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마흔이 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구. 그러니 얼른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야 해."


  유키코(타나카 키누요 분)는 마흔 문턱에 접어들었다. 동생처럼 아끼는 쿄코(카가와 쿄코 분)에게 유키코는 그렇게 충고한다. 미혼모로 어린 아들 하루오를 키우고 있는 유키코는 쿄코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 바란다. 유키코는 술집 마담으로 일하며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비슷한 처지였던 친구 시즈에는 돈 많은 남자의 첩으로 들어앉았다. 어디 괜찮은 남자라도 있으면 마담일 그만 두고 의탁이라도 하련만, 주변에 꼬이는 이들은 죄다 글렀다. 후원자였던 후지무라는 사업이 망한 후 가끔 용돈을 얻기 위해 유키코를 찾아온다. 젊은 건달과 중년의 느물거리는 사업가는 유키코를 욕망의 대상으로 볼 뿐이다. 그런 유키코에게 친구 시즈에가 소개해준 부유한 지주의 아들 이시카와가 나타난다. 여자 나이 마흔, 유키코의 인생에 기회가 온 것일까?

  1951년이면 일본은 패전 후 이제 6년이 지났을 뿐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긴자 화장(Ginza Cosmetics, 1951)'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도쿄의 거리에서 전후의 상흔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도입부, 하루오는 혼자 보내는 낮시간을 도심의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하루오가 지나는 거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유키코가 이시카와에게 안내하는 도쿄 시내는 빌딩이 공사 중이며, 번화한 상점가는 인파로 붐빈다. 유키코가 일하는 술집 '벨 아미(Bel Ami)'의 손님들은 음주와 여흥을 즐긴다. 거기에는 여종업원들과의 '외박'이라는 매춘도 슬쩍 끼워져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속 여성들은 대개가 불운한 처지에 놓여 있다. '긴자 화장'에서 유키코는 미혼모라는 열악한 사회적 지위에 자리한다. 쿄코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어쩔 수 없이 화류계로 흘러 들었다. '돈'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유키코는 술집 여주인으로부터 술집이 팔릴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술집 운영 때문에 만난 중년의 사업가는 유키코에게 대놓고 매춘을 제안한다. 유키코는 단호하게 뿌리친다. 유키코가 그런 불쾌한 경험으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친구 시즈에는 돈 많은 남자의 첩이 됨으로써 화류계 생활을 끝냈다. 쿄코가 유키코의 과거였다면, 시즈에는 유키코가 다다를 가까운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전쟁이 특히 여성의 삶에 가하는 엄청난 압력과 균열은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아내로서, 여자로서(妻として女として, 1961)'에서 긴자의 술집 마담 미호(타카미네 히데코 분)는 유부남 대학 교수 케이지로와 오랜 불륜 관계에 있다. 두 사람은 전쟁 중에 만나서 아이를 두게 되었지만, 케이지로는 아이들을 데려가 아내 케이코가 키우게 한다. 미호는 사랑도, 아이들도 품을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살아왔다. 미호는 긴자의 술집을 목숨처럼 여긴다. 그런데 술집을 소유한 케이코가 그걸 처분하려고 하자 해묵은 갈등이 폭발한다. 이 영화의 미호처럼 화류계는 전후 경제적으로 취약한 하층 계급 여성들이 쉽게 진입하는 생존의 방편이었다.

