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눈병이 났다. 아마도 8월 초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왼쪽 눈꺼풀에 작은 뾰루지가 하나 올라왔다. 눈에 그런 것이 났다가 다음날이면 사라지곤 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뾰루지는 붉은 점처럼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았다. 약간의 부기에 가려움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주 불편하진 않았다. 안과에 가봐야지 하면서도, 날이 미친듯이 더우니 외출하기도 꺼려졌다. 저러다 낫겠지. 그러던 것이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눈이 더 붓고 이물감이 심해졌다.

  9월이 되었는데도, 이 더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안과 병원은 버스에서 내려서 15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땡볕을 걷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병원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여느 때라면 1층의 검사실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질 텐데, 뭔가 비수기의 해변가처럼 병원은 한가했다. 나는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담당 주치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정도로는 짜도 나올 수 있는 게 없어요. 흉이 질 수도 있구요. 온찜질을 열심히 하세요."

  나는 좀 당황했다. 거의 한 달 동안 눈이 그런 상태라, 다래끼를 좀 짜면 나을 줄 알았다. 이 의사 양반은 매우 신중하다. 이전에 결막 결석 때문에 찾아갔을 때에도, 결석이 아직 튀어나오지 않았다면서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로서 나는 선택을 해야한다. 의사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우길 것인지. 만약에 내가 말하는 상대가 인테리어 업자이고, 현관을 원하는 타일 색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요구하면 된다. 하지만 내 앞에서 말하는 이는 의사이다. 짜서 나을 것 같으니 짜달라, 고 말하는 일은 어쩐지 할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내가 이 의사 선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찜질을 해서 이게 나을 것인지, 솔직히 나는 확신이 가질 않았다. 개 혓바닥처럼 더위에 늘어진 보도블록을 있는 힘을 다해 걸어갔다. 덥다. 너무 덥다. 길가의 슈퍼에서는 중년의 여자가 한 무더기의 옥수수를 쌓아놓고 열심히 껍질을 까고 있었다. 아직도 옥수수를 팔고 있나? 인터넷에서 옥수수는 판매 종료된 지 오래고, 이제는 삶은 옥수수를 냉동한 것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어디서 옥수수를 떼어왔을까? 나는 냉동실에 쟁여놓은 올해의 마지막 옥수수를 떠올렸다.

  3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서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뻥튀기 같은 싸구려 과자와 주전부리를 파는 여자가 있었다. 그 옆에는 야쿠르트 카트도 보였다. 머리가 아주 하얗게 센 호리호리한 여자가 야쿠르트 하나를 들이키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그 늙은 여자가 야쿠르트를 사 먹은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야쿠르트 여사였다. 내가 본 야쿠르트 여사들은 보통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여사는 적어도 60 중반은 되어보였다. 정류장에는 햇빛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 하나 피할 데가 없었다. 주전부리를 파는 장사꾼 여자는 더위를 이기려는 듯 혼자서 팔다리를 움직이며 체조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가게 앞에서 하릴없이 춤추는 풍선 인형처럼 보였다. 나는 설핏 웃음이 나오려다가, 먹고 산다는 것의 그 무게가 느껴져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전광판을 보니 버스는 10분 뒤에 오기로 되어있었다. 그 10분을 견디기 위해 나는 정류장 옆 건물의 광고판을 하릴없이 들여다보았다.

  '우리 직원 일동은 부킹을 목숨처럼 생각합니다'

  유흥 주점, 이라는 문구 옆에는 '***나이트클럽'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33세 이하는 절대 출입 금지'

  처음에는 '이하'를 '이상'으로 내가 잘못 읽은 것인가 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아니었다. 그 나이트클럽은 33세 이하의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중년 남녀 만남의 천국. 최고의 만남을 위해 수질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이어졌다.

 이 정류장을 여러 번 오가면서도 여기에 이 나이트클럽이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 빌딩은 금융 기관이 자리하고 있어서 외관이 무척 번듯했다. 금융 기관과 중년 전용 나이트클럽의 기묘한 동거를 나는 여지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절실한 만남을 원하는 중년의 남녀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나는 부킹을 생명처럼 여기는 그 나이트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 것인가도 궁금해졌다.

