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1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EBS 클래스 e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좋은 강의들이 참 많다. 최근에 들은 최장순의 '기획의 세계'도 좋았고, 또 이전에 들은 작가 장강명의 글쓰기 강의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글쓰기 강의는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마음을 울렸던 강의가 또 있다.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수업'과 '공부법 수업'이 그것이다. 이 분은 직함도 여럿이다.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교수, 사제 등등. 스스로를 '공부하는 노동자'로 칭하는 그는 공부 경력만 30년이다. 그런 그가 아마도 가장 좋아할 것 같은 호칭은 '선생'이지 싶다.


  이 책은 그가 대학에서 강의한 라틴어 수업을 정리한 책으로, EBS의 클래스 e는 이 책의 TV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에는 TV에서 다 다루지 못한 여러 주제들, 이야기들이 실려있어서 흥미롭다. 방영된 '라틴어 인생수업'이 인기가 좋았는지, 얼마 안있어 '공부법 수업'이 4부작으로 편성되었다(이 강의는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가 아니다). 두 강의들 모두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동일 선생이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부법 수업'에서는 선생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감동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사적인 자리도 아닌, 그런 대중적인 강의를 위한 방송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들려주는 모습이 남달랐다. 아마도 그러한 인생 이야기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춘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처음 방송에서 선생의 강의를 듣게 되었을 때,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학자 신부인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사제들의 교육은 교구의 장학금으로, 수도회에 소속된 신부들은 수도회에서 책임을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도 사람마다 가진 이런저런 배경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에 따라 진로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한 선생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소위 시쳇말로 흙수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선생이 강의에서 들려준 자신의 십 대 시절은 단칸방에,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와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어머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그런 가운데 마음을 둘 데 없었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친했던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친구 형의 서재에서 선생은 인생의 빛을 비로소 만나게 된다. 책이었다. 온갖 고전 문학과 철학 책이 그에게 숨을 쉴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주었다.


  선생은 자신이 결코 머리가 좋거나,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덕성이 있었다. 열정과 성실성이었다. 그것이 그의 공부 인생 30년을 지탱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책을 통해 만나는 지식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꾸준히 쌓아가게 만들었던 성실성으로 인해 그에게는 이런저런 명예로운 호칭들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식을 탐구하는 '공부 노동자'로 자처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그의 책 '라틴어 수업'에는 그의 그런 소망, 특히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보석같은 조언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이 책에는 각 장마다 붙은 라틴어 경구에 대한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나에게 좋았던 부분은 5장 '단점과 장점(Defectus et Meritum)'이다. Defectus와 Meritum. 그 장은 우리 각자가 가진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생각해 보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과연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한 것은 단점이기만 한 것일까? 그것은 나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기만 한, 괴로움의 단초만 제공해주는 것일까? 최근에 본 다큐 'First Position(2011)'은 발레 영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거기에는 시에라리온 출신으로 내전에 부모를 잃고 미국 유대인 가정에 입양된 미카엘라가 나온다. 미카엘라는 발레의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흑인인 데다가 백반증이라는 피부병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카엘라의 목과 어깨부분의 피부는 얼룩덜룩해 보인다. 그런 피부를 가진 것을 단점으로 여기는 미카엘라에게 양어머니는 이런 말을 해준다.


  "네 피부가 그래서 눈에 띈다면 너에게는 좋은 일이야. 수많은 발레리나들 가운데, 관객들은 너를 더 잘 기억하게 될 테니까."


  미카엘라의 Defectus는 그렇게 Meritum이 된다. 놀랍지 않은가? 미카엘라의 얼룩덜룩한 피부는 그대로이지만, 그것을 보는 관점을 바꾸니 남들에게는 없는 장점이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우리 자신의 단점과 열등감들은 새롭게 봐주어야할 장점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28장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도 좋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실패와 고통도 감내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희망이란 좋은 거에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렇게 좋은 건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영화 '쇼생크 탈출(1994)'에서 주인공 앤디는 그렇게 말한다. '희망'은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특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대사이다.


