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때로 더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너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딸 로즈를 향해 이런 말을 쏟아내는 모랑 부인은 삶이 너무나도 괴롭다. 뉴욕 빈민 아파트의 삶, 거칠고 강압적인 남편, 철없는 딸과 아직 어린 아들, 모랑 부인은 그 삶에서 탈출을 꿈꾼다. 어디 모랑 부인뿐인가? 찌는듯한 무더위에 집안에 머물 수 없어서 죄다 밖에 나온 모랑 부인의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Ain't It Awful, the Heat?'로 이 놀라운 미국 오페라는 시작된다. 'Street Scene'은 쿠르트 바일(Kurt Weill, 1900-1950)이 미국 극작가 엘머 라이스가 쓴 동명의 희곡(퓰리처 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1947년에 만든 오페라 작품이다. 대본은 미국의 흑인 작가 랭스턴 휴즈가 맡았다.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음악극(Singspiel) '서푼 짜리 오페라(The Threepenny Opera, 1928)'로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인 그는 히틀러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1935년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는 자신이 이전부터 작업해온 'Singspiel(독일어로 된 음악극)'을 새롭게 갱신한다. 영어와 미국의 정서를 결합시킨 '미국 오페라(American Opera)'가 그것이다. '미국 오페라'라는 명칭은 쿠르트 바일이 붙인 이름이지만, 1935년에 미국의 작곡가 조지 거슈인이 만든 3막의 영어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가 그 앞에 자리하고 있다. 거슈인이 보여준 재즈와 오페라의 놀라운 결합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바일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독창적 형태의 미국식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오페라'라는 명칭을 쓰기는 하지만, 관객들은 'Street Scene'을 보면서 이것이 뮤지컬인가 오페라인가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바일은 기존의 서양 음악을 대표하는 오페라의 모든 문법에 도전한다. 영어로 쓰여진 대본에 현대 음악과 미국의 재즈, 블루스의 음률이 덧입혀진 노래가 흐른다. 주요 등장 인물만 30명이 넘고(총 50명에 이르는 등장 인물들이 나온다), 대사와 춤, 노래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내가 본 2018년의 영국 연출가 팀 머레이의 마드리드 왕립 극장(Madrid Teatro Real) 공연 버전은 세트도 독창적이다. 4층의 철골 구조 아파트 세트가 양쪽으로 갈라지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그 사이로 뉴욕의 화려한 빌딩숲이 펼쳐진다. 보는 내내 머릿속으로 프로덕션 비용을 헤아려 보게 된다. 

  작품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푹푹 찌는 무더위의 어느 날,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맨해튼 뒷골목 아파트에서 여자들은 더위를 견디려고 집 밖으로 나와 있다. 그들은 이웃들의 흉을 보며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랑 부인이 우유 배달부 생키와 바람난 것이 여자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프랭크 모랑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며 거친 언사를 쏟아낸다. 괴로운 모랑 부인은 과거의 꿈과 희망을 되새기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지만, 딸 로즈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아들 윌리는 심한 장난꾸러기이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착하고 성실한 샘은 로즈에게 구애하고, 두 사람은 빈민가를 떠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그러나 로즈의 아버지 프랭크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극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엘머 라이스는 이민자들의 꿈과 희망을 맨해튼 빈민가 아파트에 투사한다. 이태리 이민자 피오렌티노가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을 아이스크림으로 비유하며 주민들과 함께 부르는 1막의 노래는 흥겹다. 골라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아이스크림은 값싸고 달콤하지만, 현실의 하층 이민자로서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극 전체를 지배하는 숨 막히는 더위처럼 일상의 가난도 그들을 괴롭힌다.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샘은 변호사를, 로즈는 브로드웨이 스타를 꿈꾼다. 딸을 어렵게 예술 학교로 보내서 졸업시켰지만,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싱글맘 힐데브란트 가족. 그들이 떠난 아파트에는 곧 새로운 이민자 부부가 도착한다. 지저분한 뒷골목에서도 새 생명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뷰캐넌 부부는 산고 끝에 딸을 얻는다. 그런가 하면 예기치 못한 죽음도 있다. 'Street Scene'의 1920년대의 뉴욕 맨해튼은 가난한 이민자들의 역동성으로 가득찬 당시 미국의 축소판인 셈이다.

