견할 수 있는 일상 속 작은 판타지. 꿈을 잃은 아이들이, 놀이를 잃은 아이들이 이런 판타지가 주는 상상이 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맛갈스러운 언어로 쓰여지고, 딱 맞는 밝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흰곰 인형을 제외하고는 4가지의 이야기 모두 살짝 비슷한 톤을 가졌다. 약한 것이 강함이 되고, 약점이 때로는 놀이의 시작이, 배려는 나에게 힘이 되는.  

「낙지가 보낸 선물」은 늘 매맞는 아이 남수가 때리는 엄마가 냄비에 넣으려는 낙지를 구해주고, 선물로 낙지에게서 빨판 운동화를 선물로 받는다. 그래서 그 이후로 엄마가 때리려고만 하면 빨판을 타고 저 위로 올라가 버리는 덕에 매를 '덜' 맞게 되고, 엄마는 '덜' 때리게 되었다는 얘기.  

「꽁꽁별에서 온 어머니」는 어른과 어린이의 단절된 소통문제를 '서로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에'라는 판타지를 사용하여 풀어본다. '내장 놀이 하고 싶다'를 '대장 놀이?'로 이해하고(요거 살짝 작위적이다), '마술하고 싶어'를 필요한 '미술 과외'로 둔갑시켜 이해하고, '축구하고 싶다'를 '죽고 싶다'로 듣는. 즉 아이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줄 모르는 엄마. 이유는 엄마가 꽁꽁별 출신으로 유년기를 기억 상자에 다 빼앗겨 버렸기 때문. 딸은 그 기억상자를 찾아서 가지고 돌아오고, 엄마는 유년기를 찾는다. 물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상대방의 말에 주의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결말.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는 쿵쿵 거린다는 아랫집 아주머니의 항의 때문에 집을 나와 아파트 계단에 나온 주인공. 그곳에서 콩콩이, 겅중이, 총총이 귀신을 만난다. 비상 탈출구로 사용되는 계단은 어느덧 상상놀이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이들은 신나는 오후 시간을 보낸다. 

「이빨귀신을 이긴 연이」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비오는 날 학교 앞으로 우산을 들고 나올 수 없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가진 연이는 물 웅덩이를 보다가 풍덩 물 웅덩이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빨귀신에게 잡혀간 엄마를 생각하며 우는 벌레를 만나고 세 가지의 방해자를 아군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적을 무찌르고 벌레의 엄마를 구해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방법인데. 그것은 엄마가 잘 때 들려주던 이야기와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이다. 즉 엄마의 부재로 마음이 상했지만, 늘 함께 하지는 못해도 엄마와의 시간이 이 아이에게는 강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흰곰 인형」은 네 개의 단편과 살짝 색이 다르다. 사서는 버려진 흰곰 인형을 줏어다가 도서관에 두고, 이내 곰인형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사랑을 받는 만큼 인형은 금새 헤진다. 그래서 사서는 고쳐야지 마음 먹고 창고에 넣어둔다. 인형극을 하게 된 학교. 재료가 없다. 그 때 곰인형은 자신을 잘라서 토끼로 만들라고 하고. 사서는 인형의 뜻을 따라서 곰을 없애고, 대신 토끼를 남기게 된다. 흰곰 인형의 자기 희생. 그리고 토끼로의 부활. 

살짝 눈치 챘으려나. 이 다섯가지 이야기들을 한꺼풀 벗겨 보면 옛이야기가 보인다. 물고기를 살려주고 부를 얻은 부자 이야기, 세 가지 방해물을 조력자로 만들어 적을 무찌르는 것은 흔히 든장하는 플롯이고, 자기희생적 부활 역시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옛이야기의 현대화. 이토록 맛깔스런 현대화라면 아이들도 즐겁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옛이야기는 끊임 없이 재화된다. 껍데기를 현대로 갈아 입을 지언정 그 이야기들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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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야? 사계절 저학년문고 30
황선미 지음, 최정인 그림 / 사계절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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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한국 동화의 주제와 트랜드가 바뀌는 것 같다. 사회를 반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테지. 우리나라는 언제나 해외로 입양을 보내던 입양 수출국이었다. '쿠키 줄까?'를 '고기'라고 알아 들어서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한 한국 여자 아이의 입양 일화는 어렸을 때 부터 들었던 얘기였다. 그렇게 고아들을 입양 보내기만 하던 나라에서 자국의 아이들을 조금씩 품에 안기 시작했다. 점차 공개 입양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입양을 하게 되면 누가 가장 힘들까? 본인이 가장 힘들수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입양을 받아들이는 가정의 기존 자녀 또한 많이 힘들 것이다. 이 책은 입양 가정의 형 찬이의 심리를 따라가며 입양을 통해 동생 받아들이기의 과정을 소개한다.