  이 책의 라틴어 경구들은 방황하고 고민하는 청춘들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흔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조언이기도 하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가을 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마음이 서늘한 이들에게 든든한 마음의 외투가 되어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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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에 동생이 집에 잠깐 들렀다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에게 물었다. 


  "같이 영화 공부한 사람들 가운데, 그 쪽에서 잘된 사람 있어?"


  나는 잠깐 생각해 보고는 대답했다.


  "없어."


  영화 감독 되기 어려운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때 같이 공부했고 알고 지냈던 이들 가운데 입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 관련 책을 쓴 사람도 없는 듯하다. 내가 관심있어서 들었던 글쓰기 수업에서는 두 명이 등단했다. 한 명은 지금 아주 잘 나가는 중이고, 한 명은 책 좀 쓰다가 지금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써놓고 보니, 참으로 예술의 세계란 얼마나 무지막지한 곳인가 싶다. 순전한 재능의 세계, 그것이 기본이다. 거기에 더해 미친 듯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베스 카그먼 감독의 다큐 영화 'First Position(2011)'은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Youth America Grand Prix'에 참가하는 6명의 발레 유망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대회에서 입상하면 유명 발레 아카데미 장학금, 여러 발레단에서의 취업을 보장받는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예선이 열리고, 그 가운데 선발된 경연자들이 뉴욕에 모여서 최종 경연을 치룬다. 한마디로 난다 긴다 하는 발레 영재들의 피터지는 각축장이다.


  6명의 출연자가 들려주는 각각의 사연, 그리고 마지막 경연 장면까지 러닝 타임 1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아무리 9년 전 다큐 영화라 해도, 그 경연 결과를 말하는 건 스포일러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 한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무대 뒤에서는 눈물과 한탄, 자책이 가득하다. 그곳에 오기까지 그들 모두가 겪은 시간들은 마치 전쟁같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출연자들 가운데 눈부신 재능으로 상을 거머쥔 입상자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2011년에 찍은 다큐에서 그렇게 반짝거렸던 발레 영재들은 어찌 되었을까? 대부분 발레 무용수로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발레를 그만 둔 경우도 있었다. 당시 12살의 미코는 대단한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다큐 이후로도 세계 유명 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런데 미코는 발레를 그만 두고 대학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시에라리온 출신으로 내전에 부모를 잃고, 미국 유대인 가정에 입양된 미카엘라의 이야기가 참 극적이다. 발레의 세계에서는 드문 흑인인데다가, 미카엘라는 백반증까지 가지고 있다. 최종 경연을 앞두고는 발목 부상으로 내내 고생한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을 이겨가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미카엘라는 마치 부상 같은 건 처음부터 없는 사람처럼 무대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다큐를 보는 내내 가슴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분야는 다르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부딪혔던 재능의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피아노를 5년, 중학생 때는 바이올린을 3년 동안 배웠다. 둘 다 정말 좋아서 배웠지만, 나는 내가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렇게 배운 것을 실황연주 들을 때 써먹는다. 어디에서 연주자들이 실수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손이 삐끗해서 음정이 나갔는지, 어느 정도 연습을 했는지 대강 알아차릴 정도는 된다.   


  그리고 영화. 나는 이 '영화'라는 괴물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청춘을 삼켜버렸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건 아니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대상에게 '괴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미안해진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의 이미지는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에 미쳐서 자신의 젊은 날들을 그 속에 내던져 버렸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은 입구를 탐색하다가 진작에 가버렸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그 여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 안전하게 탐험할 수 있는 지도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영화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결과, 인생의 시간들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비극이 따로 없다. 


  "무서운 이야기네."


  동생은 내 말을 듣더니 그렇게 말했다. 아마 다들 뭔가를 하면서 먹고는 살겠지. 누구는 유학까지 다녀와서 먹고 살 방도를 찾으려 무슨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 세계는 재능과 노력, 운의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세계야.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거든.


