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야? 사계절 저학년문고 30
황선미 지음, 최정인 그림 / 사계절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조금씩 한국 동화의 주제와 트랜드가 바뀌는 것 같다. 사회를 반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테지. 우리나라는 언제나 해외로 입양을 보내던 입양 수출국이었다. '쿠키 줄까?'를 '고기'라고 알아 들어서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한 한국 여자 아이의 입양 일화는 어렸을 때 부터 들었던 얘기였다. 그렇게 고아들을 입양 보내기만 하던 나라에서 자국의 아이들을 조금씩 품에 안기 시작했다. 점차 공개 입양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입양을 하게 되면 누가 가장 힘들까? 본인이 가장 힘들수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입양을 받아들이는 가정의 기존 자녀 또한 많이 힘들 것이다. 이 책은 입양 가정의 형 찬이의 심리를 따라가며 입양을 통해 동생 받아들이기의 과정을 소개한다.

입양이라는 것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동생을 갖는 다는 것은 사랑을 둘로 나누는 행위이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며 호통치던 미실이 갑자기 떠오른다. 내가 독점하던 사랑을 누군가와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의 어릴적 과거의 자리에 나는 사라지고 낯선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어른인 나라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점한 나의 세계와 가정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게 나타난다. (황선미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뽑을 수 있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히게 어린이의 감정을 포착한다는 점에 있다. 어린이들이 정말 생각할 법한 심도 깊은 내면의 목소리들이 잘 드러나 있다.) 부모님과 한 달에 한번 보육원에 방문하여 봉사하던 찬이네는 그 중에 어린이 한 명. 6살 난 성주를 입양하기로 한다. 입양하기 전 대상 가정이 입양하기에 적합한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검증하는 기간을 가지기로 하고 한달 에 한 번 성주가 입양될 가정에 찾아온다. '내 방에 들어오는 새 물건은 언제나 내거' 였던 찬이의 방에 본인의 것이 아닌 성주가 잘 접이식 침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심리적 경계를 느끼게 된다. 엄마가 성주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그 말이 바늘처럼 내 가슴을 콕 찔렀다. 나한테 했던 말이거든요.' 더이상 나만의 엄마가 아니고, 나를 위했던 말을 엄마가 타인에게 했을 때 느낄 그 배신감과 아픔은 엄마의 자리에 연인을 대입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성주가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내 엄마를'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엄마인데. 우리 엄마가 아닌 내 엄마. 이렇게 자신의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성주는 들어와 버렸다. 

그런 성주에 대한 찬이의 마음은 미묘하게 뒤틀린다. 이상하게 타인인 성주가 내부 사람이 되고 자신이 오히려 고아처럼 느낀다. 당연히 찬이는 성주에게 잘 해줄 수가 없다. 그 아이가 밉고 도무지 반길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방문의 날이 찾아온다. 또한 그날 마침 친구 동일이가 집에 놀러온다. 말더듬이 동일이는 성주의 손가락이 여섯개인 것을 발견하고 그 손을 보고 놀린다. 성주는 울음을 터뜨리고 찬이는 친구를 타박한다. '내가 너 말 더듬이라고 놀리면 좋겠냐' 때로는 제3자의 방해꾼이 어색했던 둘 사이을 극적으로 화해시키기도 한다.

한편 어릴적 입던 옷이며, 장난감이며 모드 엄마가 성주에게 주어서 뿔이나 있던 찬이. 성주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6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원래의 주인이 자신에게 물려진 그 물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미안함은 찬이가 가지고 싶어했던 레고를 보육원 동료에게서 훔쳐서 찬이에게 주는 것으로 보상하려고 한다. 마침 이 둘은 극적으로 화해가 되기도 한 상태이다. 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찬이의 어릴적 장난감 하하박쥐와 레고를 들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 레고를 조립하며 잠이 든다. 이렇게 둘은 경계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된다. 하지만 그 화해의 매개였던 레고는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보육원에서는 아무래도 찬이네 가정이 적합한 가정이 아닌거라고 우려를 하게 된다. 성주가 집으로 방문하면서 자꾸만 안좋은 쪽으로 가게 된다면서. 책은 결말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성주가 찬이네 집으로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 그게 핵심도 아니다. 한 아이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 심리적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제가 해결되어 성주가 집으로 입양될 수도 아닐 수도 없다. 자기만 알았던 찬이라는 아이가 이제는 성주를 '우리'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쉬운 점도 많이 남는다. 너무나 많은 곁가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굳이 절친 동일이를 말더듬이로 설정한 이유는 뭘까. 굳이 성주가 육손이였을 필요는 있었을까. 굳이 엄마 본인이 고아였는데 직면하기 싫지만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할 의무감(?)으로 성주를 입양하려고 한다는 개연성도 사실 필요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빠가 없어서 아들이 엄마 성을 쓴다는 소문. 찬이 엄마와 성주의 성일 같은 '이'씨라서 찬이가 혹시 성주가 정말로 엄마 아들일까 의심하는 대목도 차라리 빠졌으면 했던 부분이다. 이렇게 불필요한 아니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단서들과 개연성 거리들을 쫘악 빼고 좀 더 담백하고 심플한 구조로 갔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조금 아쉬웠다. 굳이 그렇게 모든 것에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좋다. 오히려 지나치게 뚜렷한 이유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참 좋은 책으로 기억된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아이의 심리를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른의 눈에서는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심리 하나하나 터치하면서 절묘한 목소리를 부각시키면서 전개시켜가는 황작가는 아주 뛰어난 작가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