  이 극의 제목은 우리말로 '거리의 풍경'으로 번역되었다. 번역 제목이 뭔가 미진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가난과 더위에 포위된 최하층 주거지를 면도날로 자른듯한 단면을 보여주는 극에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 생각해 본다. 극 속에서 관리인 헨리가 양동이로 핏물을 하수구에 버리는 장면이 2번 나온다. 한 번은 출산 현장의 핏물, 또 한 번은 살인 현장의 핏물이다. 로즈에게는 선명한 핏빛 비극의 현장으로 기억되는 그 거리는 '수난의 거리'일 것이다. 엘머 라이스는 하층 이민자 가족의 비극을 통해 미국 현대사의 숨겨진 장면을 포착한다. 쿠르트 바일은 앨머 라이스가 잡아낸 그 장면들에 음악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덕분에 서구의 오랜 음악적 전통과 새로운 나라 미국의 정서가 만난 'Street Scene'은 미국 현대 음악사의 뛰어난 성취로 남게 되었다.



*사진 출처: naxosdirect.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956년은 소련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 해였다.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제 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스탈린을 비난한다. 스탈린은 1953년에 사망했으나 소련은 그 유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발언 이후 '해빙기(Khrushchev Thaw)'는 더욱 가속화 된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가운데 소련 국민들에게 사회, 문화적으로 폭넓은 자유가 허용되었다. 레오니드 루코프(Leonid Lukov) 감독의 '다른 운명(Разные судьбы, Different Fortunes, 1956)'은 그 해빙기의 초입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타냐를 중심으로 스툐파, 페쟈, 소냐, 고교 동창생 4명의 젊은 날을 그린다.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가에서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의 스툐파는 타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타냐는 페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스툐파는 실망하지만, 곧 자신의 길을 찾아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떠난다. 낮에는 제철 공장, 저녁에는 야간 대학에 다니며 스툐파는 열심히 살아간다. 타냐는 페쟈와 결혼한다. 그러나 학생 신분으로 경제력이 없는 페쟈에게 타냐는 곧 실망한다. 페쟈는 부업으로 택시 운전사 일까지 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꿈꾸는 타냐는 유명 작곡가 슈친과 사귀게 된다. 스툐파가 타냐를 마음에 둔 것을 알지만, 한결같이 스툐파를 좋아하는 소냐는 스툐파가 있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네 명의 서로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은 타냐이다. 타냐를 연기한 타티아나 필레츠카야의 싱그러운 젊음과 아름다움이 스크린 위로 넘실거린다. 아름답지만, 제멋대로이며, 분별력이 결여된 타냐는 사랑에 빠져 급하게 한 결혼에 곧 염증을 느낀다. 가난한 학생인 남편 페쟈는 집 구할 돈도 없다. 각자 부모의 집에 얹혀 사는 이 이상한 부부의 결혼 생활은 위기에 처한다. 아내가 중년의 부유한 작곡가와 내연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페쟈는 분노한 나머지 타냐의 뺨을 때린다. 이 부부는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다른 운명'에서 관객들은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행해지던 '자아비판'의 실제이다. 남편에게 뺨을 맞은 타냐는 학교의 공산당 위원회에 페쟈를 고발한다. 단상에는 사회를 맡은 당 소속 간부들이 자리하고, 청중들은 타냐와 페쟈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던진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가정의 문제는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타냐는 자신을 때린 페쟈를 비난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료 학생들은 페쟈가 왜 타냐를 때렸는지 궁금해 한다. 페쟈는 아내의 허물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타냐는 슈친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고, 결과적으로 그 자아비판은 타냐에 대한 공개적 비난으로 돌아온다.