  다시, 'First Position'. 미카엘라에게 발레를 가르친 스승은 '부상을 입을 수도, 실수할 수도 있지만, 무대에서 춤추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Keep dancing!"


  미카엘라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어코 얻어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사진 출처: theupcoming.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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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어떤 노래를 들었다. 기이한, 놀라운 힘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굉음에 가까운 전자 기타 소리와 알 수 없는 가사들이 혼재된 이 노래는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주 가끔씩, 이 노래를 연속 재생으로 해놓고 틀어놓는 날이 있다. 내 음악 취향과는 전혀 먼 이 노래를 내가 왜 좋아하는지 나도 모른다. 가사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이 노래는 바로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다.


  브렛 모건이 2015년에 만든 'Kurt Cobain: Montage of Heck'은 Nirvana의 리더 싱어 커트 코베인에 대한 다큐이다.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해서 자신의 음악으로 최정상에 올랐으나 결국 스물 일곱의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래서 불멸의 신화가 되어버린 가수. 이 다큐는 커트 코베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에 대한 여러 단서들을 제공한다. 커트의 유년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홈 비디오 화면, 주변 사람들의 증언, 커트의 글과 그림으로 차곡차곡 채워나간다. 음악은 오로지 Nirvana의 노래만이 나올 뿐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커트의 십대 시절을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해서 넣었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였다. 그러나 나중에 다큐를 본 커트의 절친한 친구 버즈 오스본은 그 이야기들이 사실과 전혀 다른 '허튼소리(bullshit)'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다큐에 불만을 표시한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커트의 어머니 웬디 코베인이다. 브렛 모건과 같은 작자(that man이라는 표현을 썼다)와 다큐 작업을 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한 것이다. 아마도 다큐에서 보여진 아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웬디는 차분하고 안정된 인상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명료하고 듣기 좋은 말투와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웬디 코베인이 구사하는 영어는 결코 하층민이 구사하는 영어가 아니다. 나름의 언어적 감각이라고나 할까, 그 점은 커트의 누이인 킴의 말투에서도 느껴졌다. 그런 것에서 커트가 싱어송라이터로 보여준 언어적 역량이 어머니에게서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커트의 나이 9살에 있었던 자신의 이혼이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말할 때는 회한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어린 커트에게 그 이혼은 아마도 정서적인 대지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집에서도 새엄마와 잘 지내지 못했던 커트는 조부모 집을 비롯해 여러 군데를 떠도는데, 그 십대의 시간들은 타고난 기질에 더해 불안과 고통이 깊게 뿌리내리는 시기였다.


  커트에게 음악은 그 혼돈과 괴로움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트레이시는 커트의 첫 여자친구로 그가 이제 막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했던 시절에 힘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평범한 중년여성으로 커트와의 관계에 대해 담담히 말하는 트레이시를 보고 있노라면, 커트가 나중에 만나게 될 코트니 러브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레이시는 자신과 만날 때의 커트는 마약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커트의 인생에 등장한 코트니 러브는 사랑과 함께 마약도 선사한다. Nirvana의 팬들에게 애증의, 어쩌면 불구대천의 원수같은 코트니 러브는 그렇게 다큐 중간부터 등장해서 끝날 때까지 그 면상을 봐야한다.


