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고였어. 내가 무서워서 실수로 널 때렸단다."


  늙은 남자는 실수로 오리를 다치게 만든 손주에게 오리에게 할 말을 일러준다. 어린 오리 새끼는 다리를 절며 돌아다닌다. 만약 그 대상이 오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남자는 젊은 시절 준군사 조직의 행동 대장으로 자신의 기억으로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사람이다. 그야말로 '학살자'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안와르 콩고(Anwar Congo), 이것이 그의 이름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2012년 다큐 'The Act of Killing'은 금세기에 가장 덜 알려진 어떤 학살의 기억을 복구해 나간다.


  이 다큐는 무려 2시간 40분에 이르는 러닝 타임을 갖고 있다(감독판). 나는 긴 시간 때문에도 그랬지만, 다큐가 다루는 그 무거운 이야기 때문에 거의 7년의 시간을 그냥 안보고 있었다. 어떤 실제적인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보는 이의 진을 다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이 작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 다큐를 보려는 이들은 되도록이면 빈속에 보아야 하며, 무언가 먹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다. 욕지기와 함께 내내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가장 덜 알려진 학살 사건. 1965년과 6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 사건이었다. 1965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를 쿠데타로 몰아낸 수하르토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다.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서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범죄 행위들이 자행되었고, 그 결과 목숨을 잃은 피해자만 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무고한 양민들과 중국인이었으며 그 학살을 실질적으로 수행한 준군사 조직 판카실라는 공식적으로 그 어떤 조사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판카실라는 유력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온갖 더러운 사업과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


  다큐의 초반부에 안와르 콩고와 그의 수하였던 아디가 아주 유쾌하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떠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가장 쉽고 편하게 죽이는 방법을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고 배웠다는 이야기부터, 자신이 철사로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도 웃으면서 재연한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양심의 거리낌도 없어 보인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안와르와 아디에게 그들의 과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그들은 흔쾌히 승락했다. 다큐의 제목 'The Act of Killing(인도네시아어 제목 Jagal: 도살자)'는 그렇게 만들어 졌다.


  안와르와 아디는 그 학살에 동참했던 과거의 동료들을 불러 모아 재회한다. 그들에게 학살의 기억은 끔찍하고 참혹한 것이 아니라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다. 당시에 영화관을 끼고 암표장사를 하던 그들은 사업을 소유한 중국인들이 미국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게 하자 앙심을 품었다. 마침 수하르토의 쿠데타가 터졌고, 그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거리낌없이 학살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대적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범죄는 인생의 새로운 발판이 되어서 지역 유지, 사업가, 정치가가 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모두 숨죽이며 입을 틀어막고 살아야 했다.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영화로 만든다는 사실에 신나고 들뜬 그들은 의상이며 소품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기도 하고, 보조 출연을 할 동네 주민들도 모집하러 다닌다. 그 주민들 가운데에는 그들에 의해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학살자와 피해자들은 함께 영화를 촬영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그들의 촬영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뭔가 불안스러운 흔들림과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숲 속에서 이루어진 방화와 살인, 강간의 촬영 장면에서 안와르의 표정은 어둡고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단지 짧은 재연 장면이었음에도 촬영에 참가한 동네의 중년 부인은 넋이 나가 버린다. 촬영이 끝나고도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서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학살자 아디의 딸도 있다.


  "솔직히 후회되는데, 이 장면이 이렇게 끔찍할 줄 몰랐어요. 친구들은 나에게 더 가학적으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저 여자애들과 어린애들을 보니까... 평생 우리를 저주하지 않겠어요?"


  안와르는 그렇게 학살의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 나간다. 자신이 행한 고문과 온갖 살인의 방법들을 재현하는 그의 얼굴은 고통과 공포, 회한으로 일그러진다. 다큐의 마지막에 그는 자신과 조직원들이 사람을 죽인 건물의 옥상을 둘러 보며 구토를 참지 못한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곳을 나와 계단으로 내려가는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학살자의 내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끔찍한 범죄의 과거는 지나갔으며, 그가 그곳을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학살자 안와르 콩고는 2019년 10월 25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신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다큐 이후에도 지역의 여러 범죄 사업에 연루된 삶을 살았다. 