  개인의 삶에 당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실체적 면모는 스툐파의 삶에서도 드러난다. 스툐파는 자신의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보다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제안하지만, 공장의 직속 상사들은 스툐파가 당돌하며 분수도 모르는 애송이라고 생각한다. 스툐파의 제안은 무시되고, 업무에서 배척당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런 스툐파를 구하는 것은 지역의 당 간부이다. 그는 스툐파가 가진 전문성과 참신성을 높게 평가하고, 스툐파는 곧 당의 인정을 받아 레닌그라드 연구소 강연을 맡게 된다. 열심히 삶을 개척해 나가는 스툐파에게 주어지는 행운, 도덕적으로 타락한 타냐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비난, 이렇듯 '다른 운명'에서 국가는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공산주의 이념에 맞는 바람직한 인민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원칙은 영화 '다른 운명'에서도 충실하게 재현된다. 그것은 서로 대립되는 성향을 가진 타냐와 소냐의 엇갈리는 운명으로 입증된다. 타냐의 엄마는 딸에게 넘치는 사랑을 퍼붓는다. 결혼을 했음에도 엄마의 보살핌 속에 살고 있는 타냐는 오직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와는 달리 한결같은 사랑으로 스툐파를 바라보는 소냐는 시베리아의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며, 결국 원하는 사랑을 쟁취한다. 스툐파는 페쟈를 통해 알게 된 타냐의 불륜에 실망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소냐가 가진 지조와 성실함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성장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타냐가 아닌 소냐였다. 타냐에게 매혹되었던 남자들은 모두 타냐를 떠난다.

  아름다움으로 빛나지만, 지극히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타냐는 영화의 마지막에 기차역에 홀로 서 있다. 타냐는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캐릭터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타냐가 지닌 무분별함,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타냐는 1950년대의 소련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었을 뿐이다. 타냐는 화면을 향해 관객을 응시하면서 묻는다.

  "나는 좋은 사람(good person)이 아닌가?"

  러시아의 관객들이 타냐의 물음에 연민과 공감을 갖고 바라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가가 강제한 바람직한 도덕 규범, 가치에서 벗어난 여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까지, 스크린 밖의 타냐는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레오니드 루코프 감독이 그려낸 '다른 운명'에는 그렇게 사회주의 국가에서 순탄치 못했던 삶을 살아간 여인의 초상이 담겨져 있다.  

 
*사진 출처: zen.yandex.ru   타냐 역의 타티아나 필레츠카야


** 어울리지 않는 불행한 부부 타냐와 페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글에는 영화 '밤의 충돌(Clash by Night, 1952)'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거친 바다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갈매기와 물개가 조업 중인 선박들 주변에 모여든다. 대형 그물에서 쏟아지는 생선들은 통조림 공장으로 이동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생선을 자동화 라인에서 분류한다. 마치 수산물 가공업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도입부를 가진 영화, 프리츠 랑 감독의 1952년작 '밤의 충돌(Clash by Night)'이다. 원작은 클로드 오데츠가 1941년에 발표한 동명의 희곡으로 브로드웨이 연극으로도 공연된 작품이었다.

  한가로운 몬테레이의 어촌 마을에 화려한 외모의 여성이 도착한다. 매(Mae)는 고향을 떠난지 10년 만에 돌아왔다. 높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여자는 영 그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자는 남동생 조의 집을 찾아간다. 조는 누나가 보낸 그간의 삶을 궁금해 한다. 매는 '꿈은 컸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었지'라는 말로 대신한다. 매와 알고 지냈던 마을의 순박한 어부 제리(폴 더글라스 분)는 매와 데이트를 시작한다. 동네 영화관의 영사 기사 얼(로버트 라이언 분)도 매를 좋아하게 되지만, 매는 얼의 불안하고 상스러운 면모를 경멸한다. 어떻게든 삶에 안착하고 싶었던 매는 제리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는 딸도 태어난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의 답답함에 지친 매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데...