입양이라는 것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동생을 갖는 다는 것은 사랑을 둘로 나누는 행위이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며 호통치던 미실이 갑자기 떠오른다. 내가 독점하던 사랑을 누군가와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의 어릴적 과거의 자리에 나는 사라지고 낯선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어른인 나라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점한 나의 세계와 가정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게 나타난다. (황선미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뽑을 수 있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히게 어린이의 감정을 포착한다는 점에 있다. 어린이들이 정말 생각할 법한 심도 깊은 내면의 목소리들이 잘 드러나 있다.) 부모님과 한 달에 한번 보육원에 방문하여 봉사하던 찬이네는 그 중에 어린이 한 명. 6살 난 성주를 입양하기로 한다. 입양하기 전 대상 가정이 입양하기에 적합한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검증하는 기간을 가지기로 하고 한달 에 한 번 성주가 입양될 가정에 찾아온다. '내 방에 들어오는 새 물건은 언제나 내거' 였던 찬이의 방에 본인의 것이 아닌 성주가 잘 접이식 침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심리적 경계를 느끼게 된다. 엄마가 성주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그 말이 바늘처럼 내 가슴을 콕 찔렀다. 나한테 했던 말이거든요.' 더이상 나만의 엄마가 아니고, 나를 위했던 말을 엄마가 타인에게 했을 때 느낄 그 배신감과 아픔은 엄마의 자리에 연인을 대입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성주가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내 엄마를'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엄마인데. 우리 엄마가 아닌 내 엄마. 이렇게 자신의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성주는 들어와 버렸다. 

그런 성주에 대한 찬이의 마음은 미묘하게 뒤틀린다. 이상하게 타인인 성주가 내부 사람이 되고 자신이 오히려 고아처럼 느낀다. 당연히 찬이는 성주에게 잘 해줄 수가 없다. 그 아이가 밉고 도무지 반길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방문의 날이 찾아온다. 또한 그날 마침 친구 동일이가 집에 놀러온다. 말더듬이 동일이는 성주의 손가락이 여섯개인 것을 발견하고 그 손을 보고 놀린다. 성주는 울음을 터뜨리고 찬이는 친구를 타박한다. '내가 너 말 더듬이라고 놀리면 좋겠냐' 때로는 제3자의 방해꾼이 어색했던 둘 사이을 극적으로 화해시키기도 한다.