  결혼을 통해 정상적인 가족 제도의 틀에 안착하고 싶다는 유키코의 소망은 이시카와와의 만남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유키코에게 찾아온 모처럼의 기회는 아들 하루오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날아가 버린다. 행운은 젊고 아름다운 쿄코에게 돌아간다. 유키코는 자신이 애송하는 싯구처럼 하늘의 북극성이 되어 자신을 지켜줄 남자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는 이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신에 아들 하루오가 유키코의 유일한 희망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긴자로 향하는 유키코의 발걸음은 날아갈듯 가볍다. 비록 멸시받는 직업이지만, 긴자의 거리에는 그곳에 의탁한 무수한 이들의 삶이 별처럼 흐르고 있다. 나루세 미키오는 화류계 여성의 고단한 삶과 그 내밀한 갈망을 전후 도쿄의 풍경 속에 펼쳐놓는다. '긴자 화장'은 나루세 미키오가 이후에 내놓을 여성 영화의 원형(原型)처럼 느껴진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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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의 외딴 시골 마을, 막달레나의 어린 아들 헤수스는 갑작스럽게 작별을 고한다. 헤수스는 동네 친구와 함께 멕시코 북부로 향한다. 석 달 후, 헤수스와 동행한 친구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막달레나는 이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아들의 생사를 알아내야만 한다. 북부 국경 지대, 실종자 수색 센터에서 막달레나는 아들의 불에 탄 가방을 확인한다. 담당 공무원은 막달레나에게 아들의 사망을 인정하라며 서류를 내민다. 막달레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아들이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아들을 찾는 막달레나의 고통스런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헤수스와 동네 친구가 왜 떠났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2006년, 칼데론 정부가 주도한 멕시코의 마약 전쟁은 멕시코 전체를 폭력과 범죄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약 카르텔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은 초기의 목적과는 달리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정부의 공격을 피해 카르텔들은 공권력이 취약한 지방으로 침투했다. 북부에 집중되어 있었던 마약 카르텔들은 멕시코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와중에 무수한 민간인들이 죽었으며, 구조적인 빈곤과 폭력은 더욱 심화되었다. 어린 청소년과 청년들은 갱단들의 조직 확장 과정에서 주요한 목표가 되었다. 마약 전쟁은 처음엔 멕시코 정부와 마약 카르텔과의 대결이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갱단들의 치열한 세력 다툼 속에 민간인 희생이 커지는 양상으로 고착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난한 멕시코인들에게 미국행은 생존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막달레나의 아들 헤수스도 그렇게 북쪽을 향해 떠났다.

  영화는 막달레나의 눈을 통해 국경 지대 실종자 센터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곳은 마치 거대한 시체 안치소 같다. 컨테이너에는 시신이 담긴 검정색 Body Bag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가족의 행방을 찾는 이들이 길다란 줄을 이루며 기다린다. 담당 공무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냉담하게 그들을 대한다. 그곳에서 '실종'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국가 권력은 그저 사후 수습에만 급급한 무기력한 조직체로 비춰진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막달레나는 아들을 찾아나선다. 막달레나는 아들과 같은 버스를 탔던 남자가 살아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남자가 살고 있는 마을로 향하는 막달레나. 미국에서 이제 막 추방된 청년 미구엘은 동행이 되어준다. 미구엘은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막상 도착해 보니, 미구엘의 집은 불탔으며 어머니의 행방은 알 수 없다. 미구엘은 절망한다. 고향은 갱단이 지배하는 유령 마을이 되어버렸다.

  감독 페르난다 발데즈(Fernanda Valadez)는 막달레나의 여정에 초자연적인 공포 분위기를 덧입힌다. 미구엘과 함께 걷는 들판, 남자의 마을에 가기 위해 건너는 호수, 인적이 드문 멕시코 시골의 풍광에는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마침내 막달레나가 만난 원주민 남자는 어렵게 입을 뗀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남자는 가족이 통역을 해주고, 그것이 영화의 자막으로 뜬다. 그런데 그가 갱단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건지게 된 과정을 말할 때는 그 어떤 자막도 나오지 않는다. '악마'들의 행위로 묘사된 무시무시한 폭력과 살상의 이미지는 언어가 없어도 직관적으로 인식된다.

