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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ㅣ 신나는 책읽기 4
임정자 지음, 이형진 그림 / 창비 / 2001년 5월
평점 :
조금만 들여다 보면 쉬이 발견할 수 있는 일상 속 작은 판타지. 꿈을 잃은 아이들이, 놀이를 잃은 아이들이 이런 판타지가 주는 상상이 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맛갈스러운 언어로 쓰여지고, 딱 맞는 밝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흰곰 인형을 제외하고는 4가지의 이야기 모두 살짝 비슷한 톤을 가졌다. 약한 것이 강함이 되고, 약점이 때로는 놀이의 시작이, 배려는 나에게 힘이 되는.
「낙지가 보낸 선물」은 늘 매맞는 아이 남수가 때리는 엄마가 냄비에 넣으려는 낙지를 구해주고, 선물로 낙지에게서 빨판 운동화를 선물로 받는다. 그래서 그 이후로 엄마가 때리려고만 하면 빨판을 타고 저 위로 올라가 버리는 덕에 매를 '덜' 맞게 되고, 엄마는 '덜' 때리게 되었다는 얘기.
「꽁꽁별에서 온 어머니」는 어른과 어린이의 단절된 소통문제를 '서로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에'라는 판타지를 사용하여 풀어본다. '내장 놀이 하고 싶다'를 '대장 놀이?'로 이해하고(요거 살짝 작위적이다), '마술하고 싶어'를 필요한 '미술 과외'로 둔갑시켜 이해하고, '축구하고 싶다'를 '죽고 싶다'로 듣는. 즉 아이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줄 모르는 엄마. 이유는 엄마가 꽁꽁별 출신으로 유년기를 기억 상자에 다 빼앗겨 버렸기 때문. 딸은 그 기억상자를 찾아서 가지고 돌아오고, 엄마는 유년기를 찾는다. 물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상대방의 말에 주의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결말.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는 쿵쿵 거린다는 아랫집 아주머니의 항의 때문에 집을 나와 아파트 계단에 나온 주인공. 그곳에서 콩콩이, 겅중이, 총총이 귀신을 만난다. 비상 탈출구로 사용되는 계단은 어느덧 상상놀이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이들은 신나는 오후 시간을 보낸다.
「이빨귀신을 이긴 연이」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비오는 날 학교 앞으로 우산을 들고 나올 수 없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가진 연이는 물 웅덩이를 보다가 풍덩 물 웅덩이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빨귀신에게 잡혀간 엄마를 생각하며 우는 벌레를 만나고 세 가지의 방해자를 아군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적을 무찌르고 벌레의 엄마를 구해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방법인데. 그것은 엄마가 잘 때 들려주던 이야기와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이다. 즉 엄마의 부재로 마음이 상했지만, 늘 함께 하지는 못해도 엄마와의 시간이 이 아이에게는 강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흰곰 인형」은 네 개의 단편과 살짝 색이 다르다. 사서는 버려진 흰곰 인형을 줏어다가 도서관에 두고, 이내 곰인형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사랑을 받는 만큼 인형은 금새 헤진다. 그래서 사서는 고쳐야지 마음 먹고 창고에 넣어둔다. 인형극을 하게 된 학교. 재료가 없다. 그 때 곰인형은 자신을 잘라서 토끼로 만들라고 하고. 사서는 인형의 뜻을 따라서 곰을 없애고, 대신 토끼를 남기게 된다. 흰곰 인형의 자기 희생. 그리고 토끼로의 부활.
살짝 눈치 챘으려나. 이 다섯가지 이야기들을 한꺼풀 벗겨 보면 옛이야기가 보인다. 물고기를 살려주고 부를 얻은 부자 이야기, 세 가지 방해물을 조력자로 만들어 적을 무찌르는 것은 흔히 든장하는 플롯이고, 자기희생적 부활 역시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옛이야기의 현대화. 이토록 맛깔스런 현대화라면 아이들도 즐겁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옛이야기는 끊임 없이 재화된다. 껍데기를 현대로 갈아 입을 지언정 그 이야기들은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