  "글쎄, 안와르와 나 사이의 유대감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다만 난 그가 좀 마음에 걸려요."(theguardian.com과의 2013년 6월 20일 인터뷰)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다큐 제작 이후로도 안와르와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오펜하이머가 안와르와 맺은 인간적 관계와 어떤 신뢰가 없었다면 이 다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안와르는 감독을 '조슈아'라고 친구처럼 부르며, 아주 가감없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The Act of Killing'을 통해 관객은 학살자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학살자들이 스스로 배우가 되어 자신의 범죄를 '재연'하는 이 기이하고 낯선 방법은 어떤 면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편으로는 이 다큐가 부각시킨 역사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은 가해자들의 입장만을 다룬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2014년에 '침묵의 시선(Senyap, The Look of Silence)'를 만든다. '침묵'이라는 뜻의 인도네시아어 제목의 다큐 'Senyap'은 아버지를 학살로 잃은 아들이 가해자들을 만나는 여정을 담아냈다. 나는 아마도 그 다큐를 보기까지 꽤 오랫동안 망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통스럽고 괴로운 감정에 휩싸이게 만드는 영화를 보는 이들은 누구나 그것을 삭혀내기까지 나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진 출처: documenta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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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미스미 켄지 감독의 '검(劍, 1964)' 리뷰를 쓰면서 '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생각이 났다. '검'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가진 작품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극우적인 가치관과 생의 마지막에 택한 끔찍한 죽음의 방식은 이 작가를 언급할 때 어떤 면에서는 흠칫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전집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초기작인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 '파도 소리' 정도가 번역되었다. 민음사에서 미번역된 미시마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폴 슈레이더의 '미시마-그의 인생(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를 조망한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된 사건은 역시 '미시마 사건'으로 알려진 자위대 점거 할복 자살 사건이다. 영화를 4부분으로 분할한 것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일부분을 영화적으로 재연해서 보여주는데, '금각사', '교코의 집', '달리는 말'이 나온다. 젊은 청춘 4명의 욕망의 행로를 그린 '교코의 집'과 극우적 사상이 드러난 '달리는 말'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시오카 에이코가 맡은 미술 세트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면서도 매우 화려한 색감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음악은 그 유명한 현대 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맡았다. 폴 슈레이더는 그렇게 관객의 눈과 귀를 장악해나가면서도 본질인 미시마의 생애를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이 논란 그 자체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이 영화가 가져올 파장을 최소화하고 싶어한 것처럼 보인다.    


  '미시마-그의 인생'이 보여준 영화적 성취와 객관성은 찬사받을 만하다. 각본은 감독 폴 슈레이더와 그의 동생 레너드가 맡았는데, 레너드는 오랜 일본 생활을 통해 나름의 현지 정서에 익숙했다. 또한 그의 부인 치에코는 영어 대본을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을 맡음으로써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제작비를 마련해준 미국 제작자들(코폴라와 루카스)과 미국인 감독, 일본어로 연기하는 일본 배우들, 일본인 세트 디자이너, 일본 현지 촬영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조합은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폴 슈레이더에게 이 작품은 자신이 각본을 쓴 '성난 황소(1980)'와 더불어 말 그대로 인생작으로 남았다. 뭔가 그가 가진 재능의 총합을 다 보여준 느낌이다. 