한편 어릴적 입던 옷이며, 장난감이며 모드 엄마가 성주에게 주어서 뿔이나 있던 찬이. 성주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6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원래의 주인이 자신에게 물려진 그 물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미안함은 찬이가 가지고 싶어했던 레고를 보육원 동료에게서 훔쳐서 찬이에게 주는 것으로 보상하려고 한다. 마침 이 둘은 극적으로 화해가 되기도 한 상태이다. 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찬이의 어릴적 장난감 하하박쥐와 레고를 들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 레고를 조립하며 잠이 든다. 이렇게 둘은 경계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된다. 하지만 그 화해의 매개였던 레고는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보육원에서는 아무래도 찬이네 가정이 적합한 가정이 아닌거라고 우려를 하게 된다. 성주가 집으로 방문하면서 자꾸만 안좋은 쪽으로 가게 된다면서. 책은 결말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성주가 찬이네 집으로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 그게 핵심도 아니다. 한 아이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 심리적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제가 해결되어 성주가 집으로 입양될 수도 아닐 수도 없다. 자기만 알았던 찬이라는 아이가 이제는 성주를 '우리'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쉬운 점도 많이 남는다. 너무나 많은 곁가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굳이 절친 동일이를 말더듬이로 설정한 이유는 뭘까. 굳이 성주가 육손이였을 필요는 있었을까. 굳이 엄마 본인이 고아였는데 직면하기 싫지만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할 의무감(?)으로 성주를 입양하려고 한다는 개연성도 사실 필요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빠가 없어서 아들이 엄마 성을 쓴다는 소문. 찬이 엄마와 성주의 성일 같은 '이'씨라서 찬이가 혹시 성주가 정말로 엄마 아들일까 의심하는 대목도 차라리 빠졌으면 했던 부분이다. 이렇게 불필요한 아니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단서들과 개연성 거리들을 쫘악 빼고 좀 더 담백하고 심플한 구조로 갔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조금 아쉬웠다. 굳이 그렇게 모든 것에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좋다. 오히려 지나치게 뚜렷한 이유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참 좋은 책으로 기억된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아이의 심리를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른의 눈에서는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심리 하나하나 터치하면서 절묘한 목소리를 부각시키면서 전개시켜가는 황작가는 아주 뛰어난 작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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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마녀래요 - 2단계 문지아이들 6
E.L. 코닉스버그 지음, 윤미숙 그림, 장미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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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읽은 동화. 요즘 의도적으로 동화책을 많이 보려고 노력중이다. 근데 참 재미있다. 동화책이란거. 이 책은 '제목과 표지'에 속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제목을 선정했고, 표지를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제목만 보면. '내 친구가 마녀다' 이것이 판타지일까, 사실 동화일까 가늠이 안간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반까지도 제니퍼가 마녀일까 아닐까에 대해서 엘리자베스처럼 완전히 속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그것을 의도한 것이라면 그나마 제목을 봐줄만 하긴 하지만. 또 표지의 그림도 썩 잘 선택된 장면은 아닌 것 같다. 마치 거지 마녀의 형상을 하고 수레를 끌고 있는 제니퍼. 그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아닌데.  

 

표지.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 / 제목. (역시 전혀 마음에 안든다) 







외국 출판 다른 표지들. 모두 '개구리(두꺼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외국 출판 표지들은 세 판본 모두 핵심 적인 위치에 '개구리'를 배치하였다. 이 개구리가 상징하는 바를 그들은 잘 이해했음이 분명하다. 개구리 '힐러리 에즈라'는 끝날 수 밖에 없는 '가장' 행위의 종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대상이자, 이 둘의 관계에 균열을 결국에는 참된 화합을 가져오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뉴욕 근교로 이사를 온다. 전학생이라는 신분은 일단은 '차별적'인 요소가 된다. 또 키도 작고 썩 외향적이지 않은 리즈는 남들과 섞이지 못하고 늘 혼자 생활한다.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난 텅빈 교실을 좋아할 정도로.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는 혼자 있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기 때문) 이런 리즈에게 제니퍼라는 흑인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이 아이가 흑인이라는 사실은 후반부에 가서야 언급된다. but 삽화와 표지에서 이미 다 드러남) 흑인이라는 사실 말고도 키가 무척 크다는 이유 때문에 역시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이질성을 갖는다. 이런 제니퍼는 자신을 '마녀'라고 소개하면서 리즈를 마녀 견습생으로 훈련을 시킨다. 외로운 리즈에게는 누군가 자신에게 접근해 줬다는 사실 만으로 반가운 일이며, 뭔가 신비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역시 말도 안되는 제니퍼의 훈련(일주일 내내 날달걀 먹기, 생양파 먹기, 사탕 먹지 말기, 머리 자르지 말기 등등)을 견뎌 내도록 한다. 제니퍼의 '마녀' 행세는 끝이 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고 자신을 마녀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 거짓말은 '날 수 있는 연고' 만들기라는 실질적 마술 앞에서 들통날 수 밖에 없다. 그 연고의 재료인 두꺼비. 그 두꺼비에게 '힐러리 에즈라'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제니퍼와 리즈가 각각 하나씩 이름을 제안한 합성 이름으로 그들의 공동 행동, 우정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과 그간의 애정이 쌓인 두꺼비는 연고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아니 희생 될 수도, 안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가마솥 마법의 연고를 만드는데 들어간다 손 치더라도 결코 마법의 약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며, 가마솥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약만드는 과정이 방해를 받아 끝이 나는 것인데. 그것은 또한 우정에 금을 가게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꺼비를 넣으려는 제니퍼를 리즈가 제지하고, 제니퍼는 어쩔 수 없이 마녀견습생에서 '해고'를 시키고, 리즈는 제니퍼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제니'를 외치고 뒤돌아선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서 돌아선 아이들. 리즈는 몇일간 고열로 시달리고 문득 뒷 베란다 밖을 바라보다가 제니퍼의 정체를 알게 된다. 제니퍼가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마법의 약을 만드는 과정을 제지 시키지 않았더라면 제니퍼가 그러했을 거라는 사실을, 그동안 가지고 왔던 신기한 재료들, 식물들이 마법의 위력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집 뒷편의 할머니 소유의 농장과 할머니가 모은 골동품 더미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제니퍼의 정체를 다 파악한 리즈네 집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다름 아닌 제니퍼이다. 이들의 거짓된 관계. 사실을 은폐한 관계.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니퍼가 마녀이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들을 넘어서 좋기 때문에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러한 균열 후에야 이들은 그것을 직시하고 이전의 관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관계로 돌입하게 된다. 