  영화의 마지막, 막달레나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한다. 분명 아들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막달레나는 자신이 알던 아들의 모습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의미에서 막달레나는 아들을 잃었다. 영화 'Identifying Features(2019)'는 오늘날 멕시코에 만연한 구조적인 폭력의 실상을 고발한다. 공권력의 부재 속에 하층민들은 죽거나 다치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운 좋게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삶. 막달레나에게 닥친 비극은 마약과의 전쟁으로 시작된 죽음의 긴 행렬이 여전히 멕시코 국경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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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바라 로든의 역작, Wanda(1970)

  여자는 남편과 헤어져 여동생의 집 소파에 대책없이 앉아있다. 이혼 법정에서 두말없이 이혼에 동의하고 아이들 양육권도 포기한다. 봉제 공장에서는 남들보다 느리게 일한다고 해고당한다. 시간이나 때우려고 영화관에 갔는데, 잠깐 잠든 사이 지갑을 도둑맞았다. 화장실 좀 쓰려고 늦은 밤에 들어간 술집, 바텐더는 여자를 내쫓으려고 안달이다. 그런데 여자가 바텐더로 알고 있는 남자는 이제 막 진짜 바텐더를 죽인 강도 살인범이다. 여자가 골칫덩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데리고 다닌다. 영화의 제목 'Wanda'는 이 여자의 이름이다.

  비운의 여성 감독 Barbara Loden의 유일한 장편 연출작인 영화 'Wanda(1970)'는 매우 기괴한 느낌을 준다. 여자 주인공은 무기력하고, 삶에의 의지도 없고, 자존감도 낮다. 완다의 여정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지위의 여성이 어떻게 착취와 범죄에 노출되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같다. 완다는 먹을 것, 잘 곳 때문에 아무 남자에게 자신을 의탁한다. 남자들은 완다를 욕정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만 볼 뿐이다. 강도 살인범 노먼은 완다에게 모욕을 주며 복종을 요구한다. 급기야 완다는 노먼의 은행 강도 범죄 행각에 마지못해 동참하며 공범이 된다.

  배우였던 로든은 이 영화에서 완다 역을 맡았다. 영화 속 완다가 보여주는 불안하고 무기력한 모습에는 바바라 로든 자신이 겪었던 정서적인 어려움이 반영되어 있다. 'Wanda'는 어떤 면에서 존 카사베츠의 'A Woman Under the Influence(1974)'와 일맥상통한다. 카사베츠는 하층 계급 여성의 정신적 불안정성이 야기한 알콜중독을 보여준다. 그보다 선구적 초상으로서 로든은 학대와 착취,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불안한 여성을 그려낸다. 완다의 음울하고 고통스러운 몰락은 실제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낸 느낌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에게 'Wanda'는 기분 나쁜 공포 영화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최악의 여성 캐릭터로 각인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날것 그대로의 진실이 들어있다. 완다의 정서적인 문제는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결국 가정 바깥으로 밀려난 이 불행한 여성은 사회의 맨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로든의 개인적 경험과 결합한 완다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Wanda'는 어려운 복원 과정을 거쳐 2010년에야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다. 48살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뜬 로든은 복원된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찍힌 'a film by Barbara Loden'을 그 누구보다도 기뻐할 듯하다.
  

2. 의외로 잘 뽑아낸 태국 영화, Happy Old Year(2019)

  이제 막 스웨덴 유학에서 돌아온 진은 엄마와 오빠를 설득해 집정리에 나선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진은 살고 있는 집의 1층을 작업실로 쓸 생각이다. 오빠는 흔쾌히 진의 뜻에 따라주지만, 엄마는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며 반대한다.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의 '정리 대작전'이 시작된다. 진은 집안 대부분의 물건을 버리기로 생각하고 검정색 쓰레기 봉투에 과감히 넣어 버린다. 하지만 진은 곧 그 많은 물건을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과연 진은 무사히 집정리를 마치고, 그토록 꿈꾸는 작업실을 가질 수 있을까...