  버스가 왔다. 알지 못하는 중년의 남녀들과 나이트 클럽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이고, 언니들. 너무 반갑네."

  세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 나이 든 여자가 버스에 탔다. 쪼리를 신은 맨발의 엄지발톱에는 빨강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볼품없는 작은 발이었다. 버스 뒷편에 여자의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늙은 할머니들이었다. 여자의 활기찬 인사에 노인들은 대꾸할 기력도 없는듯 했다. 여자는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아, 저기 좀 봐바. 바람 한 점 안 불어. 너무 더워. 언제까지 더울까, 언제까지? 아마도 9월은 지나야겠지. 그래 9월이 지나야 할 거야. 집안을 다 뒤집어서 청소하고 왔더니 땀이 줄줄 흐르네."

  여자는 내 뒷자리에 앉았다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대편 자리로 옮겼다. 나는 여자의 주절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자리를 옮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먼저 자리를 떠서 내심 반가웠다. 여자는 자리를 옮겨 앉더니,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상한 그 활기가 부럽게 느껴졌다. 여자와 그 일행인 늙은 언니들은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마도 그들은 정류장 옆에 있는 스포츠 센터의 수영장을 다니는 이들 같았다. 수영장의 아쿠아로빅 수업은 언제나 중년의 여자, 노인들로 늘 북적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원시시대에 채집을 하러 갔다가 아무런 소득이 없이 돌아오는 사람처럼 걸었다. 9월이 지나는 동안 다래끼가 낫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의사를 보게 되면 미워질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개같이 더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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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의 감각

 


  아주 짧은 꿈을 꾸었다. 커다란 검은 점이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으려고 하니까, 그 점은 살아 움직이는 벌레로 변했다. 그것이 파리였는지, 아니면 나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비는 아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꿈에서 깼다.

  시집을 한 권 완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모전에 낼 시집이다. 공모전의 요강에 나온 최소 응모 편수는 50편. 당선이 되면 그 시들은 시집으로 묶여서 나온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 되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블로그를 쉬는 동안, 시 50편을 정리했다. 그 이상한 꿈을 꾼 날은 시집의 구성이 마무리되던 날이었다. 나는 50편의 시들에다 한 편을 더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검은 점은 마침표다. 거기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보다는 시를 더 써낼 여력이 없기도 했다.

  작년에도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는 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집(詩集)의 시들을 하나의 주제로 유기성 있게 묶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써놓은 시들 가운데에서 추려서 낼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써낸 시들도 있었다. 퇴고는 진저리나게 힘들었다. 이것밖에 쓰질 못하나, 더 나은 시는 써낼 수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옥죄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응모는 하면 뭐하나 싶은 생각도 계속 들었다.

  응모 편수 50편에 대한 압박은 상당한 것이었다. 어떻게 대충 써서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허점이 보이는 시는 남이 보아도 똑같다. 누군가 좋은 문학적 안목을 지닌 사람이 내 시를 읽어보고 조언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없었다. Chat Gpt는 나름의 어설픈 비평 능력을 보여주며, 일관성도 별로 없다. 나는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는 사람처럼 내가 썼던 시들을 읽고 또 고치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시를 썼던 지난 1년 8개월 동안, 나는 응모했던 모든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시인이 되려고 그 공모전들에 응모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써낸 시가 이런 블로그가 아니라, 확장성 있는 지면에서 더 많은 독자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등단은 그걸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문이었다. 그것은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장권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매일 쌓이는 출판사 편집장의 이메일에 등단도 하지 않은 지망생의 투고 원고는 휴지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내가 떨어졌던 공모전의 당선작들을 읽으면서, 이 시대의 시들과 내가 써내는 시들 사이의 어떤 커다란 간극을 확인했다. 좋게 말하면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유행과는 동떨어진 주변부의 지망생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한다. 트렌드를 따라가서 그들의 시작법을 습득해서 써내던가, 아니면 나의 시를 그냥 계속 써내던가. 사설 학원에서 시를 가르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나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오래전, 시 창작 수업을 들을 때가 떠올랐다. 시인 선생이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자, 매주 한 편의 시를 써오도록 하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10명 안팎의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서로의 시들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선생은 수업이 끝날 무렵에 무심한 듯 한마디를 보탤 뿐이었다. 선생이 내가 써낸 시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선생이 등단에 근접했다고 말한 수강생은 그 이듬해에 등단했다. 뭔가 그 세계는 내가 알지못하는 나름의 틀이 있었고, 규칙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여적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거야. 초심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내는 거야. 소설 속 한 장면에 대한 묘사만 기깔나게 써내는 계획은 누구나 갖고 있어. 하지만 기승전결을 갖추어 글을 끝마치는 일은 대다수 초보자에게 무척 힘들어. 그걸 해내는 것, 그래서 완성의 감각을 자꾸 느껴보는 것이 작가로서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해."

