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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얼마 전부터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았다. 아주 힘을 꾹꾹 주어서 눌러야만 작동이 되곤 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새 리모컨을 사려고 했다. 그래도 전원부 버튼만 안되는 것인데 고칠 방법이 없나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고칠 방법을 알려주는 글들이 주르륵 뜬다. 고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버튼의 접점이 닳거나, 이물질로 인해서 생긴 문제이므로 리모컨 분해 후에 접점 부위를 손보면 된다. 이물질을 제거해도 잘 안되는 경우는 전도성이 있는 알미늄 포일을 접점에 작게 붙여주면 된다. 그렇게 리모컨은 다시 살아났다.
아주 사소한 수리였지만, 그걸 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접점(接點)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기판이 정상이라고 해도 전류가 흐르지 않아서 작동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작고 보잘 것 없는 문제들이 일의 시작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글쓰기'의 경우에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제대로 된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말고 내일은 쓸 거라는 다짐,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영감, 그런 것들...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 수업'에서, 글을 쓰려는 이들이 마주하는 그런 근원적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사실 이 책을 오래전에 사두고 그냥 책장에 넣어두었던 것 같다. 작년 가을부터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예전에 샀던 글쓰기 책들을 가끔씩 들여다 보고 있다. 대개는 그냥 흘려버리는 그저그런 조언들이지만, 이 책은 좀 다른 면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작가'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디는 작가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매일, 일정량의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습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직업에 대해서 고민해 보라는 충고를 곁들인다.
우선 글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대 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대에도 익숙하게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마다 자신이 더 선호하는 작업 시간대가 있기는 하다. 브랜디는 그것을 뛰어넘으라고 일러준다. 어느 시간대든 글을 쓸 수 있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비로소 작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를 얻게 된다. 꾸준함과 성실함이야말로 작가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브랜디는 그 다음의 작업으로 스스로의 글에 비평하는 자아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자아는 일단 내려두고, 무의식 속에 자리한 창조적인 글감들을 길러 올리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 웨이'였다. 글쓰기에 대해 다룬 그 책에서도 창작에서의 무의식의 중요성을 다룬다. 솔직히 그 책은 내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카메론의 그 책은 브랜디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많은 글쓰기 책들의 하나였다. 1934년에 이 책이 출간된 이후로, 글을 쓰려는 많은 이들이 브랜디의 조언을 따랐다.
오늘 날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구식의 관점과 조언이 있기는 해도, 작가 지망생에게는 커다란 줄기에서는 귀담아 들어야할 이야기들이 있다. 글을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막 글쓰기에 들어선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거나, 쓰다가 그만 두기를 반복하는 이들은 자신의 글쓰기 버튼의 접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글쓰기 습관과 일과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 글쓰기의 전원 버튼을 눌러 보라.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은 마치 허름한 원조 맛집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친절한 고객 응대는 없다. 다만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음식이 차려질 뿐이다. 결국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작가됨', '글쓰기'의 본질이다.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써내는 습관과 자신의 내면에 갇혀 있는 이야기들을 해방시키는 것. 그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작가 수업'은 그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첫걸음, 그리고 그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원칙을 다룬다. 글을 쓰려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구판이 절판되고, 2018년에 다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