  미시마 역을 맡은 오가타 켄의 연기도 아주 좋다. 원래 그 역은 다카쿠라 켄에게 제안이 갔지만, 그는 극우파의 위협에 출연을 고사했다.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일본에서 상영된 적이 없는데, 그 배경에는 미시마의 유족과 극우파의 반대가 자리하고 있다. 극우파는 자신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미시마를 동성애자로 그렸다는 점을 참을 수 없어한다. 어쨌든 폴 슈레이더는 지뢰 피해가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절제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이 논란덩어리 인물을 영화적으로 부활시킨다.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슈레이더는 왜 미시마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 시작은 감독 자신의 개인적 관심에서였을 것이다. 사실, 미시마 유키오란 인물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의문과 궁금증을 남긴다. 그가 쓴 소설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그 정치적 변신의 여정과 함께 끔찍하고 참혹한,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죽음까지 모든 것이 그렇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릴 때면 어떤 '괴물'의 형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어떻게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인 글을 써내려갔던 작가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추한 모습의 괴물로 변해버린 것일까?


  괴물을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피해서 도망가든가, 아니면 괴물의 주위를 맴돌면서 괴물과 직면할 방법을 찾아보든가. 괴물과 마주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대적하기로 결심한 이들은 괴물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에게 그 모험과 도전은 가치있다. 괴물의 실체를 알아낸다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괴물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폴 슈레이더는 관객에게 괴물의 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은 그 커다랗고 컴컴한 입구에서 뛰어난 재능의 작가와 그가 쓴 작품, 그의 시대를 조심스럽게 가늠해 본다. 어쩌면 이 탐험은 이제 시작이며, 슈레이더처럼 누군가는 자신만의 영화적 방법으로 그 여정의 기록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리뷰를 쓰고 나서 미시마 유키오와 관련된 자료를 다시 찾아 보니,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11・25 자결의 날, 미시마 유키오와 젊은이들(2012)'를 남겼다. 극영화로 미시마 유키오의 생의 후반기 5년의 여정을 담은 영화라고 한다.  

**사진 출처: film-gr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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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건 우리는 상하이에서 왔다는 것과 우리 애들도 상하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야."


  칭홍()의 아버지는 '상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게는 이 시골 촌구석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래 살던 곳인 상하이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아버지 '우'는 아내의 분별력 없는 판단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서 십수 년 동안 시골에 처박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가족이 상하이에서 그곳 꾸이양에 오게 된 것은 칭홍의 엄마 탓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문화혁명 시기 마오쩌둥이 추진했던 삼선건설(三線建設)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의 침략에 대비해 연안 지역(일선과 이선지역)의 주요 산업시설을 서북부 지역(삼선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새롭게 공업 단지를 건설하는 정책이었다. 그에 따라 연안 대도시의 주민들은 강제적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왕 샤오슈아이의 2005년작 '청홍'은 그 삼선정책으로 뿌리 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일가족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왕 샤오슈아이는 이 영화를 자신의 부모와 삼선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바친다고 썼다. 강제적으로 시행된 당의 정책은 일반 민중들의 삶에 고통스러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고서야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원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칭홍의 아버지에게 그 기다림의 시간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겨준다. 어떻게든 자신의 아이들은 그 깡촌 시골에서 벗어나 상하이로 가게 해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칭홍과 어린 아들을 엄격하게 훈육하고 다그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칭홍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둘도 없는 친구 찐찐, 그리고 남자친구 홍껀이 있는 그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그곳 출신의 홍껀이 칭홍의 아버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칭홍의 뒤를 늘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가 하면, 홍껀에게는 칭홍은 언젠가 상하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네가 알아서 마음 접으라며 구슬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바램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칭홍은 홍껀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홍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그 일은 예기치 못한 비극을 불러온다.


  영화의 초반부, 홍껀은 빨간 구두를 칭홍에게 선물한다. 구두는 예쁘지만, 시골의 돌길을 걷는 칭홍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친구 찐찐은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지만, 칭홍은 그 구두를 다시는 신지 못한다. 그걸 본 아버지가 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골의 흙바닥 돌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빨간 구두는 마치 칭홍의 꿈과 소망 같다. 홍껀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홍껀은 구두를 다시 주워왔다며 돌려주지만, 구두는 결국 더렵혀지고 버려진다. 칭홍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린다. 