  이 말을 해준 A는 SF 소설을 쓴다. A는 몇몇 소설 공모전에 입상했고, 최근에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A의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하나의 과정을 끝마치는 것.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글쓰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글쓰기는 여타 예술 분야와 다르게 진입 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종이와 펜으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내놓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느냐, 읽히지 않느냐는 나중의 문제다. 어떻게든 끝을 내어 써내는 사람 자체가 적다는 뜻이다.

  나는 내가 시집을 완성하면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걸 국으로 끓여 먹을 수도 없고, 어찌 보면 시를 쓴다고 아등바등했던 1년 8개월의 시간들은 그냥 낭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낭비의 느낌, 버려진다는 무의미의 느낌이 나는 아주 싫었다. 역설적으로 그 느낌을 떨치기 위해 한 권의 시집을 써내겠다는 나름의 오기같은 것이 생겼다. 그리하여 50편의 시들을 꾸역꾸역 짜맞추어, 하나의 제목이 있는 시집으로 만들었다. A가 말한 그 '완성의 감각'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앞으로 내가 시를 계속 쓸지는 모르겠다. 이만큼 써보았으면 되었다 싶은 생각도 든다. 공모전에 시를 보내는 것도 더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시를 쓰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더 긴 호흡의 소설로 가져가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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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8월 7일-9월 6일) 동안 블로그는 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무더운 여름을 무탈히 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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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링크: 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3 
https://blog.aladin.co.kr/sirius7/15607635



  며칠 전,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입주자대표회의 결과 공지문이 붙어있었다. 늙다리 거수기들의 그렇고 그런 회의록. 그런데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었다. 보일러 기사의 계약만료에 관한 것이었다. 계약만료, 해고, 잘리는 것, 뭐 다 똑같은 이야기다. 이제 아파트의 중앙난방 보일러를 담당하는 기사는 더는 필요 없다. 그 직원은 이 더운 여름에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2주 동안은 새 가스관을 매립하는 공사가 있었다. 개별난방을 하게 되면 이전보다 가스 용량의 수요가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대용량의 가스관 매설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아파트 주변 도로를 죄다 파헤치고 새로 가스관을 매립해야만 한다. 포크레인이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지막지하게 도로를 깨부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렇게 파헤치는 도로는 2년 전에 새로 포장한 것이다. 도로포장 사업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그동안 낡은 보도블록은 걸을 때마다 패이고 부서져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장기수선충당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서 마침내 도로 공사를 했다. 그 공사 대금이 내 기억으로는 대략 1억 5천인지, 아무튼 2억 좀 못되는 금액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도로가 파헤쳐지고 있었다.