  '정리'에 대한 책이나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그 핵심이 '버리는 기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억'과 같은 감정적 가치가 부여된 물건이라면 그걸 버리는 건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된다. 영화 속 진이 마주한 혼란과 괴로움도 거기에 있다. 어떤 면에서 진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진은 자신이 냉정하게 내친 남자 친구 아임의 카메라,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피아노를 두고 고심한다.

  어떻게든 그 물건들을 좋은 방식으로 처리해서 산뜻한 마음으로 새출발을 하고 싶다, 고 진은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진의 바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간다. 카메라를 돌려주려고 다시 만난 전남친과는 복잡한 감정의 파고를 겪는다. 진이 아버지를 잊기 위해 팔아버린 피아노 때문에 엄마는 큰 상처를 받는다. 엄마에게 그 피아노는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진의 과거는 정리되지 않으며, 그 모든 기억과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없다.

  나와폰 탐롱라타라닛(Nawapol Thamrongrattanarit)은 진의 '물건 버리기 여정'을 통해 관계와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진은 자신이 바라던대로 화이트톤의 미니멀리즘으로 정돈된 새 작업실에 앉아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진은 물건으로 꽉 차있던 원래의 공간을 떠올린다. 거칠고 서툴게 밀쳐낸 과거의 추억과 그 흔적은 여전히 진의 마음에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정리에 대한 여러 조언들이 각각의 챕터들을 이끌어 가는 흥미로운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정리의 비법에도 불구하고, 다소 낯선 이 태국 영화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드러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crite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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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드라마에 스며든 소련의 변화: 두 사람을 위한 기차역(Вокзал для двоих, Station for Two, 1983)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복역중인 남자는 하룻밤 동안의 짧은 외출을 허락받는다. 간수는 남자의 아내가 근처 마을로 찾아와서 기다린다고 알려준다. 눈길을 헤치며 남자는 아내를 만나러 마을로 향한다. 남자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혹독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사형수 플라톤은 어두운 밤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의 기억 속에는 잊을 수 없는 한 여자가 있다. 엘다 라자노프(Eldar Ryazanov) 감독의 '두 사람을 위한 기차역(Station for Two, 1983)'에는 중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피아니스트인 플라톤(올레그 바실라시빌리 분)은 병중의 부친을 방문하기 위해 기차 여행중이다. 중간 정차역에서 잠깐 점심을 먹기 위해 내린 그는 식당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일어선다. 하지만 웨이트리스 베라(루드밀라 구르첸코 분)는 음식값을 내라며 플라톤을 채근한다. 둘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플라톤이 타야할 기차는 떠나버린다. 플라톤은 하는 수 없이 다음 기차를 기다린다. 역에는 베라의 애인 안드레이가 운전하는 기차가 도착한다. 안드레이는 멜론 상자를 봐달라고 플라톤에게 부탁하면서 담보로 플라톤의 여권을 가져가 버린다. 안드레이가 돌아올 때까지 플라톤은 이 작은 도시에서 이틀을 보내야 한다. 신분을 증명할 여권이 없으면 숙박도 할 수 없다. 미안함을 느낀 베라는 플라톤이 머물 곳을 함께 찾아보는데...

  엘다 라자노프 감독은 코미디 영화에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그의 로맨틱 코미디는 소련 관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운명의 아이러니(The Irony of Fate, 1975)', '직장 로맨스(Office Romance, 1977)'의 연이은 성공으로 라자노프 감독은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1983년작인 '두 사람을 위한 기차역'은 사랑에 대한 라자노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앞서 제작한 두 개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좀 다른 결의 분위기를 지닌다. 남녀 주인공의 나이는 중년에 접어들었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베라는 가난한 웨이트리스이며, 플라톤은 감옥행을 앞둔 피아니스트이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에서 곤경에 처해 있다.