  영화 속에서 칭홍은 붉은 색 스웨터와 재킷, 파란 색 바지와 같이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색의 옷을 입고 나온다. 칭홍을 연기한 고원원의 하얀 얼굴은 옷의 색감을 더 부각시킨다. 극도의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안고 상하이로 쫓기듯이 떠나는 새벽의 차 안에서 칭홍이 두른 머플러의 색도 붉은 색이다.


  왕 샤오슈아이는 뿌리 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의 그늘을 들여다 본다. 가족의 삶에 드리운 회한과 고통의 상처는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평생을 두고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청홍'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왕 샤오슈아이에게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외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역시 6세대 영화 감독 지아장커도 2004년작 '세계(界)'로 토론토 영화제 수상을 비롯해 인정을 받았지만, 그 영화 역시 중국 내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실질적인 흥행 수익을 내지 못하는 현실은 포스트 6세대 영화 감독들을 각성시켰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업성 있는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에서 기존의 영화 감독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면에서는 작품성을 희생시키고 상업성과 영합하는 댓가로 영화들이 조금씩 망가져가는 과정을 2010년 이후의 6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발견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중국 작가주의 감독들의 좋은 영화들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중국의 팽창하는 영화 산업을 지배하게 된 현실에서 과연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청홍'을 보며 느꼈던 슬픔의 정서는 단지 영화 속 청홍에게 닥친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그 가족의 고통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런 괜찮은 영화들,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지난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아낸 중국 영화들을 이제는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청홍'이 다룬 뿌리 뽑힌 이들의 슬픔은 6세대 감독들이 마주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예술성이라는 자신들의 뿌리를 점차적으로 잘라내고 '자본'이라는 새로운 거주지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들. 영화 마지막에 상하이로 향하는 가족을 태운 차가 길고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가는 모습처럼 6세대 감독들도 이 시대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cn-hanx-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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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이해'는 영화 공부를 시작하던 첫해에 들었던 과목이었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 예를 들면 쇼트와 시퀀스, 영화에서의 방향성, 뭐 그런 것들. 방향성을 배울 때 예시로 나왔던 영화는 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이(1964)'였다. 삼룡이 역을 맡은 김진규가 집 마당에서 바깥으로 내달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쇼트가 바뀌어도 그 달리는 방향이 일관성이 있어야 관객은 안정감을 느낀다는 내용. 그 밖에 많은 유명 영화들이 수업의 교재가 되었다. 때론 뮤직 비디오도 나왔다. 그 가운데 어떤 가수가 나온 장면이 있었다. 키가 꽤 큰 남자 가수가 자신의 체구보다 훨씬 큰 흰색 양복을 입고, 고개를 비둘기처럼 까딱까딱 앞뒤로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를 비롯해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 가수의 노래며 퍼포먼스는 기이하고, 좀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보였었다. 그 지직거리는 화면 속에 나온 밴드의 이름이 'Talking Heads'라고 나중에 교수가 알려줬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조나단 드미의 다큐 'Stop Making Sense(1984)'를 보고 나서야, 그 수업 시간에 봤던 장면이 이 다큐의 도입부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영화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우연히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이 다큐는 토킹 헤즈가 1983년 12월에 Hollywood Phantages Theater에서 3일간 공연한 장면을 편집한 것이다. 다큐의 제목 'Stop Making Sense'는 그들의 앨범 'Speaking In Tongues' 수록곡인 'Girlfriend Is Better'에 나오는가사다. 공연은 리드 보컬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의 열창과 놀라운 퍼포먼스, 그리고 밴드 구성원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흥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나처럼 토킹 헤즈에 대해 말그대로 '1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흥겹다. 대중성과 전위적 혁명성, 그 두 세계 사이의 어드메에 위치하고 있는 그들의 음악은 기괴하면서도 놀랍다.