  '밤의 충돌'은 프리츠 랑 감독의 후기작으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다. 당시에도 이 영화는 작품성 보다 다른 의미로 큰 화제가 되었다. 영화에서 조의 여자 친구로 나온 마릴린 먼로 때문이었다. 먼로는 누드로 찍은 화보 달력을 내놓았는데, 먼로를 취재하려고 촬영장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제작사 RKO는 몰려든 기자들을 내쫓는 것이 일이었고, 촬영장의 분위기도 어수선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먼로는 감독의 연출 지시는 무시하고 자신의 개인 연기 교사의 지시를 따랐으므로 프리츠 랑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주연 배우 바바라 스탠윅을 비롯해 폴 더글라스, 로버트 라이언은 집중력을 발휘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바바라 스탠윅 최고의 연기력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평범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야심많은 여자의 고통과 좌절을 보여준다. 주부의 일상을 견디는 것이 매에게는 갈수록 힘들게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얼에게 끌리고, 매는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한다. 프리츠 랑이 보여주는 이 멜로 드라마는 매우 현실적이며 절제되어 있다. 동시대의 감독 더글라스 서크가 화려함이 넘쳐나는 세트에 갇힌 중산층 여자의 멜로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과는 차별되는 점이다. 바바라 스탠윅은 어부 아내의 일상을 연기한다. 빨래를 널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기를 돌본다. 프리츠 랑은 어촌 마을의 선술집, 결혼 파티, 해수욕장을 보여줌으로써 일상적 풍경이 가진 사실성을 강조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프리츠 랑은 일반적 멜로 드라마 서사의 전복을 시도한다. '밤의 충돌'에서 매의 성격적 결함과 타락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은 남편 제리이다. 그는 착하고 나무랄 데 없는 가장이며, 아내에게 충실한 사람이다. 나쁜 남자에 의해 슬픔과 고통 속에 빠지는 멜로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과 바바라 스탠윅이 연기하는 매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 제리는 아내의 부정(不貞)에 분노해, 그 상대방인 얼을 죽이려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 가엾은 남자를 보면서 감정적으로 동요할 관객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 멜로 드라마의 여성 관객들을 소구
(求)하지 않는다. 멜로 드라마를 향유하는 주 관객층이 여성임을 상기한다면 의외의 점이다.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가 상영되는 당시 영화관 매표소는 여성 관객들로 미어터졌다.

  자신을 떠나게 해달라는 매의 간청에 제리는 외친다. '당신은 끔찍한(rotten) 여자야!' 그 여자, 매의 얼굴에서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의 요부 필리스가 얼핏 스쳐지나가는 것도 같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살인을 부추기는 악녀 필리스를 연기한 사람은 바바라 스탠윅이었다. 분명 '밤의 충돌'의 매는 나쁜 여자이지만, 엄마 역할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 매는 딸을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일이다. 가정을 버리려는 여자가 불륜남과 함께 떠나면서 자식을 데려간다는 것은. 결국 모성이 매를 잡아끈다. 제리는 아내를 용서하고, 여자는 다시 가정에 안착한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스탠윅이 연기한 또 다른 영화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 1937)'의 헌신적인 엄마 스텔라를 떠올리게 된다.

  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여자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가? 영화가 만들어진 1952년에 미국은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밖으로는 한국 전쟁을, 안으로는 매카시즘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이전에 비해 매우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2차 대전 중에 이루어진 여성의 사회 진출은 종전과 함께 다시 축소되었고, 여성들은 가정으로 복귀했다. 가정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가치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굳건해져 갔다. 매카시즘은 공식적으로 1954년에 종결되었지만, 그 여진은 195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의 헐리우드 영화들 속에서 그것이 미친 영향력을 분리해서 보는 일은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영화의 제목은 19세기 영국 시인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의 시 '도버 해변(Dover Beach)'에서 따왔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의 해변가에 서있는듯 하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폭풍우 속을 걸어간다. 관객들은 '밤의 충돌'에서 바바라 스탠윅의 치열한 연기와 함께 프리츠 랑이 보여주는 전복적 멜로의 서사를 발견하게 된다.  



*사진 출처: milibrary.com   배우 바바라 스탠윅과 로버트 라이언



*다음 글은 화요일에 올라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얼마 전부터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았다. 아주 힘을 꾹꾹 주어서 눌러야만 작동이 되곤 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새 리모컨을 사려고 했다. 그래도 전원부 버튼만 안되는 것인데 고칠 방법이 없나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고칠 방법을 알려주는 글들이 주르륵 뜬다. 고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버튼의 접점이 닳거나, 이물질로 인해서 생긴 문제이므로 리모컨 분해 후에 접점 부위를 손보면 된다. 이물질을 제거해도 잘 안되는 경우는 전도성이 있는 알미늄 포일을 접점에 작게 붙여주면 된다. 그렇게 리모컨은 다시 살아났다.