  플라톤은 시골 웨이트리스 베라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 보게 된다. 여자의 남편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고, 애인이라는 작자는 푼돈으로 여자를 지배하려고 한다. 여자의 곁에는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며 존중해주는 그 누군가가 없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처지는 어떤가?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먹고 사는 일은 버겁다. 여기저기 돈을 벌기 위해 연주며 녹음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는 과실치사 교통사고를 낸 아내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다. 유명한 방송인인 아내는 곤경에서 벗어나자 남편을 외면한다. 그런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에서 플라톤과 베라의 사랑이 시작된다.

  상처입은 중년 남녀의 가슴 짠한 사랑 이야기.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40년 전의 이 소련 영화는 그다지 큰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을 위한 역'에는 당시 소련 사회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1982년, 오랫동안 소련을 강권으로 통치한 브레즈네프가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에 취임했다.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와는 달리 다소 유화적인 정책을 펼쳤다. 영화 속에서 베라의 친구는 새로 장만한 비디오 기기를 자랑한다. 친구가 보는 것은 러시아어로 더빙된 모잠비크 가수의 공연이다. 베라와 플라톤은 안드레이로부터 넘겨받은 멜론을 장터에 내다파는데, 이 시장의 풍경도 꽤나 활력이 넘친다. 그러한 시장은 집단 농장과 계획 경제 시스템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행위, 이른바 '제 2 경제(second economy)'의 영역에 자리한다. 1980년대는 소련의 그러한 문화 경제적인 변화가 점차 가속화되는 시기였다.

  '서구의 문물'과 '돈에 대한 감각'이 서서히 소련인들의 마음을 차지했다. 사랑의 방식과 그 가치도 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베라와 플라톤의 사랑은 계층과 물질적 욕망 너머에 자리한다. 영화의 마지막, 플라톤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아내가 아닌 베라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개봉 첫해에 3580만 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어떤 면에서 구시대적 감성의 이 영화는 당시 소련인들의 마음을 강타했다. 가망없는 사랑이지만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체제에 대한 소련인들의 믿음도 그러했을까? 엘다 라자노프는 멜로 드라마의 틀 안에 흔들리는 소련 사회의 내밀한 풍경을 담아낸다.


*사진 출처: autogear.ru



**엘다 라자노프 감독의 영화 리뷰

차 조심!(Берегись автомобиля, Beware of the Car, 1966)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beware-of-car-1966.html

어느 이태리인들의 러시아 대모험(Невероятные приключения итальянцев в России, Unbelievable Adventures of Italians in Russia, 197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unbelievable-adventures-of-italians-in.html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егким паром!, The Irony of Fate, 1975)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blog-post.html

직장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 1977)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office-romance-1977.html

잔인한 로맨스(Жестокий романс, A Cruel Romance, 198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19-cruel-romance-19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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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도쿄의 시나가와(品川) 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온다. 도쿠가와 막부 시기, 시나가와는 에도의 유명한 홍등가였다. 그러던 곳이 1956년, 매춘금지법이 시행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카와시마 유조 감독의 '막말태양전(Sun in the Last Days of the Shogunate, 1957)'은 시간을 거슬러 1862년을 배경으로 한다. 쇼군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시나가와의 어느 유곽(遊廓), 사헤이지(프랭키 사카이 분) 일행은 게이샤들을 불러 진탕 퍼마시고 논다. 술값을 내지못한 사헤이지는 외상을 갚을 때까지 그곳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빌붙어 지낸다. 그런데 이곳에는 사헤이지 말고 또 다른 외상 손님들이 진을 치고 있다. 타카스기(이시하라 유지로 분)와 동료 사무라이들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였을까...

  카와시마 유조(川島雄三) 감독은 4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지병이 있었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우리가 루게릭병으로 알고 있는 병이다. 그는 버는 돈의 대부분을 술값과 유흥으로 탕진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사헤이지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감독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헤이지가 대책없이 외상으로 술을 마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결핵으로 고생하는 사헤이지는 겨울 동안 시나가와의 바다 공기를 마시며 요양차 눌러 앉을 심산이다. 당시로서는 불치병에 걸렸지만, 사헤이지에게서는 결코 그늘진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놀라운 기지와 순발력, 유머 감각으로 사헤이지는 술집의 골치아픈 대소사를 해결해주며 환영받는 객식구가 된다.