  1시간 반 가량에 이르는 이 다큐를 보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와 사람들에 대해서 뭐라고 써야 하나? 그럴 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파보는 수 밖에. 토킹 헤즈 밴드의 역사, 멤버 구성원들, 특히 데이비드 번은 어떤 인물인지도 자료를 찾아 본다. 다큐에서 첫곡 'Psycho Killer'를 부를 때 딱 알아봤지만, 역시 이 양반도 그냥 보통 사람은 아니다.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희곡도 쓰고, 영화음악도 만들고, 뭐 무슨 공연에서 연기도 하고 아무튼 예술적 감성 충만한 삶을 살아낸 이였다. 독특한 자기 초상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 신디 셔먼하고 한때 연인 사이로 지내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Stop Making Sense'를 보면서 내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기타를 들고 춤도 추고, 노래(두번째 곡 'Heaven')도 부르며 건반도 연주하는 여성 베이시스트 티나 웨이마우스(Tina Weymouth)였다. 예쁘장한 외모의 여성 뮤지션이 넘치지 않는 절제된 감성으로 밴드 멤버들과 어울려 멋진 공연을 펼치는 것을 보며 궁금증이 일었다. 데이비드 번과 연인 사이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더랬다. 그런데 티나의 연인이 밴드에 있기는 했다. 드럼을 맡은 크리스 프란츠. 그 두 사람은 이미 1977년에 결혼한 사이였다.


  그 당시에도 인기있는 여성 가수들이 있었지만,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였던 록 밴드에서 여성 멤버는 좀 더 눈에 띄고 독특하게 보였다. 다큐는 어떤 면에서 데이비드 번의 원맨쇼인 것도 사실이다. 실질적으로는 토킹 헤즈가 그 자신이고, 데이비드 번이 토킹 헤즈이기도 하니까. 그는 밴드의 중심이었고 그가 다른 분야의 창작 활동으로 외도하는 동안 밴드는 정체기에 들어갔다. 결국 그렇게 쌓인 멤버들의 불만으로 밴드는 1991년,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토킹 헤즈가 해체된 이후에도 티나는 남편과 함께 자신의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뭐랄까, 지금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선배의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 그런 인상을 받았다.


  티나 웨이마우스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2017년 9월에 'Paper(papermag.com)'매체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여성 뮤지션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나름의 회고가 실려있었다. 자신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토킹 헤즈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밴드 초창기에 데이비드 번이 베이시스트를 2년 동안 구하지 못해서 고생했는데, 보다못한 티나가 직접 기타를 사서 독학을 했었다고 했다. 그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펑크의 정신을 실현했다고 자평했다. 밴드가 유명해지기 이전, 이런저런 고생을 할 때 티나에게는 일종의 살림꾼 역할까지 맡겨졌다. 로드 매니저처럼 밴드 일정 관리하고 멤버들 다독이며 그렇게 지냈던 것이다.


  그렇게 밴드에 투신했음에도 리더였던 데이비드 번은 티나를 박하게 대했다. 티나는 밴드의 일원이 되기 위해 번에게 3번이나 오디션을 봐야했는데, 그것은 다른 멤버들은 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 바닥은 여자에게 험한 세계이므로, 여성의 역할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티나에게 말했다. 그런 데이비드는 뭔가 일이 안풀릴 때마다 티나에게 성질도 꽤나 부렸던 모양이다. 자신의 부인이 그런 대접을 받아도 남편 크리스에게 별 뾰족한 수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데이비드 번이 밴드 얼굴이나 마찬가지인데 뭐 어쩌겠는가. 티나는 그 모든 것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버텼다. 그러나 세상은 티나를 뛰어난 뮤지션이 아니라 토킹 헤즈의 부속품처럼 바라봤다. 티나가 했던 언론 인터뷰의 대부분은 데이비드 번에 대한 질문이었고, 자신은 그때마다 아주 잘 대답해주었다고 했다. 어쨌든 자신은 '여성'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음악과 '뮤지션'으로 인정받길 원했다고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티나는 토킹 헤즈의 멤버로 2002년에 락 음악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티나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내가 봤던 'Stop Making Sense'를 떠올려 보니, 뭔가 다르게 보였다. 그 공연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어떤 무언가가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이 다큐의 관객들은 리더 데이비드 번이 보여주는 독창적인 음악 세계와 무대 매너에 매혹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공연은 전적으로 그만의 것은 아니다. 밴드 구성원들과 서브보컬을 맡은 두 명의 여성 흑인 멤버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정적인 공연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관객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이었음에도 관객들이 무척 점잖다고 해야할지 매너가 무척 좋았다. 흥겨워서 객석에서 추는 춤도 너무 얌전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심한 괴성을 지르거나 뭘 내던지고 그러지도 않았다(마지막 부분에 손수건인지 뭔가가 날아다니기는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꼬마 관객도 있었던 점인데, 꼬마가 흰색 유니콘 인형 들고 신나서 흔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 공연은 모든 것이 마치 중용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군가 이 공연을 보고 쓴 짧은 댓글이 기억난다.