  공사업체에서 가스관 매설을 끝내고 다시 포장해 놓은 도로 상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상태가 좋았던 아스팔트는 중장비로 죄다 긁혀있었고, 보도블록은 너덜더덜한 상태였다. 이 꼬라지가 보기가 그랬던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말이 나왔던 모양이다. 재포장 공사 입찰을 해서 다시 공사를 하겠다는 거다. 미친 거냐? 장기수선충당금이 지들 돈 아니라고 그렇게 마구 써재끼고 있었다. 웃긴 건, 이 아파트 단지에서 거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집값 오르고, 자기 집 관리비 조금 아끼면 그만인 것이겠지.

  개별난방 전환공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구청 담당자가 현장 실사를 나왔는지도 알 수 없다. 그 결과에 대해 알려주기로 했는데, 입주자대표회의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는 아무런 공지문을 내지 않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개별난방 전환 안건 상정과 주민 투표 과정에서 했었어야 맞다. 그때는 죄다 쌍수 들고 찬성하더니, 공사 시작하고 다 헤집어 놓는 단계에 와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니. 그냥 등신인 거겠지.

  관리사무소에서 게시한 공용부분 개별난방 공사대금은 5억 원이 넘는다. 아마 이번 공사로 장기수선충당금은 바닥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이 아파트 단지의 필요한 공사 따위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2년 전에 도로 포장에 쓰여진 억대의 돈은 이번에 길바닥에서 녹아버렸다. 입주자대표회의의 머저리들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식의 근시안적이고 퇴행적인 사업 추진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남의 돈 쓰는 일은 참 우스울 정도로 쉽다.

  요새 아파트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을 지나가다 보면 오만가지 물품들이 다 나온다. 아마도 다용도실에 보일러를 설치하면서, 다들 그곳에 되는대로 쌓아두었던 살림살이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모양새다. 나도 커다란 화분 5개와 오래전에 비싼 돈 주고 산 김치통을 버렸다. 쓰지도 않은 새 김치통은 너무 컸다. 내가 버린 것들은 내놓자마자 누군가 다 가져가 버렸다. 그렇게 이 아파트 사람들은 헌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대신에 새 가전제품과 가구를 들여놓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전제품 회사와 가구 배달점의 큰 트럭이 드나든다.

  어제는 엘리베이터에 공사업체의 새 공지문이 나붙었다. 공사대금 마감일을 알리는 종이였다. '공사대금을 마감일까지 납부해주지 않으면, 난방이 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딜 가나 돈을 늦게 내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공지문의 문구는 기묘한 협박조로 들렸다. 저런 업체에서는 돈을 못 받으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받아낼까? 미수금을 받기 위해 해당 세대의 문을 두드리나? 아니면 용역 깡패? 설마, 그건 아니겠지. 나는 엘리베이터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렇게 그냥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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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링크: 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2 
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7949



  "에이씨, 나 안할 거야!"

  한 인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계단에 울려 퍼졌다. 열린 우리집 현관문 사이로 화가 잔뜩 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잘 안되어서 저러나 보네... 현장 인부들 가운데 지 성질 못 이기고 저러는 건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형님, 진짜 힘들어 죽겠어. 뭐가 이렇게 일이 많아."
  "야, 나도 힘들다."
  "아, 그럼 나하고 형님하고 일 바꿔서 할까. 바꿔! 바꾸자고."

  퉁퉁한 남자는 일도 안 하면서, 우리집에서 작업하는 늙은 인부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는 '노가다의 세계'를 TV로 시청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우리 라인의 보일러 공사가 있었다. 공사는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온갖 소음과 먼지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내가 보니까, 이 공사팀은 대략 7명에서 8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서 일을 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의 공사를 했다. 대략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앞 공정이 끝나면 다음 공정을 맡은 인부가 그 일을 했다. 하루 종일 대문은 열어놓아야 했는데, 낯선 외부인이 내 집에 그 어떤 예의도 차리지 않고 마구 드나드는 것도 참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들은 결코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았고, 예의도 없었다. 아침에 제일 먼저 보일러 포장 뜯으러 온 인간은 전등을 켜놓지 않았다면서 큰 소리로 불평했다.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그런 현장직 노동자들은 대개 '밝기'에 민감했다. 작업 현장은 무조건 환하게 밝아야만 한다. 이건 아주 환한 대낮에도 적용된다. 낮에도 전등을 켜놓아야만 한다. 나는 아침까지도 집안의 짐을 치우느라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침의 그 노가다는 아주 무례한 인간이어서, 전등불이 안 켜져 있다며 대놓고 성질을 부렸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는 공사로 드나들 때마다 신발을 내팽개치는 소리에서도 드러났다.

