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늦은 새벽에 KTV에서 방영한 신상옥 감독의 '자매의 화원(1959)'을 보았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 자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었다. 최은희 씨가 분한 큰딸 정희는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그걸 갚기 위해 요정 마담으로 일하게 된다. 그런데 그 일자리를 주선한 사람은 의사인 정희 아버지 남박사의 도움으로 병을 고치게 된 방사장(김승호 분)이다. 방사장은 남모르게 정희에 대한 연심을 품고 있다. 정희의 동생 명희가 양장점 낸다며 돈을 끌어다 쓰는 과정에서 생긴 큰 빚도 해결해 주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정희에게 청혼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든 의문은 그거였다. 아니, 방사장은 왜 사랑하는 여자한테 자신이 운영하는 요정 마담 일을 하게 하는 거지?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세상 험한 것 좀 겪어 보고,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몸소 느껴 보라는 건가? 그런데 김승호가 분한 방사장의 캐릭터는 그렇게 생각이 복잡하고 의뭉스러운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정희에 대한 순정을 가진 인물인데, 아무튼 정희도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음에도 방사장이 가진 부의 배경에 흔들린다. 드라마 '청춘의 덫(1999)'의 동우(이종원 분)도 돈이 가진 그 힘에 목말라 하고, 그것을 가지기를 열망한다.
"넌 내가 부모 형제도 귀찮아 하는 놈인 줄 알겠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 평생 죽으라고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 염증나."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주의 딸이 그를 사랑하게 되자, 동우는 어려운 시절에 만나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윤희(심은하 분)에게서 매몰차게 돌아선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를 이어주었던 딸 혜림이가 사고로 죽자 윤희는 복수의 칼날을 간다. 제작사인 SBS 홈페이지의 간략한 드라마 소개는 이렇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 복수를 꿈꾸는 한 여인의 절규에 관한 드라마'
요새 케이블 채널에서 이 드라마가 다시 방영되고 있다. 돌리다 보면, 심은하가 맨날 울고 있는 장면이다. 아직 초반부라 심은하가 연기한 윤희가 독기를 품으려면 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다시 '청춘의 덫'을 보다 보면 그렇다. 이종원이 연기한 동우가 그렇게 나쁜 놈인가? 물론 딸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도 윤희가 자기를 붙잡으려고 수를 쓴다고 생각해서 모른 척 한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동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이미 죽었고 자신과 윤희의 관계는 끝났으니, 그냥 자신이 갈 길 가게 놓아주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지독한 가난의 배경을 뼛속 깊이 혐오하고 있으며,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쓴다. 동우는 윤희의 한결같은 사랑도 거추장스럽게 느낀다. 자신과 부모 형제, 좀 잘 먹고 남들이 우러러 보게끔 살아보겠다는 욕망이 잘못된 것인가? 동우는 부에 대한 욕망으로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런 그를 윤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여기며, 동우 같은 사람이 잘 되면 안된다면서 그 유명한 대사를 쏟아낸다.
"당신, 부셔버리겠어."
'부숴버리겠어'가 맞춤법에 맞지만, 이 대사는 그냥 그대로 굳어져서 드라마가 끝난지 이십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수없이 회자되었다. 동우를 산산조각 내기 위해 윤희는 자신이 모시는 상사 영국(전광렬 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영국'이란 인물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온갖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회사의 후계자로 이제 막 정신줄 잡고 살려는 인물이다. 영국도 윤희를 자신이 정착할 마지막 여자로 여기고 청혼한다. 윤희의 복수극은 착착 진행되어간다. 영국의 여동생 영주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동우에게 윤희는 견딜 수 없는 존재다. 대체 이 막장 멜로 복수극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당시 시청자들의 심장은 쫄깃해지다 못해 바스라질 지경이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수요일 저녁에 맞붙은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 초반부 저조한 시청률로 밀렸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화제가 되면서 나중에는 50%가 넘는 초대박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우 역의 이종원은 결혼을 앞두고 바쁘다는 이유로 원래 전광렬이 맡은 영국 역의 제안을 고사했다. 그러나 동우 역을 맡을 배우가 마땅하지 않자 나중에 합류했고, 그에게 이 드라마는 '젊은이의 양지(1995)'와 더불어 인생작으로 남았다. 얼마나 이 드라마의 동우 역으로 미움을 받았는지, 지방 촬영가서 식당에서 바가지로 뿌리는 소금을 뒤집어 쓰고 내쫓김을 당했다는 일화도 말한 적이 있다.