  "데이비드 번은 방금 정신 병동에서 탈출한 것 같은 모습인데, 매우 침착하게 행동한다."


  진짜 그랬다. 마치 영혼 가출한듯이 노래 부르고 춤도 추는데, 데이비드 번은 아주 절제된 무대 매너를 보여준다. 조나단 드미는 그 공연 현장의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꽉꽉 눌러 담았다. 특히 이 다큐는 편집이 무척이나 빼어나서, 도무지 뭘 이어붙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신기에 가깝다. 


  토킹 헤즈 팬이야 이 다큐는 두고두고 돌려보는 것이겠지만, 이런 음악에 문외한인 관객들에게도 'Stop Making Sense'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내게는 이 다큐에 나온 여성 뮤지션 티나 웨이마우스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나는 것은 그렇게 가려진, 잘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burningthecelluloid.com(뒷 부분에 보이는 인물이 티나 웨이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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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청취자 사연을 하나 들었다. 아마 20대 청취자였던 것 같다. 자신이 도전하던 일이 있었는데, 거듭 실패하자 포기하려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라라랜드'의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을 치루는 장면을 보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는 사연이었다. 그런데 그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좀 그랬다. 만약 그렇다면 저 영화는 뭔가 좀 위험한 영화인 걸...


  작년에 이 영화를 케이블 채널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유명한 언덕의 탭 댄스 장면이었다. 이상하게 주인공들의 연기나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몰입이 되지 않았고, 별 재미도 없어서 한 10분을 보다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엊그제, 설 연휴 특선으로 공중파에 나온 '라라랜드(2016)'를 다시 만났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내 느낌은 일종의 분노와 허탈감이었다. 이건, 청춘 관객들 털어먹으려고 만든 포장 그럴듯한 영화이지 싶었다. 


  데미언 셔젤의 '위플래시(Whiplash, 2014)'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근래 10년 동안 본 영화 가운데 베스트를 꼽으라면 그 영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의 본질, 그 안에 숨겨진 광기와 고통에 대해 그토록 심오한 성찰을 감각적 영상으로 보여준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때 그 영화가 주었던 전율과 감동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제작자였다면 돈다발 싸 들고 셔젤을 찾아갔을 것이다. 아마도 헐리우드 제작자들도 당연히 그랬겠지. '라라랜드'는 말 그대로 돈을 여기저기 바른 티가 줄줄 흐른다. 주연을 맡은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은 노래, 피아노, 탭 댄스 배우느라 죽을 고생을 했겠다 싶기도 하다. 하긴, 배우는 아무나 하나? 헐리우드 정상급의 배우가 저 정도 역량 아니면 버텨낼 수 없는 치열한 세계이기도 하고.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으므로, 구태여 줄거리를 읊을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이 영화에 대한 해외 평론도 찾아보면 죄다 호평 일색이다. 그렇다면 '라라랜드'는 그런 찬사와 박수에 걸맞는 영화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독 데미언 셔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뮤지컬 영화 한 편을 찍었을 뿐이다. 내가 특히 더 분노하고 우려스럽게 생각했던 점은 따로 있다. 그가 '라라랜드'에서 보여주는 예술과 예술가의 모습은 상업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말하자면 셔젤은 자신의 경력을 위해, 자신이 보고 알고 느끼는 예술과 창작자의 관점을 돈 되는 영화를 만드는 데에 팔아넘겼다.


