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의 일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안내 방송을 들었다. 이틀째다. 베란다 우수관으로 강아지 대소변을 흘려버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내 기억에 이 방송은 예전에도 여러번 나왔었다. 그렇게 몇번을 말해도 해결이 안되는 모양이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의 고통에 새삼 감정이입이 된다. 다행히 내가 사는 라인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해서 개짖는 소리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앞동에는 시시때때로 짖는 개가 있다. 한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마치 도미노처럼 그 아파트 개들이 연달아 짖어댄다. 그럴땐, 인터넷에서 유명한 어느 동영상이 떠오른다. 아파트의 개짖는 소리에 울분을 이기지 못한 입주민의 처절한 외침이 담겨있는 영상이다.
"개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어법이 맞지 않은 문장이지만, 그걸 듣는 사람들은 그렇게 외치는 사람의 절절한 바램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의 바램을 개주인과 개가 알아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쇠귀에 경 읽기. 그말만큼 딱 들어맞는 비유도 없다.
몇년 전의 일이다. 안방 화장실에서 개짖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낮동안 그러는 일이 며칠동안 이어지길래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다.
"아, 그 집이요? 호프집 한다고 하는데, 낮동안 개를 봐줄 사람이 없대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니까, 화장실에 가두고 나간다 하더라구요. 그래서 관리사무소에서도 얘기를 몇번 해봤죠. 어쩔 수 없다고 그러던데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화장실에 가두고, 그 짖는 소리 때문에 남에게 욕이나 먹게 할 거면서 왜 키우냐고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게 개 짖는 소리를 2년 동안 들었다. 그 사람들이 이사가고 나자, 그 집에는 아침 화장실을 동전 노래방으로 여기고 괴성을 30분동안 질러대는 젊은 무개념 남자가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장실에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을 틀어주었다.
관리사무소의 반복되는 방송 가운데 하나는 베란다, 화장실, 계단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것도 있다. 이것도 해결이 안되는 문제다. 우리집 화장실의 경우는 어디선가 올라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환풍구를 아예 접착 시트지로 다 붙여서 막아버렸다. 그제서야 담배 냄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래도 계단에서 피우는 무뢰한의 담배냄새는 피할 수 없다.
밤 11시, 12시에 세탁기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어떤 삶의 상황이 거의 매일 그 시간에 세탁기를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물 내려가는 소음은 물론이고, 지독한 세제와 섬유 유연제 냄새가 하수관을 타고 내려온다. 다용도실과 접한 문들을 다 닫아도 스멀스멀 밀려 들어오는 무개념과 몰상식의 악취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도 관리사무소의 이런저런 안내방송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방송으로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말로 해서 알아들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앞동의 개는 짖어대고, 담배 냄새는 비상구 계단에서 떠날 줄 모르고, 한밤중에 돌리는 세탁기 물소리를 들으며 산다. 위아랫층의 층간 소음은 구태여 더 적고 싶지도 않다. 이것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숙명이겠거니 하고 사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