  아주 사소한 수리였지만, 그걸 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접점(接點)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기판이 정상이라고 해도 전류가 흐르지 않아서 작동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작고 보잘 것 없는 문제들이 일의 시작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글쓰기'의 경우에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제대로 된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말고 내일은 쓸 거라는 다짐,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영감, 그런 것들...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 수업'에서, 글을 쓰려는 이들이 마주하는 그런 근원적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사실 이 책을 오래전에 사두고 그냥 책장에 넣어두었던 것 같다. 작년 가을부터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예전에 샀던 글쓰기 책들을 가끔씩 들여다 보고 있다. 대개는 그냥 흘려버리는 그저그런 조언들이지만, 이 책은 좀 다른 면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작가'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디는 작가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매일, 일정량의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습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직업에 대해서 고민해 보라는 충고를 곁들인다.

  우선 글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대 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대에도 익숙하게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마다 자신이 더 선호하는 작업 시간대가 있기는 하다. 브랜디는 그것을 뛰어넘으라고 일러준다. 어느 시간대든 글을 쓸 수 있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비로소 작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를 얻게 된다. 꾸준함과 성실함이야말로 작가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브랜디는 그 다음의 작업으로 스스로의 글에 비평하는 자아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자아는 일단 내려두고, 무의식 속에 자리한 창조적인 글감들을 길러 올리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 웨이'였다. 글쓰기에 대해 다룬 그 책에서도 창작에서의 무의식의 중요성을 다룬다. 솔직히 그 책은 내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카메론의 그 책은 브랜디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많은 글쓰기 책들의 하나였다. 1934년에 이 책이 출간된 이후로, 글을 쓰려는 많은 이들이 브랜디의 조언을 따랐다.

  오늘 날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구식의 관점과 조언이 있기는 해도, 작가 지망생에게는 커다란 줄기에서는 귀담아 들어야할 이야기들이 있다. 글을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막 글쓰기에 들어선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거나, 쓰다가 그만 두기를 반복하는 이들은 자신의 글쓰기 버튼의 접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글쓰기 습관과 일과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 글쓰기의 전원 버튼을 눌러 보라.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은 마치 허름한 원조 맛집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친절한 고객 응대는 없다. 다만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음식이 차려질 뿐이다. 결국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작가됨', '글쓰기'의 본질이다.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써내는 습관과 자신의 내면에 갇혀 있는 이야기들을 해방시키는 것. 그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작가 수업'은 그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첫걸음, 그리고 그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원칙을 다룬다. 글을 쓰려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구판이 절판되고, 2018년에 다시 출간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아마도 '직장 로맨스'의 아나톨리에게는 루드밀라의 눈물을 보았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영화는 통계청 직원 아나톨리가 자신의 직장 동료들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통계청의 수장으로 오로지 일 밖에 모르는 구닥다리 옷차림의 노처녀 루드밀라, 무한긍정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톨리의 대학 동창 올가, 루드밀라의 비서로 멋내기가 취미인 패션 리더 베라, 마당발로 직장 내 대소사를 챙기는 노조위원장 슈라. 이런 이들과 함께 일하는 아나톨리는 바람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대학동창 유리가 부청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평온했던 직장에는 예기치 않은 로맨스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된다.