  다큐 후반부를 차지하는 자료 화면은 코트니가 찍은 비디오 화면들로, 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 코트니의 임신과 출산, 딸 프랜시스와의 일상들을 볼 수 있다. 뭐랄까,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약쟁이' 부모의 자식 사랑도 여느 부모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한다. 충격적인 장면도 있다. 프랜시스가 처음으로 머리를 자르던 날, 마약에 취해있는 커트를 보면서 코트니는 아이에게 약쟁이의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 어떤 기억도 없는 가여운 어린 아기 프랜시스는 이 다큐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는데, 다큐 작업을 후회한다는 할머니와는 달리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프랜시스에게는 이 다큐가 성장과정 내내 정서적 외상에 시달렸던 자신에 대한 성찰의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코트니 러브. 이 여자야말로 커트 인생의 많은 부분을 가려버린다. 이 다큐의 문제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커트 코베인과 그의 음악 인생의 전부인 Nirvana이야기는 별로 없다. 그룹 멤버들의 인터뷰가 노보셀릭 딱 한명, 그것도 10분 정도나 될까 싶은 아주 짧은 분량으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아주 실망스럽다. 귀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Nirvana의 노래들이 끊임없이 흐르지만, 그것이 전부다. 공연이나 앨범 제작, 멤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다. 그 대신 코트니 러브에게 마치 자기 변호의 이야기를 하도록 판 깔아준 느낌마저 들 정도다. 얼굴에 두꺼운 철판 딱 깔고, '내가 마약을 하긴 했어. 그래도 아기 가졌을 땐 안했다고'라고 말하는가 하면(그건 사실이 아니지), 커트 몰래 바람 피운 적이 없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원체 남자들 꼬시는데 선수거든(big flirt). 뭐, 딱 한번 정도 그랬던 것 같기는 해."


  그걸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Black widow. 한 남자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고통과 파멸의 길로 안내한 사람이 되었다. 너무나도 예민하고, 자신의 불안을 감당할 수 없었던 커트에게 사랑과 마약을 주면서 서서히 음악을 망가뜨렸고, 결국에 그 영혼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웬수같은 여자의 얼굴을 다큐에서 오래 보는 것을 좋아할 Nirvana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다큐를 보고 가장 좋아할 사람은 코트니 러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주목받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겠지.


  도대체 커트 코베인의 뭘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차라리 Weird Al Yankovic이 만든 패러디 뮤직 비디오 'Smells like Nirvana'가 짧지만 더 솔직하고, 통찰력있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150편이 넘는 패러디 뮤직 비디오를 만든 재능있는 음악가인 그에게 'Smells like teen spirit'을 패러디한 그 작품은 유명세를 떨치게 만들었다. 커트 코베인은 흔쾌히 제작을 허락했으며, 자신의 뮤직 비디오 제작을 맡았던 감독과 조연배우 섭외, 소품 대여에 이르기까지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대인배였던 것이다.


  그렇게 Weird Al이 만든 패러디 뮤직 비디오는 뛰어난 위트와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마치 원래의 뮤직 비디오와 한쌍으로 취급된다. 그는 늘 커트 코베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우연히 마주친 단 한번으로 LA의 한 식당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깊은 고마움을 표시하며 자신이 보답으로 해줄만한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커트 코베인은 손을 그에게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매니큐어나 칠해줘요(Polish my nails)."


  그런 일화를 보면, 커트 코베인은 격의없고 소탈한 사람이었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Montage of Heck'을 구글 영화에서는 '지옥의 몽타주'란 제목으로 방영하고 있는데, 참 마음에 안든다. Heck을 설마 Hell로 읽은 건가, 그런 말도 안되는 번역을 쓰다니 안타깝다. 'Montage of Heck'은 1988년에 커트 코베인이 개인적으로 녹음한 라디오 소리들, 데모 연주들이 담긴 녹음 모음집에 붙여진 명칭이다. 이걸 그대로 다큐 제목으로 쓴 브렛 모건의 상상력도 참 빈곤하다 싶다.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는 다큐이지만, 커트 코베인의 팬이라면 2시간이 좀 넘는 러닝 타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하기는 하다.



*사진 출처: lwl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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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EBS 세계의 명화에서 틀어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를 보았다. 보고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거지? 우디 앨런은 이런 영화도 쉽게 만들만큼 제작비도 잘 끌어다 썼던 모양이네', 싶었다. 한마디로 허세 가득한, 교양인들을 위한 문학, 음악, 미술 지식 테스트를 위한 리트머스 용지쯤 되는 영화로 보였다. 앨런은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여러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몇 명이나 아는지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그 사람들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볼 자격이 되는 거에요."