어찌보면 두 왕따의 친구 만들기 과정.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책은 '다름'과 '친구맺기'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주류에서 소외 받는 두 캐릭터를 선정함으로써, 핸디캡을 가진 이들이 우정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포시 일깨워 준다.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능력도, 외모도, 사회적 인지도도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둘 다 발가벗어야 한다. 가식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어떠한 조건으로써의 누군가가 아니라 나와 나로 만나야 하는 것이다. 에즈라 힐러리가 균열을 가져왔으나, 또한 이 균열은 온전한 우정을 위해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깨짐을 두려워 하지 말아라. 그 깨짐 후에 온전함이 찾아올 테니.
 

이 책을 읽는데 있어서 내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책이 1967년도에 쓰여졌다는 점이다. 그 당시의 미국 사회. 모두가 백인인 학교에서 흑인으로서는 유일한 학생이었던 제니퍼. 그 당시의 사회 상황을 나는 간과했다. 책을 다 읽고 앞쪽 서지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야 '아. 이게 60년대 책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던,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들은 차별화 되고, 주류가 아닌 것은 등한시 되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서 읽는 다면, 또 읽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전 정보를 준다면 훨씬 더 풍성한 글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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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전거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10
마리온 데인 바우어 지음, 이승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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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어버렸다. 뉴베리 수상작은 다 원서로 읽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원서로 읽으면 속도가 한글책보다 읽기가 더딘 것은 어쩔 수 없다. 책 표지의 느낌은 참 마음에 들고, 그 톤 역시도 책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 준다. 강이 아닌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것은 편집 디자이너의 미스 인 것 같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나이가 들어서 강 또는 바닷가를 바라 보았을 때 분명 표지의 사진처럼 그런 톤의 정서를 느낄 것 같다. 

잃어버린 자전거. 제목이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읽고 나서 나름의 의미들을 부여하니 이 또한 괜찮은 것 같다. 잃어버린 자전거. 잃어버린 친구. 그리고 잃어버린 해맑기만 했던 유년기. 이 잃어버림. 이 잃어버림이 텍스트를 이끌고 간다. 

1987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On My Honor. 번역제목 잃어버린 자전거. 가슴에 쿵. 하는 울림. 

워킹맘을 둔 조엘은 꼬마 때 부터 옆집 토니와 함께 자라난다. 이 둘의 성격은 참으로 다르다. 지나치게 모험심 강해서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토니와 대비 되는 조금은 소심하고 소극적인 조엘. 인기 많은 토니를 독차지 하고 싶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기는 또 주저하는 그런 캐릭터. 토니는 자전거를 타고 '아사의 절벽'을 탐험해 보고 싶다. 조엘은 속으로는 가기가 겁나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어렵게 조엘 아빠에게 허락을 받은 이들은 함께 자전거 탐험길에 오른다. 아무래도 사고도 많이 잃어나는 절벽에 가기 싫었던 조엘은 토니에게 강가에서 헤엄을 치고 싶다고 제안한다. 더러운 강가에 첨벙첨벙 들어가 버리는 토니. 절벽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여기서 헤엄 대결을 펼치자고 하고 이들은 수영을 시작한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토니가 보이지 않는다. 토니는 수영을 못했고 물에 빠져서 소리도 없이 익사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전반부. 