  엘다르 랴자노프(
Eldar Ryazanov) 감독의 1977년 영화 '직장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는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일벌레 직장 상사와 사랑에 빠지는 소심남 아나톨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가을 마라톤(Осенний марафон, 1979)'에서 흔들리는 가을 남자를 연기했던 올레그 바실라시빌리가 이 영화에서는 철벽남 유리로 나온다. 그는 돈에 쪼들리는 친구 아나톨리에게 새로 생긴 부서장 자리의 승진을 위해 상사 루드밀라를 꼬드겨 보라고 한다. 유리의 부임 축하 파티에서 아나톨리는 루드밀라에게 시와 노래를 불러보며 호감을 보여주려 애를 쓰지만, 루드밀라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런 루드밀라에게 아나톨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일벌레라며 모욕을 주고, 루드밀라는 당혹감 속에 자리를 뜬다. 다음 날, 사과를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아나톨리는 상처받은 루드밀라의 눈물을 보고 연민을 갖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직장 로맨스가 시작되는 가운데, 올가는 유리에 대해 가졌던 대학 시절의 연애 감정이 되살아나서 편지 공세를 시작한다. 이 어지러운 직장 로맨스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음악이다. 구 소련 시절 모스 필름 제작의 많은 영화에서 안드레이 페트로프의 음악은 독보적이었다.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1964)'와 '가을 마라톤(1979)'에서의 서정적인 선율은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직장 로맨스'에서도 페트로프의 눈부신 실력이 발휘된다. 랴자노프 감독이 가사를 쓴 여러 곡의 노래들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데, 모스크바의 가을 풍경과 매우 잘 어울린다. 주인공들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시적인 가사들은 랴자노프가 시인들의 시에서 인용한 구절들이 포함되었다. 그 노래들이 흐르는 '직장 로맨스'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는 1977년의 모스크바,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풍속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직장 로맨스'의 캐릭터들은 구시대의 도식적인 젠더 관념을 명백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경력에서는 나름의 성취를 이룬 루드밀라는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여자로 묘사된다. 루드밀라는 자신이 일에 매진하는 이유가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라고 아나톨리에게 말한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중년의 여자처럼 보이는 촌스러운 옷차림과 딱딱한 매너를 지닌 루드밀라를 직원들은 '우리의 할멈(our hag)'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흉을 본다. 이런 루드밀라가 사랑에 빠지게 되자 심정의 변화와 함께 외모를 가꾸기 시작한다. 오직 '사랑'만이 이 가엾은 처지의 노처녀를 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가의 처지는 루드밀라 보다 더 나쁘다. 가정을 가진 유부녀임에도 대학 동창 유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올가는 그런 자신을 추스리지 못한다. 올가가 유리에게 보낸 편지들은 곧 직장 동료들에 의해 웃음거리가 되고, 결정적으로 유리는 노조에 공식적으로 올가의 문제 해결을 의뢰함으로써 모멸감을 안겨주기에 이른다. 랴자노프 감독이 그려낸 '직장 로맨스'의 여성들은 사랑의 감정에 말할 수 없이 약하고 흔들리는 그런 존재로 그려진다. 이것은 영화 초반부에 통계청의 여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화장이며 외모 치장에 열을 올리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도 부각된다. 여성은 나이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외모를 가꾸고, 타인의 시선과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여성에 대한 관음적 시선은 음흉한 눈길로 여직원들의 몸매를 훔쳐보는 중년의 남자 직원 표트르가 대변한다.

  '직장 로맨스'는 그렇게 당시 소련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관점을 투영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전통적 가정의 안주인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직장'은 '가정'의 하위 범주에 속했다. 루드밀라의 비서 베라는 멋진 패션 리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틈만 나면 얼마전 이혼한 남편에게 다시 돌아와줄 수 없냐고 전화를 걸어 애걸한다. 루드밀라는 아들 둘을 혼자 키우느라 힘들다는 아나톨리의 푸념에 그래도 당신은 아이들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런 루드밀라는 얼마 안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의 자막에서 9개월 후, 아나톨리에게 세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고 알려준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소련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었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오늘 날의 젊은 러시아 여성은 영화가 매우 구시대적이며, 아나톨리의 세 번째 아기가 아들이라고 분명히 알려주는 자막도 우습기 짝이 없다고 짧은 감상평을 썼다. 그렇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2011년에 러시아에서 개봉된 리메이크 영화가 혹평 속에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직장 로맨스'가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는 매우 부드러우며 관객을 즐겁게 만든다. 직장 내의 위계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는 루드밀라와 아나톨리의 사랑 이야기는 결코 억지스럽지 않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아나톨리 역의 안드레이 미야코프, 루드밀라 역의 알리사 프로인드리치는 구 소련 시절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들이었다. 브레즈네프 시절의 경제적 침체기에 소련의 관객들은 이런 즐거운 영화라도 보면서 삶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쏟아져 나온 코미디 영화의 유산 가운데 랴자노프 감독의 '직장 로맨스'는 빛나는 보석과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러닝 타임이 꽤 길다. 155분의 길이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구 소련 시절의 영화사 모스 필름(Mosfilm)은 유튜브에 전용 채널을 개설해 놓았다. 무료이며,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번역이 간결하고 아주 좋다.


***사진 출처: newperexod.co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1-05-21 17:11   좋아요 1 | URL
오! 푸른별님
유툽으로 당장 달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