  그래, 나는 '주나 반스'만 빼놓고 다 안다. 그 인물들을 다 아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지독한 지적 속물주의(snobbism)가 이 영화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면, '미리 공부를 하고 보라'는 충고도 나온다. 기가 막힌다. 미리 공부를 하고 봐야할 만큼 이 영화는 대단한 영화인가?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이 자기 멋에 겨워 파리에서 노닥거리며 대충 만든 영화 같다. 그런데도 우디 앨런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니, 이 영화를 만들었던 때가 우디 앨런에게는 '황금 시대'였는지 모르겠다. 비평도 꽤 좋았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찾아보면 혹평을 찾아보기 어렵다. 죄다 미사여구 일색, 거장 감독에 대한 예우 치고는 과하다.


  영화 줄거리, 등장 인물이 궁금한 이들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아주 잘 나오니 참고하면 된다. 사진과 인물 해설까지 곁들여 백과사전처럼 편집해 놓은 블로그도 있다. 파리 덕후들에게도 이 영화는 인기가 있다. 유럽 쪽에서 평가가 좋았던 것도 이해가 간다. 1920년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키는 이 영화를 유럽인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우디 앨런이 그토록 열광해 마지않는 시대가 1920년대라는 것은 영화를 보니 잘 알겠다.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 나오는 길 펜더(오언 윌슨 분)가 우디 앨런의 분신이라는 것도 명확하다. 자신의 작품을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도 알아주겠다. 길 펜더가 진정한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다는 고민은 결코 진지한 것이 아니며, 약혼녀 이네즈와 피카소의 애인으로 나오는 가상의 여인 아드리아나와의 관계도 피상적이다. 도대체 이 영화에는 '진정성'같은 것이 없다. 길 펜더가 '마법 자동차(?)'를 타고 2010년에서 1920년대로 매일밤 여행을 떠나는 그 황당한 설정도 관객들은 용인해 주어야 한다. "Oh, my god!" 나는 점잖은 사람이므로 욕은 쓰지 않는다.