  이런 공사를 하게 되면 용역을 주는, 그러니까 공사비를 지불하는 집주인은 '갑'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을'이 되어버린다. 보일러 시공은 일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다. 대개 '노가다'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제 현장의 전권을 쥐고 있는 전문가 '갑'이 된다. 집주인이 시공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저, 계약한 대로 공사가 무사히 잘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니 인부들이 성깔을 부리는 것도 좀 너그럽게 보아야 한다.

  그런데 중간중간 인부들이 일해놓은 것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도 배관을 연결할 때는 테플론 테이프로 감아서 연결을 하는데, 그 테이프 감아놓은 꼬라지가 정말 웃겼기 때문이다. 테플론 테이프는 마감이 잘 안되어서 깃발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야, 내가 감아도 저거보다는 더 잘 감겠다. 정말이지 물이나 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난방 분배기를 교체하느라 깨어놓은 시멘트 덩어리는 분배기함 안쪽에 대충 쌓아두었다. 내가 그걸 치워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곧 그 일을 맡은 인부가 와서 철판으로 그냥 덮어버렸다. 언젠가 TV 뉴스에 나온 인테리어 괴담이 떠올랐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입주한 집주인이 1년 뒤에 베란다 누수로 바닥을 뜯었더니, 거기엔 온갖 건축 쓰레기가 다 있었다는. 그렇게 분배기함에는 지저분한 시멘트 조각들이 그대로 매장되었다.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나는 마지막 현장 인부가 내민 작업 확인서에 서명을 해주고 문을 닫았다. 

  "일도 못 하면서 곤조는 오지게도 부리네."

  곤조. 근성(根性, こんじょう)이라는 뜻의 이 일본어는 영화 현장에서도 많이 쓰인다. 오래전의 일이다. 후배의 졸업 작품 상영회에 갔었다. 후배의 작품은 20여분 가량의 단편으로 장르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촬영이 좀 이상했다. 핸드헬드(Hand-held)로 촬영된 화면은 내내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아니, 왜 저걸 저렇게 찍었지? 나는 중간 휴식 시간에 그 후배를 만났다.

  "근데 말이야, 왜 촬영을 그렇게 한 거야?"
  "아, 그게요. J가 촬영 감독이었는데, 핸드헬드로 하겠다고 빡빡 우겨서... 내가 끝까지 그건 아니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걔한테 밀린 거죠."

  후배는 아쉬움으로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J는 잘 알고 있었다. J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에 속했다. 그게 좀 웃긴 게, 뭔가 대단한 전문가적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쓰잘데기 없는 자부심에서 오는 거였다. 아마도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과정에서 후배와 제작팀은 대략의 작업 과정을 합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J가 정작 로케이션 현장에 가서는 핸드헬드로 찍어야겠다고 곤조를 부렸던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후배의 졸업작품은 어쩔 수 없이 J의 뜻대로 촬영되었다.

  1) 일머리도 없으면서 곤조를 부리는 것
  2) 맡은 일을 잘하면서 곤조를 부리는 것

  2번의 경우는 그나마 봐줄 만하지만, 1번을 인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든 1번과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꼭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보일러 시공 인부들의 곤조 부리기. 나는 그런 것을 관찰하는 것도 작가로서 나름대로 흥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 인부들은 보일러 설치를 누군가의 집에 온기와 편안함을 더하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 대충대충 해버려도 괜찮은 일이었을 뿐이다. 노가다와 전문가의 그 머나먼 간극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나는 수도 배관의 나풀거리는 테플론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감싸주었다. 테프론 테이프도 제대로 감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전문가'의 칭호는 결코 합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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