  내가 라디오에서 들은 청취자 사연에 나온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 장면을 한 번 보자. 미아는 거듭된 오디션 탈락에 좌절한다. 세바스찬의 권유에 따라 글쓰기에 새롭게 도전한 미아는 '볼더 시티여, 안녕'이란 1인극 희곡을 쓰고, 마침내 첫 공연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 그야말로 모든 걸 때려치우고 고향집으로 돌아간 미아에게 세바스찬이 희소식을 갖고 온다. 미아는 행운의 오디션을 보게 되고, 결국 그 오디션은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이 된다. 자신의 삶의 경험을 연기로 엮어서 보여주라는 주문에 미아는 그동안 겪었던 좌절과 슬픔을 노래로 표현한다.


  "이 곳에 있는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진흙탕 속에 갇혀 있지만

  (중략)...

  조금은 미칠 필요도 있어, 새로운 무언가를 보려면 말이지

  그런 게 우릴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몰라

  바로 세상이 우릴 필요로 하는 이유지

  (중략)...

  마침내 그녀는 말해요

  한 번 더 해보겠다구요." (번역: 푸른별)


  이 노래를 부르고 미아는 대스타의 길에 들어서는 열쇠를 얻는다. 아마 그 라디오 청취자는 그 다시 한 번 더 해보겠다는 말에 대단한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청취자가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데미언 셔젤이 '라라랜드'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겉멋 든 선동(정말로 선동이라고 생각한다)에 어떤 면에서는 욕지기가 나왔다. '야, 너 될 때까지 해봤어? 그렇게 열정적으로 모든 걸 내던진 적 있냐구? 미아를 봐봐. 결국 해냈잖아. 너도 할 수 있다니까!'


  셔젤은 분명 예술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그 파괴적인 이면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위플래시'는 정신나간 음악가의 미친 교육방식에 대해 토론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창작의 세계에 들어선 이들의 부서지기 쉬운 내면과 예술이란 세계의 무자비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셔젤은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예술은 도덕적이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치를 얼마나 가졌는가'에 대해서.


  그런 그가 '라라랜드'에서는 광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우리가 딴따라라고 부르는 모든 총칭의 직업군에 해당하는)에게 당신들이 실패하는 것은 열정과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대놓고 말한다. 적어도 미아처럼 스스로 희곡 쓰고, 돈 들여 공연장 대관해서 1인극이라도 해야할 판이다(미아는 그 공연을 본 캐스팅 디렉터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렇다. 이건 영화니까, 영화적으로 뭔들 못하겠는가? 그렇다고 미아와 세바스찬이 구질구질한 도시의 셋방에서 평생 인생 망가지며 사는 꼴을 보여준다면 '라라랜드'의 흥행은 대참패를 면치 못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의 현실감각은 영에 수렴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사는 집도 그렇다. 아니, 변변찮은 직업으로 먹고 사는 배우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셋방은 왜 그리 반짝거리고 널찍한가? 도대체 이 영화의 캐릭터들 가운데 궁기가 흐르는 이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유명 뮤지컬 영화에서 차용한 것이 명백한 장면들, '사랑은 비를 타고(1952)'와 '쉘부르의 우산(1967)'을 비롯해 초반부 도로에서 벌어지는 공연 장면은 마치 '그리스(Grease, 1971)'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데, 이 또한 영화적 상상력의 밑천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셔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술 세계의 본질에 적당히 예전 뮤지컬 영화 섞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애담을 엮어서 '라라랜드'를 내놨다. 마치 마케팅에서 타겟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니즈(needs)가 무엇인가를 연구해서 상품 내놓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결과, 나에게 이 영화는 작품이 아니라 '영화적 상품'으로 보인다.