  오언 윌슨의 연기는 대단하다. 앨런의 연기 지도를 아주 충실히 잘 이해했으며, 앨런의 분신 역을 훌륭히 해냈다. 막장 연애사로 유명한 카를라 브루니는 몇 장면 등장하지도 않은 여행 가이드 역인데 확실히 화면을 잡아먹는다. 대단한 여자(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한 살바도르 달리가 참 웃겼다. 달리의 그 독특한 억양과 외모를 브로디만큼 재현해낼 수 있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그냥 그 뿐이다. 이 영화에 내가 별점을 주어야 한다면, 5개 만점에 1개에서 2개 사이를 고민할 것이다. 그래, 1개 반을 주기로 하자. 나는 우디 앨런의 몇몇 영화들은 아주 좋아했다. '젤리그(1983)',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뉴욕스토리(1989)',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같은 영화들.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2017년작 '원더 휠(Wonder Wheel)'이 정말 좋았다. 그 영화는 참 괜찮은 영화였는데, 그해 미국 주요 언론에서 꼽은 올해의 영화 20편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미아 패로의 양딸 딜런 패로가 우디 앨런이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뉴욕타임즈에 폭탄같은 서한을 보냈다. 그때부터 앨런의 황금시대는 끝나고, 악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앨런의 평판은 급전직하했다. 앨런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미아 패로의 입양 아들 모지즈 패로는 앨런의 편에 서서, 정작 애들을 학대한 것은 미아 패로였다고 주장했다(2018년 미국 허프포스트 참조). 미아 패로의 친자 로넌은 어머니 미아 패로와 여동생 딜런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우디 앨런은 부인이 된 순이 프레빈과의 엄청난 과거를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무마하고 자신의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딜런 패로가 터뜨린 폭탄의 파편들은 막지 못했다. 그 유탄들은 사방으로 튀었다. 미투 운동이 더해지면서 많은 여배우들이 앨런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급기야 2019년에는 자신과 계약한 아마존이 더이상의 제작을 거부하자 법정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돈으로 합의를 보기는 했으나, 거장 감독으로 추앙받던 앨런의 영화 경력은 완전히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전에 라디오를 듣는데, 아주 구슬픈 노래가 흘러나왔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렌스키의 아리아, '어디로 갔는가, 내 황금같은 청춘의 날들이여'였다. 우디 앨런이 듣는다면 정말 울어버릴 것 같은 노래다. 말년의 그가 내놓은 자서전은 출판사마다 출판을 거부했고, 겨우 어렵게 출판한 자서전은 동네북처럼 비난으로 얻어맞았다. 이제 그에게는 황금같은 날들은 가고 오욕과 모멸감이 가득한 노년의 날들만 남았을 뿐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앨런의 황금시대 영화 같다. 그는 맘껏 자신의 영화적 환상을 펼쳐보인다.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꿈같은 시대의 재현에 열광했고, 그에게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모든 황금같은 시간들에는 끝이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sonyclass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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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딱 이맘 때쯤이었던 것 같다. 11월 초, 아직은 가을이 남아있다 싶었는데 갑자기 추위가 몰아닥쳤다. 왜 그날 두터운 외투를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덜덜 떨면서 굿을 보러 갔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공연 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을 듣고 있었다. 강사 선생이 그날 수업을 끝내면서, 굿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한번 가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적굿이라면서, 만신의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만신과는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던지, 자신의 이름을 대면 대접도 괜찮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진적굿. 무당이 자신의 몸주신과 모시는 여러 신들에게 올리는 감사의 굿이다. 무당은 일반적으로 재갓집이라고 하는 자신의 고객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굿을 하는데, 이 진적굿은 무당 자신이 오직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굿이다. 나는 그 때까지 굿은 보기는 했어도, 진적굿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당 개인을 위한 굿이다 보니, 그 굿은 무당의 재갓집 신도들, 신딸과 신아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만 참석이 한정되어서 그런 면도 있었다.


  굿을 처음 본 것은 대학 시절, 종교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중간 보고서 과제가 타종교 체험을 해보고, 그걸 써오라는 것이었다. 마침, 운현궁에서 명성왕후 해원굿(한맺히고 원통한 것을 푸는 굿)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굿을 보러 갔었다. 정말이지 그 굿은... 내게는 진정한 문화 충격이었다. 타살거리('거리'는 연극의 '막'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굿은 여러 거리로 이루어지는데, 타살 거리는 돼지나 소를 제물로 바치는 굿이다)에서 커다란 돼지를 삼지창으로 세우는 것이며, 무당이 생고기를 씹어먹는 것은 놀라웠다. 온갖 화려한 무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춤을 추고, 공수를 내리는 것까지 모든 것이 흥미롭고 기이했다. 그 굿은 샤머니즘에 대한 내 관심의 시작점 같은 사건이었다.


  만신의 집은 인천에 있었다. 한국 전쟁 이후, 한강 이북의 강신무들이 대거 내려와서 정착한 곳이 인천과 부평, 그 근방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황해도 굿의 명맥을 있는 이들이었다. 내가 보기로 한 진적굿의 K만신은 황해도 굿의 대가인 김금화의 신딸로, 나름 이름있는 무당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커다란 솥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분주히 움직였다. 내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자, 꽤 나이든 여성이 굿을 보러 왔냐고 물었다. K 만신이었다. 만신은 풍채가 아주 좋았다. 뭐랄까, 목소리까지 걸걸해서 여장부 같았다. 나는 강사 선생의 이름을 대고, 그 소개로 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배고프지 않냐며 식사부터 하라고 했다.


  만신이 나를 데리고 2층에 올라가니 무척 큰 주방에서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만신은 주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좀 차려오라고 일러두고는, 나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안방에는 웬 중년 남자 하나가 드러누워서 자고 있었다.