작가 김수현이 1978년에 '청춘의 덫'을 썼을 때, 이 드라마는 당시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기종영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김수현은 동명의 소설로 못다한 이야기를 썼고, 이듬해인 1979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보란듯이 18만명에 이르는 관객동원을 이뤄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았던 것일까? 1999년에 드라마 리메이크 소식이 알려지자 그 구식 드라마의 성공을 점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그 때 보면서, 그 드라마의 이야기가 참 '올드'하다고 느꼈었다. 당시의 시청자들에게도 드라마의 인물들과 줄거리가 가진 설득력이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 이 드라마는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아마도 '심은하'라는 배우의 열연이 가장 큰 부분으로 여겨진다. 심은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 드라마에 쏟아부었다. 촬영 끝나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쓰러질 것 같았다고 할 정도로 연기에 몰입했고, 드라마에서 딸인 혜림이 죽었을 때나 동우에 대한 증오를 쏟아낼 때 신들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고백했다(1999년 3월 중앙일보 인터뷰 참조). 드라마 속에서 윤희가 입고 나온 의상도 화제였다. 김수현의 2000년 드라마 '불꽃'에서 이영애가 보여준 이른바 '청담동 며느리 룩'을 완성한 디자이너 지춘희가 윤희가 입은 '비서 룩'을 선보였다. 드라마 보면서도, 아니 가난한 비서가 무슨 옷은 죄다 부티 좔좔 흐르는 옷들만 입고 나오냐 싶기는 했다. 게다가 심은하가 단정하게 머리 묶을 때 쓰는 곱창 머리끈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직도 이 드라마의 패션을 언급하는 이들도 많다.
배우 정영숙이 맡은 영국 어머니 이여사도 화려한 패션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재벌 회장의 첩으로 온갖 돈의 위세를 부리지만, 정작 자신이 낳은 자식들에게는 그 어떤 사랑과 인정도 받지 못한다. 이여사의 젊은 날은 어쩌면 돈에 대한 욕망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동우와 판박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회장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유령같은 존재로 살아온 이여사의 삶은 그 욕망의 허상을 보여준다. 이여사가 오직 생기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은 가정부를 부를 때이다. '아줌마', 라고 부르면, '네, 사모님' 하면서 언제든 달려오는 가정부야말로 이여사가 이루어낸 삶의 유일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여사의 대척점에 본부인 한여사(김용림 분)가 있다. 한여사에게는 첩이 낳은 자식들이기는 하나 자신을 존경하며 따르는 영국과 영주가 있다. 그러나 정실부인이라는 허울 뿐인 호칭을 가지고 재벌가의 안방 마님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 한여사라고 해서 녹록할 리가 없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그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는 한여사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박제된 삶. 이여사나 한여사 모두 돈이 주는 그 모든 것에 자신의 삶을 묶인 이들일 뿐이다. 이렇게 드라마 '청춘의 덫'에는 동우가 젊음을 내던져 얻고 싶었던 부의 끝에는 그런 여성들도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성인지 감수성이 바닥이다 못해 성희롱에 가까운 노상무 영국의 대사나 행동도 문제다. 여성 편력이 심한, 젊은 날을 방탕하게 보낸 인물이라고는 하나, 영국이 비서 윤희에게 하는 말들은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의 시청자들이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그 모든 것을 이십 년 전에는 당연했다고 용인하기 어렵다. 다만, 그것이 드라마에서 가능했던 이유도 역시 '돈'의 위력 때문이다. 누가 회사의 차기 후계자에게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그런 돈의 힘을 바탕으로 영국은 정제되지 않은 언사를 윤희에게 쏟아내고, 윤희도 참아낸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상무님 신발이라도 되어드리겠어요."
영국의 청혼을 받아들이며, 결국 윤희는 그렇게 말한다. 이 '신발' 대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처음에는 복수의 도구로 접근했던 남자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낀 여자의 지극한 자기 반성을 보여주는 말치고는 과하다. 어쨌든 윤희는 자신의 청춘을 옥죄었던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 재벌가의 마님이라는 새로운 삶으로 진입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청춘의 '덫'에서 벗어난 인물인지도 모른다.
진실로 영주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결국 동우의 야망은 부서지고 만다. 당시의 시청자들에게는 속이 시원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동우의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자유를 맘껏 누리다가 결국은 그 열기에 의해 밀랍 날개가 녹으면서 추락한 신화 속의 이카루스처럼 동우의 꿈은 좌절된다. 거의 손 안에 들어왔다고 믿었던 부와 사랑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쓸쓸한 야망의 뒤안길에 동우는 홀로 서있다.
동우는 정말 나쁜 놈인가? 그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1999년에도 그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봐도 동우는 나쁜 남자 맞다. 그러나 세월의 힘일까? 나는 동우가 밉기 보다는 그저 가엾다. 동우의 야망은 좌절되었으므로 자신의 청춘을 내던져 얻고자 했던 것의 허망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 허망함에 대해 말할 그 무엇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그것에 대해 관조할 수 있는 약간의 지혜를 나이를 먹으면서 터득했을 뿐이다. 그렇게 드라마 '청춘의 덫'은 헤어나올 수 없는 야망에 자신을 던져버린 한 남자의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려낸다.
*사진 출처: s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