  아니, 영화라는 게 결국 다 그런 거잖아요. 관객들 영화관으로 오게끔 환상과 꿈을 잘 포장하고, 달달한 설탕 가루도 좀 뿌리고, 뭐 그런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현실의 시궁창 보려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잖소?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반문할 것이다. 아마 이 영화가 그냥 청춘 로맨스 영화였다면 나는 그렇게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혐오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셔젤이 예술과 창작자의 세계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교묘하게 왜곡해서 보여주며, 결국은 그것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미아와 세바스찬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현실에서는 아주 아주 드물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 세계의 많은 이들은 가난과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말 그대로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아주 운이 나쁘면 여러가지 이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 운이 좋게 배우로 성공한 미아와 자신만의 재즈바를 갖게 된 세바스찬이 잃은 것은 결국 젊은 날의 사랑 뿐이다. 그런 걸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내가 그나마 뭔가를 하나 건져야 한다면, 언덕 탭 댄스 장면의 포스터 정도일 것이다. 이 포스터는 젊은 청춘들의 방 전면을 도배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딱 그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아주 씁쓸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이 영화로 쓸 리뷰 제목을 떠올렸다. '본격 청춘 관객 털어먹는 영화'. 아마도 이 블로그에 오는 이들은 내가 이런 비문(文)의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뭔가 웹소설 제목같은 그걸 어떻게든 좋게 바꿀 수 있을지 이틀을 고민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그냥 썼다. 언젠가 웹소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서 읽은 적이 있다. 진짜 말도 안되게 긴, 문법에도 맞지 않는 제목(예를 들면 '마틸다는 몇 번이고 전화를 걸고 울다 지쳐서 3일째')이었는데 그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후일담이었다. 뭐, 일 방문자수 100명 미만의 이 블로그에서 내가 인기를 끌 일도 없고, 내 진정성 담은 이 리뷰의 제목은 그렇다는 것을 독자들만은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미아와 세바스찬의 상상 장면에서 파리의 거리에 빨간 풍선을 든 아이가 스쳐 지나간다. 그건 1956년 알베르 라모리스의 '빨간 풍선'에 나오는 장면을 따온 것이다. 30여분이 좀 넘는 이 단편 영화는 아주 간결하고 재미있으니,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보는 것도 좋겠다.


**사진 출처: thoughtcata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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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7267hdkem 2021-03-08 19:47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기에 이 영화가 더욱 슬프고 와닿았어요...

영화자체는 픽션이고 허구고 현실감각이 없지만...

예술을하려고 하는 사람들 꿈을 쫒는사람들은 그런 허구를 믿고 달리는 거잖아요 ?

오히려 현실적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면
이 영화가 위선적이게 보였겠지만
너무 현실감각이 없게 꾸며낸게 보여서
더욱 슬프고 찬란해 보였습니다.

꿈꾸는 모습이니까요.

그렇기에 이영화에 응원받는 사람들이 많았던게 아닐까요?

영화를 보고 내 꿈을 공감받고 응원받았다는 느낌을 전 가졌거든요.

y7267hdkem 2021-03-08 19:54   좋아요 0 | URL
그저 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여서, 인생의 가치관이 절벽 끝자락에 걸친 현실성없는 가치관일지라도
그걸 현실적이고 참담하게 다뤄주지않아서 저는 고마웠습니다.

이미 현실적이게 힘든 길이고 말이 안되는 꿈인걸 다들 잘 알고있으니까요.



물론, 라라랜드를 보고 다시한번 이라는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과 전 반대입니다.

전 ‘상업적인 일‘을 무서워하지않아도...
시기상 당장 눈앞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현실화되지않아도
천천히, 서서히 갈수있구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야 라는 용기를 받았어요.



푸른별 2021-03-09 01:59   좋아요 0 | URL
어떤 영화가 각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댓글 잘 읽었습니다. y7267hdkem님, 이 영화에서 받은 희망의 느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래요.