  "뭔 잠을 이렇게 늘어지도록 잔다냐. 어여 일어나."


  남자는 턱이 떨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더니, 겨우 일어나 앉았다. 어제 밤새도록 굿을 뛰느라 그랬다면서 눙쳤다. 가만히 얼굴을 보니 낯이 익었다. 명성왕후 해원굿에서 본 박수 무당이었다. '아이구, 아재요, 여기서 또 보는구만요',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7, 8년이나 흘렀을까, 박수 아재는 그다지 늙지도 않은 것 같았다. 박수 아재가 방을 나가고나서 방에 앉아있으려니, 이런저런 음식들이 차려진 밥상이 들어왔다. 정말 강사 양반이 친분이 대단한 모양이네 싶었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터라 허기가 졌는데, 밥상이 꽤나 반갑게 느껴졌다. 밥을 얼마나 좀 먹었을까, 안방으로 손님들이 들어왔다. 만신에게 인사를 하러 온 젊은 남녀였는데, 아무래도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싶어서 밥상을 들고 나가려 했다. 그걸 보더니 만신은 그냥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 일가붙이인데, 이제 막 결혼해서 인사하러 온 거."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두 사람의 얼굴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만신은 그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남자는 자리를 뜨기 전에, 굿 잘 보고 가시라며 예의바르게 인사를 챙겼다.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밥상을 주방에 갖다주고는 굿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20평 남짓한, 그리 크지 않은 굿당에는 사람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가득 찼다. 나는 나이든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안있어, 만신이 무복을 차려입고 와서 굿을 시작했다. 신이 실리자, 만신의 모습은 아까 내가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었다. 큰소리로 사설(굿에서 무당이 읊는 이야기, 각각의 거리마다 내용이 달라진다)을 쏟아내며, 춤을 추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구에 자리한 가구를 열더니, 무복들을 모두 꺼냈다. 나는 들어올 때 본 그것이 신발장인 줄 알았는데, 무복이 들어있던 옷장이었다. 무슨 화수분같이 엄청난 무복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옷들은 만신이 무당으로 살아온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신은 곧이어 제단앞에서 빙빙 돌았다. 무당이 도는 방향은 반시계 방향으로 그것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신의 시간으로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만신은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춤을 추라고 권유했는데, 내 옆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곧 그들이 그냥 평범한 동네 할머니들이 아니라, 만신의 동료였던 은퇴한 무당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근처에 앉은 중년 남자는 나와는 달리 그들과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나는 춤을 출 생각도 없었고, 그 자리가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리를 입구 쪽으로 옮겨앉았는데, 얼마 안있어 한무리의 사람들이 입구로 쏟아져 들어왔다. 녹음기, 캠코더, 사진기를 들고 온 사람들은 굿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관련학과의 학생들, 사진가들이었다. 비좁은 굿당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런 큰굿에는 늘 그런 사람들로 붐비곤 했다.


  탁한 공기 때문인지 머리가 아파왔다. 바람을 쐬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철제 기름통에서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밖은 어둠이 가득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굿은 밤새도록 이어질 터였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방인. 나는 내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라고 느꼈다. 나는 만신이 모시는 그 많은 신들을 믿는 재갓집 사람도 아니었고, 또 무교()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굿당에서 그렇게 흥겹게 춤을 추던 구경꾼도 되지 못했다. 굿의 그 무엇이 그토록 꽤나 긴 시간동안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던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기이한 매혹이었다. 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 매혹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 세계는 관찰자나 연구자의 시선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서만 알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신앙의 교리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대문을 나섰다. 골목길에는 들어올 때 보았던 붕어빵 장수가 그때까지 있었다.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졸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붕어빵들의 수많은 눈들이 왠지 외롭게 보였다. '천원에 열 개'라고 적힌 판지가 바람에 펄럭였다. 겨울로 들어가던 초입의 11월, 오래전 어느 해의 그 굿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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