사건의 전말이 모두 소개가 되었고, 캐릭터들의 속성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크나큰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의식 변화이다. 이러한 의식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뭐냐하면 실제 말과 함께 머리에만 머무는 생각들을 함께 적어줬다는 것이다. 즉. 겉으로는 당당하게 "아빠! 허락해 줘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빠. 제발. 제발 허락하지 마.'하는 아이의 말과 마음 간의 간극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 나는 참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딜레마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는 씩씩한척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지만 사실은 상처 받기 쉽고,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은 어린아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이렇게 주인공의 내면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본다. 

위험한 절벽에 가자고 꼬신 것도, 강에 먼저 뛰어든 것도, 모든 것이 토니의 탓이었지만, 조엘은 그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끔찍한 죄의식. 그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 그 죄의식은 죽은 물고기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조엘의 표현에서 엿볼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해도, 부인하려해도 자꾸만 후각적으로 상기되는 죽음의 냄새. 죄의식의 냄새.  

적절한 알리바이를 미리 만들어 두고 부모에게, 토니의 부모에게 말을 했으나. 결국에는 경찰들까지 대동한 자리에서 사건을 밝히고 만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의 그 죄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조엘과 아버지의 대화가 참 인상 깊었다. 

'...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조엘에게 우리는 '만약에'에 의존해서 삶을 살 수는 없으며, 앞으로 힘든 일을 하나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얘기를 한다. 또한 모두가 '선택'을 하고 살아가며, 토니는 자신의 '선택'에서 돌아오지 못한 거라고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 갔을 거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조엘이 잠들기까지 그 곁을 지킨다. 

아. 저런 아버지. 저런 부모가 되어야 겠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무조건적인 위로를 하지 않았다. 안그래도 상처로 뭉개진 마음을 가진 조엘에게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또한 특별한 교훈을 가르치려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핸디캡이 있을지언정 삶은 계속된다는 진리를 알려주고, 나의 책임과 더불어 타인의 책임을 구분하여 지나친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지혜. 그리고 그 책임을 애초에 절벽으로 가는 것을 허락한 본인에게도 부과하여 '혼자'가 아닌 '함께' 그 짐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 말들이 내게는 참 와닿았다. 

하루 한나절 동안의 이야기였으나. 매우 짜임새 있게. 또 삶에 대한 지나친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모두가 녹아져 있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또한, 앞서 썼듯이 남자아이들의 또래 관계의 문제들, 사고를 당한 어린이/청소년의 의식 흐름, 문제를 직면했을 때 부모의 역할 등에 대해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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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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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ver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모든 것이 통제되어 있는 사회이다.
결혼도, 출산도, 음악도, 심지어 색깔도. 모두 무채색으로 덮여 있는 도시.
모든 것이 stable 해야 하기 때문에 날씨 조차도 통제하여 늘 같음 상태를
추구하는 사회.

하지만, 단 한 명 Receiver of Memory는 통제를 벗어나서, 세상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기억 보유자로 선택이 되고, 통제
너머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 그리고, 통제된 것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어둠의 진실을 깨닫고, 그 사회에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고 다짐,
탈출을 시도한다.

이 책은 결혼, 노인문제, 자유, 안락사를 비롯해서 많은 사회적 이슈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사회적 선을 위해서, 자율성을
통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알면 위험한 진실들을 감추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일까. 무엇이 진실된 감정인지, 무엇이 진실된 사랑인지도 모른체,
현재의 삶의 최상의 삶이라 생각하며 사는 어리석은, 하지만 누구라도 그 사회에
들어가면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이켜 본다. 또한, 사물의 본질, 삶의 본질은 생각하지 않은체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연연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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