  영화에서 술집 이곳저곳을 누비는 사헤이지의 민첩한 몸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병자가 맞나 싶다. 카와시마 유조는 사헤이지가 술집의 모든 공간에서 주도권을 갖고 움직이도록 만든다. 가진 것도 없고 몸도 아프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배포가 있다. 그러므로 타카스기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타카스기 일행은 영국 공사관을 폭파하려고 일을 꾸미는 중이다. 사헤이지는 그들로부터 막부의 스파이로 오인받는다. 타카스기가 칼을 들이대자 사헤이지는 한번 죽여보라, 고 맞선다. 평민 사헤이지는 그렇게 사무라이의 칼과 위세를 비웃는다.

  기막힌 민첩성과 친화력을 지닌 사헤이지와 대비되는 존재들은 타카스기와 그 일행 사무라이들이다. 타카스기는 그저 방구석에 누워 있거나 노래를 부르며, 동료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칼 뽑는 시늉을 할 뿐이다. 이 초슈번(長州藩)의 무사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존황양이(尊皇攘夷)를 부르짖으며 막부타도에 앞장선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외국 공사관 폭파는 그들이 세운 계획 가운데 하나이다. 1862년 12월 2일, 실제로 초슈번의 무사들은 시나가와에 있는 영국 공사관을 폭파시켰다. 영화 속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는 실존 인물이었다.

  카와시마 유조는 1950년대의 일본과 혼란기의 막부 말기를 기묘하게 대비시킨다. 천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던 타카스기(그는 메이지 유신을 앞두고 죽었다)와 같은 이들은 결국 메이지 유신을 이루어 내었다. 일본에서 미군정이 끝난 때는 1952년, 일본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세의 흔적을 하루빨리 지우고 싶어했다. 패전 이후에 숨을 죽이고 있었던 보수 우익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변혁의 시대', 영화 속 사헤이지와 타카스기가 살았던 그 시절은 감독이 통과하는 동시대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지배 계급과 정치인들은 권력과 대의명분을 두고 싸우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민초들의 삶은 언제나 고단하고 괴로울 따름이다. 술집에 진 빚 때문에 매춘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게이샤는 몸값 치뤄주고 자신을 빼내어줄 남자를 기다린다. 도박꾼 남자는 딸을 술집에 팔아넘기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게이샤 하나를 두고 싸움을 벌인다. 신사(神社)의 축제에 온 저잣거리가 들썩인다. 영화 속 홍등가의 풍경은 애잔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카와시마 유조는 영화로 막부 말기의 세밀한 풍속화를 그려내는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사헤이지는 게이샤로부터 골치아픈 손님을 따돌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게이샤가 죽었다며 손님을 묘지로 안내한 사헤이지는 속임수가 들통나자 도망을 친다. 묘지로부터 해안길로 이어지는 탁 트인 그 길을 사헤이지는 신나게 달려간다. 원래 카와시마 유조는 사헤이지가 묘지를 지나 현대의 시나가와를 통과하는 것으로 찍으려 했다. 하지만 주연 배우 프랭키 사카이를 비롯해 촬영 스태프 대부분이 반대하자 뜻을 접었다(출처: ja.wikipedia.org). 혼란과 분열의 시대로부터의 탈주.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후대의 관객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헤이지의 도피에서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감지한다. 아마도 격변기의 시대와 병고를 뛰어넘고자 했던 또 한 사람은 이 영화를 만든 카와시마 유조 감독, 그 자신일 것이다.  



*사진 출처: odyssey3.exblog.jp



**카와시마 유조 감독의 영화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女は二度生まれる, Women Are Born Twice)'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5/women-are-born-twice-19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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